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식 Aug 13. 2024

월출산, 달은 어디로 뜨나?

우리 주변 과학이야기

월출산(月出山, 최고봉: 천황봉 809m)은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형 국립공원으로 면적(57평방 km)이 가장 적다(가장 큰 지리산 483평방 km의 12%).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따르면 백제 때는 월나악(月奈岳), 고려 때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에 비로소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월이 달이 아니라 돌을 의미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제는 모두 달로 알고 있다.


달은 천문학적으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음, 이건 비밀이지만 지구 어디서나 똑같다. 해도 그렇다.

속초에서 달은 동해에서 뜨고, 인제, 양구에서는 설악산에서 뜬다. 백제와 신라의 경계였던 이 지역에서 백제 위치에서 보면 달이 뜨는 위치가 이 산이었기 때문에 월출산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월출산의 동쪽은 강진군이고 서쪽은 영암군이다. 따라서 영암에서는 월출산에서 달이 뜨지만, 강진에서는 월출산에서 달이 뜨지 않는다. 월출산은 영암 사람들이 부름직한 이름이다.


월출산은 뭐가 다른가


산 자체는 높지 않지만, 등산이 거의 해수면에서 시작하다 보니 만만치 않고, 암산이라 오르내림이 심하고 등산로가 돌밭이라 쉽지 않다. 아래 사진에서 보면 북서방향(주황색 선)으로 수직절리가 발달해서 능선을 이룬다. 등산로는 대부분 북동 방향이라 절리를 타고 넘는데 이게 고역이다. 게다가 빨리 경치를 보겠다는 욕심에 무리해서 올라가다 보면, 경치는 좋지만 몸은 만신창이가 되기 쉬운 욕망의 산이다.


월출산 인공위성사진, 출처: 구글어스


월출산은 넓은 영암, 강진 평야의 가운데에 돌출한 침식에 강하여 생긴 잔구성 산지(예: 북한산, 관악산, 계룡산, 구월산, 무등산, 내장산)의 형태를 취하며, 산 전체가 암석 봉우리와 절벽 등 기암괴석이 많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구성된다. 강진평야에서 불쑥 쏟아 있고 주변은 평야다. 월출산의 정상은 사방이 탁 트여 능선상의 바위 경관과 영암 및 강진 벌판의 아름다운 조망이 일품이다. 게다가 다도해도 보인다. 하지만 먹을 것 많은 평야에 월출산의 소출은 소박하다. 남산 위의 소나무 같은 기개와 상징이 되어 주면 그만이다.


* 잔구(殘丘, monadnock): 주변의 완만한 산 또는 평지에서 불쑥 튀어와 유달리 경사가 급한 작은 산.


천황사지구에서 바라본 월출산, ⓒ 전영식


주봉인 천황봉(810.7m)을 비롯하여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 등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며 연속적인 봉우리를 형성한다. 이들 대부분 봉우리는 백악기 말에 관입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화강암은(수평절리에 비해) 수직절리가 잘 발달해서, 이들 절리면을 따라 차별침식과 풍화작용이 진행되었다. 어쨌든 절리들은 암석을 잘라서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너덜갱도 만들고 등산로를 바위투성이로 만든다. 물론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바위들은 풍화되어 마사토가 되겠지만 그건 우리생애에 될 일은 아니다.


특히 구름다리(1978, 길이 52m)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605m, 지상 120m)에 설치되어 매봉과 사자봉을 연결하여 등반로 짜기에 편하다. 2006년 5월에 현대식으로 교체되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 가련한 친구는 구름다리를 지나가지 못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되돌아 갔다.


월출산  장군봉,  ⓒ 김태엽

그리 넓지 않은 면적에 가파른 계곡이 있어 물이 넉넉하지 않으며, 암석이 튀어나온 지대가 많고 평지가 적어 생태계가 번성하기엔 그리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사람도 쉬어갈 시설이 부족하고 하물며 암자도 적다. 그럼에도 현재 식물 700종, 동물 800종 정도가 자생·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적이 8배 큰 지리산이 식물 1,500여 종, 동물(곤충포함) 6,000종 정도(2011년 환경부 조사)라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붉은 배새매(천연기념물 제323-2호,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황조롱이, 올빼미, 솔부엉이, 소쩍새가 월출산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 또한 특이하게 고급 한지의 재료인 노란 작은 꽃이 피는 산닥나무가 거의 전 지역에 분포한다. 주변에 큰 종이 수요처가 없어 자생종으로 생각된다.  


