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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Aug 29. 2023

후지산, 등산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관동대지진 100주년 -  일본의 지질학 이야기 1.

후지산을 보려면 후지산을 올라가면 안 된다.

숲을 보려면 숲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과 같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서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지만, 활화산은 보장할 수 없다. 특히 후지산의 경우는 당장 내일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산이다. 1707년 분화 후 지진은 빈발하지만 아직 별다른 분화는 없었다. 하지만 일본 규슈의 유명한 화산인 아소산(阿蘇山)도 한때는 관광지로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2021년 10월 20일 분화 이후 지금은 위험해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1979년에도 분화하였으니 많은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아소산의 모습은 그 사이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화산은 짧은 기억의 유효기간만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원래 등반기는 산을 다녀온 후에 기록하는 것이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산과 우리의 고달픈 세상살이를 고려할 때, 먼저 미래의 계획을 등반기로 적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 내일이라도 분화하여 갈 수 없어지면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후지산은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화산이다.  서울에서  천안 조금 지나는 거리니  멀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도쿄 시내 전망대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높이는 3,776m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호기로운 사람들은 5 합목에서 시작하는 등산코스를 하루 만에 주파하는 '총알산행'을 하는데, 결코 쉽거나 안전한 산행은 아니다.


일본인에게 후지산은...


후지(富士)라는 이름의 어원을 두고 여러 설이 있다. 첫 번째는 타케토리모노가타리(竹取物語)의 카구야히메(かぐや姫) 이야기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카구야 공주가 달에서 유배온 공주임을 밝히고 달로 떠난 뒤에 그녀가 남기고 간 불사약, 날개옷과 편지를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태워 없애게 하여 '후시산(不死山, 불사산)'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만화영화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이 카구야히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2번째로는 같은 이야기로부터 후지산에서 태워 없앴다고 하여 'ふしの山(불의 산)'로 불리는 것도 있다. 세 번째로는 무지개의 발음인 '후시(フシ)'로부터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 일본인에게서 후지산은 한국인들에게 백두산급으로 성지 취급받으므로 '후지사마(후지님)'로도 불린다. 일본 각지에서 유명한 산의 이름을 'ㅇㅇ 후지산'이라고 붙인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波裏), 카츠시타 호쿠사이


2004년 발행 5차 발행 1000엔 권,  source: wikimedia commons by Nippon Ginko, public domain


일본 천 엔(한화 약 9000원) 지폐의 뒷면에는 후지산이 그려져 있다. 2024년부터 발행될 6차 신지폐에도 후지산이 들어가는데 호쿠사이의 유명한 우키요에가 사용된다. 시간이 지나도 버릴 수 없는 일본의 상징이다.


2024년 상반기경 발행 예정인 6차 1000엔 신권,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도안 사용, 출처: 国立印刷局


후지산 등반 코스


후지산 정상등반코스는 4군데가 있는데 7월 초부터 9월 초까지만 가능하다(일정은 6월경 발표). 기간 외에도 후지산의 등반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산장, 화장실 등이 폐쇄되니 위기 시에 조력을 받기 어렵다. 등반코스의 험한 산은 아니지만  높이가 높아 결코 쉬운 산은 아니다. 입장료는 아직 없다.


등반코스는 북쪽 야마나시 쪽으로 올라가는 요시다 루트, 남쪽 시즈오카 쪽에서 올라가는 후지노미야 루트, 수즈리(스바리시) 루트(등산경험요), 코텐바 루트(상급자용)가 있다.


가장 많은 60%의 등반객이 이용하는 코스는 요시다 루트(2,300m 시작)이다. 등산초보자도 가능하고  출발지에 편의시설이 많다. 따라서 혼잡하고 왕복 14km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상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두 번째로 많은 25%의 등산객이 이용하는 코스는  후지노미야 루트로  가장 높은 고도(2,400m)에서 등산을 시작하기 때문에 왕복거리가 8.5km로 아 시간이 적게 걸리고 정상접근도 용이하며 혼잡하지 않다. 하지만 거리가 짧다는 말은 가파르다는 이야기다.


