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되고 D + 178
백수일기를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백수 되고 6개월이 좀 안된 시점에 다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 백수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나의 마지노선은 2023년 연말이었는데, 정말 딱 맞춰서 12월에 일을 시작할지 몰랐다. 사실은 조금 더 일찍 일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래도 재취업으로 한 해의 문을 닫을 수 있어서 다행인 일이었다.
내가 스스로 만들었던 백수 마지노선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즉, 내가 '백수기간 동안 이 정도 써야지'라고 세워 놓은 나름의 한도가 있었는데 그게 다 할 것으로 예상되던 시점이 바로 연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10월에 나의 마음은 한껏 조급해져 있었다. 사실 결혼식 직전에 최종 인터뷰를 보고 내가 한창 신혼여행 중이던 시기에 결과를 알려주기로 한 곳이 있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메일을 보내보니 아예 그 포지션의 채용자체가 홀드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인터뷰가 진행 중이던 곳은 그곳이 거의 유일했으므로 나의 유일한 끈(?)이 떨어져 버린 꼴이니, 연말 전에 재취업하자던 나의 계획을 생각해 보았을 때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나를 인터뷰에 초대해 준 곳이 두 곳 생겼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1차 인터뷰를 보았고, 그중 한 곳은 마지막 3차 인터뷰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는데 아쉽게도 마지막 인터뷰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제 이쯤 되면 내가 붙을지 떨어질지 어느 정도 감이 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인터뷰 때 이야기했던 본사 사람과의 인터뷰 케미가 썩 좋다고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1차 인터뷰 이후 앞서 말한 곳이 마지막 인터뷰까지 가는 동안 연락이 오지 않고 있어서 떨어졌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원서를 쓸 곳도 잘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마지막 인터뷰까지 갔던 곳은 낙마를 하니 '이제 어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이대로 해를 넘겨 햇수로 2년째 백수가 되는 것인가?
그러던 중 문득 연락이 오지 않았던 곳에 메일을 보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내가 떨어졌니? 확실히 말해줄래?'라고 물어보는 것은 좀 민망하니 '연락이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내가 혹시 안되었다면 인터뷰 피드백 좀 줄래?' 정도로 작성해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곧이어 온 답장에는 내가 떨어진 것이 아니고 회사 사정 상 채용절차가 미뤄지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가 아직도 관심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는 말과 함께. "예스!" 다행이다! 다시 한 줄기 희망이 끈이 내려왔다. 나는 (당연히) 관심이 있다고 답을 하였고 얼마 후 최종 인터뷰를 거쳐 오퍼를 받게 되었다.
이미 입사를 해서 다니고 있는 지금은 가끔 (입사 초기에는 종종) 내가 너무 조급하여 여기가 내가 갈 유일한 곳이라는 생각에 덜컥 쉽게 결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입사를 해보니 왜 내 포지션 채용이 잠시 미뤄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것도 있지만, 입사 직전에 또 한 곳의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입사한 주에 최종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막 입사한 이후라 대면 인터뷰를 잡기가 어렵기도 했고,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곳도 만만치 않은 곳인 것 같아 거절하긴 했다.) 그래도 내 계획대로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에 새 명함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한 일이다.
비록 지금은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과 가시지 않는 만성 피로에 허덕이며 약 6개월 동안의 백수생활을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지만, 백수생활 막판에 느꼈던 현실적인 압박에 따른 조급함 역시 아직 생생하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오는 조급함에 조금은 당황했던 나였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돈 걱정 없이 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세상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역시 로또 1등에 당첨되어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것이 유일한 답인가?! 곱씹으며 오늘도 출퇴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비록 이번주도 로또 사는 것을 까먹겠지만.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 로또 1등을 꿈꾸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