오랜 세월 동안 암석지형에 적응한 온 생태적 독특성이 있고 바닷가에 접하여 난대림과 온대림이 섞여서 위치적 특성이 남다르기 때문에 월출산 생태계의 보전 필요성은 매우 크다. 공원을 대표하는 깃대종(flagship species, 생태계 회복을 알리는 종)은 끈끈이주걱과 남생이이다.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는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된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의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도갑저수지 주변의 습지에 끈끈이주걱을 이식하는데 성공하여, 개체수를 늘려 가고 있다고 한다. 벌레들에겐 안좋은 소식이다.


월출산 남근바위와 암괴, 출처: 국립공원공단
월출산 육형제봉,  출처: 국립공원공단
월출산 구정봉, 출처: 국립공원공단


월출산의 문화유산


월출산에는 일본에 경전을 전파한 백제시대의 왕인박사 유적지와 국내 최대의 토기묘지가 있고 다양한 역사적 · 문화적 장소가 있다. 월출산 주변에는 청동기시대 이래의 선사유적을 비롯한 옛사람들의 풍물과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함께 경험하는 이른바 "남도답사 출발지"로 삼을만 하다.

대표적인 것이 1972년 국보로 지정된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과 무위사 · 도갑사 등이다. 천년 이상의 역사와 국보를 간직하고 있는 고찰이다.


무위사와 도갑사


무위사 미륵전 석조미륵불입상, ⓒ 전영식

 

무위사(無爲寺, 강진군 성전면)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한 절이다. 고려 왕건이 후백제에 대한 포용책으로 선각국사화상을 모셨고, 조선 초기 사우를 새로 건립하였다. 극락전(국보 제13호), 선각대사편광탑비(보물 제607호), 극락전의 아미타삼존불과 관음보살상을 그린 벽화가 유명하다. 그런데 나는 미륵전에 있는 석조미륵불입상에 애정이 간다. 방금 파마한 동네 아주머니 같은 머리 모양에 살짝 옆으로 몸을 돌린 듯한 자세가 눈길을 끈다. 이 투박한 미륵불은 원래 절에 있던 것은 아니고 수암리 수암마을에 있던 것을 옮겨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풍수지리사상을 전파한 도선국사가 9세기에 창건한 도갑사(道岬寺, 영암군 군서면)에는 해탈문(국보 제50호)·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도선수미비(전남도유형문화재 제38호)가 있다. 특히 미륵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고려 때의 걸작으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도선국사는 왕건의 집터를 읽어주고 고려의 시작에 일조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담사를 다니다 보면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절을 무수히 만나게 되는데, 그가 풍수에 능해 비보사찰을 많이 세웠다는 이야기와 자기들 역사를 자랑하고 싶은 사찰측의 이야기가 만들어 낸 것이 많은 듯하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월출산과 같은 화강암 산에는 반드시 있는 게 있으니 마애불이다. 여기에는 월출산의 풍광에 걸맞은 대단히 멋진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광배에 새겨진 촘촘한 장식, 조각 솜씨로 보아 대단한 실력을 가진 석공의 땀과 눈물로 새겨졌지 싶다. 지권인은 손을 무릎에 놓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이고 삼도가 잘 새겨져 있다. 왜 여기에 항마촉지인 부처를 새겼는지 궁금하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 김태엽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국보(144호)인 이 마애여래좌상은 구정봉(九井峰, 710.8m) 북서 측 절벽에 조각된 높이 8.6m의 큰 마애불이다. 부처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경배하는 동자승(86cm)이 새겨져 있는데, 왼쪽 무릎 옆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가 매우 화려한데, 몸과 머리를 따로 표현했으며 연꽃과 덩굴무늬를 이용하여 여백을 잘 메웠다. 대좌 아래까지 흘러내린 옷주름의 표현이 뛰어나다.

 

방형의 암석의 한쪽 면을 깊이 파서 감실을 만들고 부처가 충분한 양감을 갖도록 소재바위를 깊이 안쪽으로 깊숙이 파 들어갔다. 마애불 아래쪽에는 암석을 떼어내기 위한 쐐기 자국이 보인다.  바위의 형태가 마치 마애불을 안치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안성맞춤이다.  2023년 9월 23일 휴식년제를 마치고 5년 만에 다시 개통된 대동제~ 용암사지구간을 이용하면 좀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월출산에는 이것 말고도 노적봉 아래 월곡리 몽령암터 마애불좌상(전남유 149, 4.9m),  칠지곡 마애불좌상(약 2.5m), 칠치 폭포 아래 마애불, 문산재 월대암 아래 마애불 등이 있는데 전설에 나오는 월출산의 18기 미륵불을 다 찾지는 못했다 한다.


