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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히엔 May 13. 2024

어쩌다 보니 백수가 되었습니다.

백수 되고 D + 178

백수일기를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백수 되고 6개월이 좀 안된 시점에 다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 백수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나의 마지노선은 2023년 연말이었는데, 정말 딱 맞춰서 12월에 일을 시작할지 몰랐다. 사실은 조금 더 일찍 일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래도 재취업으로 한 해의 문을 닫을 수 있어서 다행인 일이었다.


내가 스스로 만들었던 백수 마지노선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즉, 내가 '백수기간 동안 이 정도 써야지'라고 세워 놓은 나름의 한도가 있었는데 그게 다 할 것으로 예상되던 시점이 바로 연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10월에 나의 마음은 한껏 조급해져 있었다. 사실 결혼식 직전에 최종 인터뷰를 보고 내가 한창 신혼여행 중이던 시기에 결과를 알려주기로 한 곳이 있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메일을 보내보니 아예 그 포지션의 채용자체가 홀드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인터뷰가 진행 중이던 곳은 그곳이 거의 유일했으므로 나의 유일한 끈(?)이 떨어져 버린 꼴이니, 연말 전에 재취업하자던 나의 계획을 생각해 보았을 때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나를 인터뷰에 초대해 준 곳이 두 곳 생겼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1차 인터뷰를 보았고, 그중 한 곳은 마지막 3차 인터뷰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는데 아쉽게도 마지막 인터뷰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제 이쯤 되면 내가 붙을지 떨어질지 어느 정도 감이 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인터뷰 때 이야기했던 본사 사람과의 인터뷰 케미가 썩 좋다고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1차 인터뷰 이후 앞서 말한 곳이 마지막 인터뷰까지 가는 동안 연락이 오지 않고 있어서 떨어졌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원서를 곳도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마지막 인터뷰까지 갔던 곳은 낙마를 하니 '이제 어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이대로 해를 넘겨 햇수로 2년째 백수가 되는 것인가?


그러던 중 문득 연락이 오지 않았던 곳에 메일을 보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내가 떨어졌니? 확실히 말해줄래?'라고 물어보는 것은 좀 민망하니 '연락이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내가 혹시 안되었다면 인터뷰 피드백 좀 줄래?' 정도로 작성해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곧이어 온 답장에는 내가 떨어진 것이 아니고 회사 사정 상 채용절차가 미뤄지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가 아직도 관심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는 말과 함께. "예스!" 다행이다! 다시 한 줄기 희망이 끈이 내려왔다. 나는 (당연히) 관심이 있다고 답을 하였고 얼마 후 최종 인터뷰를 거쳐 오퍼를 받게 되었다.


이미 입사를 해서 다니고 있는 지금은 가끔 (입사 초기에는 종종) 내가 너무 조급하여 여기가 내가 갈 유일한 곳이라는 생각에 덜컥 쉽게 결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입사를 해보니 왜 내 포지션 채용이 잠시 미뤄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것도 있지만, 입사 직전에 또 한 곳의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입사한 주에 최종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막 입사한 이후라 대면 인터뷰를 잡기가 어렵기도 했고,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곳도 만만치 않은 곳인 것 같아 거절하긴 했다.) 그래도 내 계획대로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에 새 명함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한 일이다.


비록 지금은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과 가시지 않는 만성 피로에 허덕이며 약 6개월 동안의 백수생활을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지만, 백수생활 막판에 느꼈던 현실적인 압박에 따른 조급함 역시 아직 생생하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오는 조급함에 조금은 당황했던 나였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돈 걱정 없이 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세상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역시 로또 1등에 당첨되어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것이 유일한 답인가?! 곱씹으며 오늘도 출퇴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비록 이번주도 로또 사는 것을 까먹겠지만.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 로또 1등을 꿈꾸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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