요시다 루트 신 7 합목 표지판, 김태엽 사진


후지산도 중간까지는 버스, 택시가 가니 5 합목에서 출발하면 된다. 일본의 등산로는 합목(合目)이라는 구분으로 나눠지는데, 거리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의 개념이다. 옛날에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그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를 1 합목이라고 했다고 한다. 시간 거리인 셈인데 10등분을 하는 것을 보면 산마다 가지고 다닌 등잔의 크기가 달랐던 모양이다. 보통 산의 9부 능선을 9 합목이라고 하고 정상은 10 합목이지만 표시는 따로 하지 않는다.


후지산의 8 합목 이상은 사유지이다.  16세기 말엽 초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후지 산 정상 부근을 후지 산 신앙을 받드는 신사인 ‘센겐(淺間)’신사에 기증했다. 메이지 유신 후 국유화 됐는데 신사 측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증 문서를 근거로 소유권 양도 소송을 제기했다. 1974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 격)로부터 후지 산 8분 능선 위쪽의 토지 가운데 등산로와 기상관측소 부지를 제외한 총 385만m²의 소유권이 신사에 있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결국 2004년 말 신사에 반환되었다.


고도가 높은 산이니 만큼 고산병 증세가 올 수도 있고, 정상부에서는 여름에도 0도가 될 수 있어 방한복이 필요하다. 바람이 세기 때문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은 꽁꽁 싸 메야한다. 헬멧을 추천하는데 아무도 안 쓴다. 물론  절대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니 낙하물에 조심해야 한다.  화산자갈길이라 미끄러지기 쉬워 조심해야 한다. 산장의 화장실은 유료이기 때문에 동전을 준비해야 한다.


상당한 고봉으로 일본 내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최고봉이다. 아시아-환태평양 화산대에서 보면 한라산(1,947m), 백두산(2,750m) 보다 훨씬 높고, 뉴질랜드 아오랑기 쿡 산(3,754m)보다는 조금 더 높으며 타이완의 위산(옥산, 3,952m)보다는 낮다.


정상에는 기상 관측소가 있다. 일본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측정, 고산병의 연구, 고지대 생물의 연구 등을 수행한다.


"후지산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사람은 바보, 두 번 오른 사람 또한 바보(富士山に一度も登らぬ馬鹿、二度登る馬鹿)." [일본 속담]



후지산의 형성


후지산은 높이 3,776m. 산정 화구 지름 약 700m. 깊이 약 240m. 일본 최고봉으로, 후지 화산대의 주봉이며 표층이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원뿔형의 성층화산이다. 바닷가에서 솟아 있어 화산체 그 자체가 높고 밑면은 지름이 35∼40km에 달한다. 북서쪽 산자락에는 오무로 산(大室山)을 비롯하여 많은 기생화산이 있고 남동쪽 사면에는 1707년에 호에이산(寶永山)의 폭발 화구가 있다.


산체는 고미산(小御岳:2,314m) ·고후지(小富士)의 2개의 화산체에서 분출된 현무암질의 용암류와 화산재 ·화산사력(砂礫)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용암은 유동성이 많아 아오키(靑木) 평원과 같은 넓은 용암류(熔岩流), 후지 5호(湖)와 같은 언색호(堰塞湖), 용암 터널, 용암류상의 수해형(樹海型) 등의 경관을 만들었다.


후지산, 4 단계로 형성


후지산은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의 충돌로 생겨난 화산의 일종이. 1천만 년 전까지 현재 후지산 자리는 해저였다. 현재 혼슈의 야마나시현 북부(후지산 북쪽, 고후시 부근)가 당시에는 해안이었다. 필리핀해판이 점점 북상, 먼저 현 후지산의 북쪽과 동쪽에 있는 미사카 산지와 단사와 산지가 혼슈에 충돌하며 융기하였다.


그 후 70만 년 전부터 화산 열도들이 연이어 혼슈에 충돌, 현 후지산의 모체가 되는 선(先) 고미타케 화산(Pre-Komitake volcano) 아시타카(Ashitaka) 화산이 만들어졌다. 즉 병존형 화산(bi-modal volcano)을 구성했다. 당시 이즈 반도는 혼슈와 부딪히기 직전의 섬이었다.


