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지구과학 이야기
2024년 8월 8일 오후 4시 43분, 일본 규슈 미야자키 시 남쪽 20.2km 해상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의 심도는 25.0km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번 지진은 필리핀 판과 유라시아 판이 만나는 섭입대 경계면으로, 필리핀 판은 6cm/yr의 속도로 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은 암석의 마찰 때문에 그때그때 해소되지 않고 쌓이게 된다. 이렇게 쌓인 응력이 갑자기 풀리면 지진이 발생한다. 마치 오랫동안 화를 참은 사람이 화를 내면 크게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10일 현재도 진앙인 히나타 나다 근처에서 규모 3~4 정도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지질조사소(USGS)에 따르면 길이와 폭이 50x20 km 정도의 단층이 이동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이 정도의 지진은 반경 250km 내에서 지난 100년 동안 8번 정도 일어나서 일본에서는 드물지 않다. 문제는 지진자체가 아니라 이 지진이 그동안 잠잠했던 난카이 해구(南海海溝, Nankai Trough) 발 지진의 본격적인 시작이 아니냐는 점이다. 당연히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고 중앙아시아 순방을 떠나려던 기시다 총리도 일정을 취소하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후 1주일 정도는 최대 진도 6 약 정도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난카이 해구 지진 임시 정보 발령). 게다가 X(옛 트위터)를 통해 2024년 8월 14일에 난카이 해구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시코쿠섬의 고치현(高知県, 2024년 인구 65만 7천 명)에서만 6만 명이 사망할 거라는 근거 없는 예언이 떠돌아 뒤숭숭한 분위기다. 따라서 전통명절인 오봉 기간인 8월 15일까지는 공포 속에서 당국이나 주민들은 지진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지 예약은 취소되고 해수욕장은 폐쇄되고 있으며 지자체의 행사도 중지되고 있다.
아래 그림은 난카이 해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바닥은 필리핀 해양판이고 왼쪽 위가 유라시아 대륙판인 일본 본토이다. 필리핀판의 이동 속도는 4cm 정도로 표시되어 있는데, 연구기관과 시점마다 약간씩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꾸준히 유라시아 판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난카이 트로프(시즈오카현의 스루가만~미야자키현 앞바다의 휴가탄, 약 900km)는 역사적으로 지진이 빈발하는 지역이다. 문제는 지난 지진 이후 충분한 응력이 쌓여서 언제라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대략 90~150년에 한 번씩 큰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한다. 지난 1707년 호에이 대지진(아래 글, '후지산, 등산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참조) 후 146년 만에 1854년 안세이 지진이 일어났고, 그 후 92년 뒤인 1946년에 쇼와 난카이 지진(규모 8.4, 사망 1362명)이 발생했다. 현재는 마지막 난카이 지진 이후 78년이 경과되었다. 당초 2018년에 30년 이내에 난카이 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70% 이상으로 예측(일본토목학회, 2018)했었는데 지금이 그 범위에 들어가는 시점이다.
만약 발생하면 최악의 경우 간토에서 규슈에 걸친 30개 도부현에서 약 32만 3000명이 사망하고 재산피해는 최대 1,410조 엔(1경 3,12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일본 지진조사위원회). 참고로 2024년 일본 정부의 세출 예산은 약 1천조 원이니 대략 13년 치 정부 지출이 날아가는 것이다. 인명피해를 비교해 보면 2011년 3월 9일 발생했던 규모 9.1의 도호쿠지진의 직접 사망자가 약 22,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위의 수치는 그것의 15배에 이르는 엄청난 피해이다.
만약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약간의 진동이나 쓰나미가 관측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지질구조에 영향을 줄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2011년 도호쿠 지진이 이후에 경주와 포항에 지진을 유발했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아마도 이와 유사하게 후속 영향이 발생하리라 추측된다.
난카이 해구의 판구조의 단면을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① 필리핀 판이 침강하면서 유라시아 육지판의 밑으로 들어간다. 이때 해양 및 육지 퇴적물로 구성된 부가체(accretionary prism)가 끌려 들어간다. ② 판사이에 응력을 받아도 움직이지 않는 고착된 부분에 응력이 쌓이고 일부가 천천히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③ 응력이 풀리면서 판의 경계에서는 지진이 발생하고, 끌려들어 가던 부가체가 원래 모습을 회복함에 따라 쓰나미가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난카이 지진이 일어나면 도카이(동해) 지진, 도난카이(동남해) 지진이 연동하여 같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큰 지진이 연동되면 아무리 일본이라도 괴멸적인 파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래 시뮬레이션은 와카야마현 쿠시모토초 앞바다에서 시작된 지진이 주면의 지진벨트로 전이되어 최악의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가정하고 만든 것이다. 이 정도면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전역이 영향권에 들 것이고, 특히 태평양에 인접한 인구밀집 지역은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진이 일상적인 일본인들의 마음속 깊이 이런 공포가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지질학계는 지금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진의 추이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지진의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워낙 불확실성이 심한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예전에 많은 지진의 경고가 무사히 지나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추가적인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지진이라면,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고 지나가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이런 경보가 나오고 무사히 지나가면 자칫 타성에 젖고 방심하게 되는 게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평상시와는 다른 주의와 대비를 통해 만일 발생할지 모르는 피해는 최소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일상생활이나 다른 활동이 위축되겠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음에 익숙한 일본인이지만 대비를 잘해 이번 지진을 잘 극복해 나가길 응원해 본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