용암사지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연석 이용한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마애여래좌상, ⓒ 김태엽


월출산의 화강암


아주 거칠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강암은 쥐라기 대보화강암백악기 중엽  불국사화강암이다. 전자는 깊은 곳에서 냉각되어 만들어졌고 후자는 그러지 못했다. 전형적인 두 종류의 화강암은 광물입자크기에서 차이가 나는데  불행하게 일반인이 척 봐서는 구별이 안된다. 이밖에도 이것저것  차이가 있다.


월출산 지역의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 중엽에 관입한 화강암이다. 지각 밑에서 만들어진 마그마가 깊지 않은 (6km 내외)땅 속에서 식으면서 형성된 것인데, 현재는 상부 지층이 풍화로 없어졌고, 화강암 자체의 부력에 의해 우리 눈에 보이게 된 것이다. 월악산의 주요 화강암은 홍색의 장석을 함유한 화강암으로 K-Ar 법에 의한 측정결과 93.6±1.5 백만 년으로 보고되었다(이창신 외, 1996). 사실 이 화강암은 월출산도 만들었지만, 해남 지역에서 응회암 등과 반응하면서 카오린(kaolin), 납석(agalmatolite, 蠟石, 일명 곱돌) 등 다양한 광물자원광산을 만들어서 자원적인 가치를 만들기도 했다.


월출산국립공원은 다양한 화강암 풍화지형과 기암들이 발달하고 있는데 토르, 나마(gnamma), 타포니, 그루브, 풍화동굴 등이 다양하게 관찰된다. 특히, 나마구조의 발달이 탁월하고 볼만한데, 구정봉(九井峯)은 큰 바위얼굴 형상을 한 장군바위 정상부의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된 9개의 오목하고 우물 형상의 나마구조를 가지고 있다.


* 토르: 바위가 덩어리로 쌓인 구조(ex.흔들바위), 타포니:  암석에 남은 떨어져 나간 구멍, 구루브: 침식 흔적


보는 방향이 들어 있는 산이름, 월출산


달이 뜬다 달이 뜬다 /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 보름달이 뜬다


가수 하춘화(1955~)는 1972년 신민요풍으로 분류되는 '영암 아리랑'을 발표했다. 영암에는 '목포의 눈물'(이난영, 1935) 같은 이 노래 때문에 하춘화 노래비가 읍내 월출산 기찬랜드에 세워졌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영암 금계리 출신이다. 2017년 부친의 백수잔치를 마을회관에서 열었는데 군수, 군의원, 교육장이 왔다.


금계리 옆 주지봉 아랫마을인 군서면 구림리에서는 백제의 왕인 박사(王仁 博士,?~?)가 태어났다. 그는 일본 오진왕(應神王)의 초대를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가 우지노 와키 이라쓰코(菟道稚郞) 태자의 사부가 되었다. 일본 아스카문화의 시조(鼻祖)가 됐다.  재미난 것은 무등산, 지리산 정상을 천왕봉이라 부르지만 월출산만은 정상을 천황봉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에는 천왕봉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영암에서는 왕인박사가 일본 천황제도를 만들지 않았냐고 이야기도 있는 모양인데 증거는 없다. 주지봉에는 그가 출생했다는 성기골, 수학했다는 문산재(文山齋), 공부했다는 책굴(冊窟) 등이 있다.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道詵, 827~898) 국사도 구림(鳩林)리에서 태어났다. 도선국사의 어머니 최씨가 빨래터에서 떠내려오는 오이(또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수태했는데, 처녀가 애를 낳았으니 창피하다고 부모는 애를 숲에 버린다.  그래도 애가 걱정된 최씨가 나중에 가보니 비둘기(鳩)가 잘 보살피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이 구림이다. 그는 중국에 다녀와서 도갑사를 세운다. 왕건의 집을 풍수에 맞게 바로잡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둑계의 국수 조훈현(1953~)은 옆마을인 회문리에서 태어났다.


이제 영암과 강진에는 백제인과 신라인은 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다. 강진에는 570명, 영암에는 8,221명(2023년 기준, 법무부, 출입국자 및 체류외국인통계)의 외국인이 등록되어 있다. 그들의 고향에서는 달은 어디에서 뜰까. 월출산을 보면서 그곳을 생각할 것이다.


참고문헌


1.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연구원, 2023 월출산국립공원 공원자원조사

2. 디지털영암문화대전, 월출산의 불교 문화와 유적,

3. 이창신, 김정빈(1996), 월출산 지역에 분포하는 중생대 화강암류에 대한 미량원소와 희토류원소의 특성,자원환경지질, Vol.29, No.3, p293-304

4.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매거진의 이전글 난카이 대지진, 공포의 1주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