후지산 구조도, source: wikimedia commons by Batholith


수십만 년 전, 드디어 이즈 반도가 혼슈와 충돌했다. 그 결과 이 지역은 큰 압력을 받아 거대한 폭발을 반복해  10만 년 전에 고(古) 후지(Ko-Fuji) 화산이 새롭게 고미타케(Komitake) 화산측면에서 분화, 고미타케 화산마저 덮어버렸다. 원래 있던 고미타케 정상부가 후지산 북사면의 표고 2300미터 부근에 노출되어 있다. 고 후지 화산은 폭발적인 분화가 특징이다.  이 무렵 하코네 화산은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칼데라를 생성하였고(이사노 호수), 아시타카산은 분화를 종료하였다. 하코네산도 분화를 멈춘 5천 년 전에는 신 후지(Shin-Fuji) 화산이 새로이 분화하여 현 후지산의 모습이 되었다.

2,900년 전에는 고텐바 암설사태로 고 후지 화산의 산체가 동남쪽으로 현 고텐바시까지 무너져 내렸다. 이후 3000~2000년 전까지 정상부에서 10차례 정도 분화했고 이후로는 측면에서만 분화했다. 


역사시대의 화산활동으로는 781년부터 1707년까지 10여 차례의 기록이 있는데 그중에서 800년(엔랴쿠 대분화), 864년(조간 대분화) 그리고 1707년의 호에이 대분화가 특히 유명하다. 호에이 대분화 이후 현재까지 추가 분화는 없다.


시즈오카현 우치우라만에서 본 북쪽 방향의 후지산, 호에이 분화구가 보인다.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lpsdake


호에이 대지진과 연관


1707년 호에이 대지진은 난카이 해곡(trough)에서 발생한 역사적 대지진으로 규모는 M 8.6에 육박했다. 도카이-도난카이-난카이 셋 다 연동하여 발생해, 난카이 해곡의 모든 단층이 다 파열되게 한 유일한 지진이다. 지금도 일본을 떨게 하는 유형의 지진이다. 지진이 일어난 1707년이 일본의 연호로는 호에이(宝永) 4년이었기에 '호에이 대지진'이라고 부른다. 


후지산 정상의 분화구, 김태엽 사진


지진은 호에이 4년 음력 10월 4일(1707년 10월 28일) 오후 2시에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가옥 2만 9천여 채가 파괴되었고, 시즈오카현에서는 대형 산사태가 발생해서 1억 2천만 m^3 부피에 달하는 토사가 쏟아져 1.8 km^2에 달하는 면적이 파묻혔다. 거기에다가 나라현에서는 토양액상화까지 발생하는 등,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재앙이었다.


쓰나미 역시 발생해서 고치 현 남서쪽 해안에서는 평균 7.7~10m짜리 파도가 덮쳤다. 고치현 나카토사정에는 25.70 m 높이 쓰나미가 덮쳤고, 지금의 고치시 다네자키항 지역에 23 m 높이 쓰나미가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이 지진으로 후지산이 영향을 받아 지진이 일어난 지 정확히 7주가 되는 1707년 12월 16일부터 이듬해(1708) 1월 초까지 대규모로 분화하였다. 이를 호에이 대분화(宝永大噴火)라고 부른다. 후지산은 이후로는 대규모로 분화한 적은 아직 없다.


호에이 대분화를 그린 그림 '밤루의 경기'(시즈오카현 누마즈시 쓰치야 히로시 소장), sorce: 内閣府 防災担当


호에이 대분화의 특징은 화산재는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에도까지 날아갔지만, 용암이 흐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호에이 대분화에서 분출된 분출물의 양은 약 8억 m^3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의 고텐바시(御殿場市)에서 오야마정(小山町)에 이르는 지역은, 최대 3m에 달하는 부석(분화 초기), 강하 스코리아(중기부터 후기)로 덮였다. 에도에서도 대량의 화산재가 쏟아졌는데 이 때문에 에도 거리는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워서 촛불을 켜야 했다고 한다.

분화는 후지산의 동남 측 사면에서 일어났으며, 이로 인하여 3개의 분화구가 형성되었다. 정상에서 아래로 제1, 제2, 제3 호에이 분화구가 겹쳐진 모양으로 나란히 있지만, 산기슭에서 보면 크기가 제일 큰 제1분화구만 보인다. 이후 지금까지는 후지산이 분화한 적은 없다. 


후지산은 오랫동안 ‘휴화산’으로 분류됐으나 일본 전국의 화산 활동을 평가하는 화산분화예측연락회가 1975년 심도 있는 연구를 거쳐 '활화산'으로 재분류되었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일본정부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하였으나 넘처나는 화장실의 분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지질학적으로 다른 유명 산에 비해 특이할 것이 없어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한다.


2011년 3월 11일 전까지만 해도 일본 지진학계는 호에이 대지진(M 8.6)이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그러나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이 터지면서 순위가 밀리게 되었다. 참고로 도호쿠 대지진의 규모는 M 9.0~9.1이었다.


후지산의 암석


산체를 구성하는 현무암 외에 산의 표면을 덮고 있는 것은 경석과 스코리아 같은 화산 분출물이다. 


후지산 등반로 주변의 암석, 두 가지 색의 암석이 보인다. 김태엽 사진


경석


Pumice from the island of Kos, Greece, source: wikimedis commons by  Hannes Grobe

경석(軽石, Pumice)은 다공질로서 스펀지 상태의 구조를 갖는 담색 또는 백색의 화산 생성물이다.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분출되면 압력이 갑자기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때 마그마 속에 녹아있던 기체가 폭발적으로 배출되면서 남은 잔여물에는 기공을 만이 포함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부석은 물 위에 뜰 수 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여 콘크리트에 섞어 쓰면 무게가 작으면서도 단열성, 방음성이 좋은 재료가 되는데 로마의 판테온의 지붕 등도 이런 부석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주로 기체가 많이 포함된 안산암질, 유문암질 마그마 분출 시 많이 생긴다. 부석은 풍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점토 등으로 변질되게 된다. 급랭하여 입자가 작고 유리질이어서 침상으로 단면이 예리하기 때문에 분쇄하여 연마제로 사용한다.


스코리아

현무암질 스코리아,  source: wikimedis commons by B.navez

스코리아(그리스어: scoria)는 화산분출물의 일종으로 괴상의 다공질이며 고철질 마그마로부터 형성되어 어두운 색을 띤다. 스코리아라는 이름은 녹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 됐다. 화학 성분상으로 주로 안산암질에서 현무암질까지이다. 대부분의 스코리아는 비중이 1보다 커서 물에 가라앉는다. 기공은 냉각되기 전의 마그마성 휘발성분이 빠져나가 생긴 것으로, 기공의 크기가 크며 기공벽이 두껍기 때문에 부석(pumice)과는 다른 성질을 보인다. 따라서 스코리아는 어둡게 보이며(보통 암갈색, 흑색 혹은 적색) 밀도가 높다.


스코리아 간의 조직적 차이는 이산화규소(SiO2)가 적은 마그마 점성도, 급속한 휘발성 기체 성분의 확산, 거품 성장, 응집력과 거품 터짐에 의해 발생한다. 스코리아는 용암의 한 부분으로서도 나타나고 암편 분출물(라필리, 암괴, 화산탄)로서도 나타난다. 폭발적인 스트롬볼리안 분출에서는 가파른 경사로 스코리아 콘(cone)이 형성된다. 신더(cinder)는 스코리아의 옛 이름이다.  제주도에서는 송이(화산석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석이나 스코리아는 분출특성과 기공 때문에 경도가 약해 잘 부서지고 또 고도가 높은 산의 경우 기온차에 따른 풍화가 잘 일어나기 때문에 쉽게 부서져서 물을 많이 머금으면 질어진다.  등산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후지산은 고도가 높으니 기상이 수시로 바뀌고 비가 자주 온다. 미끄러지기 쉽다. 하지만 어차피 겨울에는 산행이 금지되어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분출물의 성분변화


호에이 대분화에서는 일련의 분화 중에 화산재·강하물의 성분이 크게 변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에도에서 내린 재가 처음에는 흰색, 그 후에는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분화구 주변의 강하물이 부석에서 스코리아로 바뀌었다.


이 두 사실 모두 강하물 속의 규소(이산화규소)의 함유량이 변화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분화 초기의 하얀 재는 (후지산으로서는 드물게) 이산화규소를 70% 정도 함유한 석영안산암질이었다. 이런 성분은 폭발적인 분화를 수반할 수 있다. 이후의 검은 재는 이산화규소가 50% 정도인 현무암질로 후지산을 형성하는 일반적인 암석(용암 등)의 분석값과 동일하다. 이 성분은 흐르는 용암 흐름을 만든다. 호에이 대분화는 처음에는 후지 산치고 드물게 이산화규소가 많은 석영안산암질 마그마가 분출하고, 그 후에 후지 산 본래의 현무암질 마그마의 분화로 이행되었다고 판단된다.


화산재가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화한 원인은 마그마굄 속의 마그마 성분 분화로 이해되고 있다. 호에이 대지진 이전의 후지산은 약 8,000년간 큰 분화 활동이 없었다 (그동안 마그마굄에는 깊은 곳에서부터 조금씩 신선한 마그마의 공급을 받고 있었다). 마그마굄은 조금씩 식으면서 응고점이 높은 성분부터 먼저 결정화되지만, 비중이 무거운 성분(철이나 마그네슘을 많이 포함하는 어두운 색의 결정)은 침강하기 쉽기 때문에, 마그마굄의 상부는 밝은 색의 비중이 가벼운 규소성분이 많이 남아 있게 된다. 그래서 분화 초기에는 마그마굄의 상부에 있던 규소성분이 많은 하얀 부석과 화산재가 방출되고, 그 후에 후지 산 본래의 어두운 색 화산재와 스코리아가 방출된 것이다.


후지산의 예상 분화는 언제?


1707년 분화된 호에이산(寶永山),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lpsdake


후지산의 아래에서 일본 사가미 해곡 대지진이 발생한 원인인 사가미 해곡과 난카이 대지진의 원인인 난카이 해곡, 그리고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의 경계인 이토이가와-시즈오카 구조선, 이렇게 세 판경계가 서로 만난다. 즉, 지질학적으로 후지산 일대는 일본 해구와 마주하는 도호쿠 동부 지방과 더불어 일본 최악의 지진 위험 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지질학자가 이구동성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후지산의 분화를 경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후지산 분화에 대한 예측은 백명의 학자에 110가지 학설이 있다고 할 정도로 난무하고 있다. 이미 시기가 지난 예측을 인터넷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인디언 기후제 식으로 맞을 때까지 예측을 하면 아마 일치하는 예측도 나올지 모르겠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단한 예측인데 우리가 무지했다고 자책을 할 수도 있다.


2013년 3월 NHK의 다큐멘터리 ‘NHK Special’은 후지이 도시쓰구 화산분화예지(예측)연락회 회장을 인용해 “지난 100년 동안 터졌던 진도 9.0 이상의 거대 지진이 발생한 뒤엔 반드시 대규모 화산 분화가 이어졌다”라고 보도했다. 후지산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방송은 이어 일본 기상청 기상연구소 등의 도움을 받아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는 헤이안 시대에 일어난 분화처럼 화산 폭발로 마그마가 흘러내리는 경우이다. 900℃의 마그마가 산의 남쪽 경사면을 향해 1주일 정도 흘러내리면, 마그마는 시즈오카현 후지시의 중심부를 뚫고 바다로 흘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인명 피해는 적겠지만, 도시 전체가 파괴되고 도쿄-나고야 간 고속도로가 분단되는 등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후지산 분화 시 예상 화산재의 피해지역, source: wikimedia commons by 富士山防災協議会

두 번째는 1707년 호에이 대분화처럼 대량의 화산재를 발생시키는 분화가 일어나는 경우다. 이 경우 화산재가 수시간 만에 도쿄까지 날아와 도로, 공항, 기차 등 교통수단을 마비시키게 된다. 이런 분화가 15일 동안 이어지면 산 주변엔 1m 이상, 도쿄 등 간토 지방엔 10cm 정도 높이의 화산재가 쌓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전선이 파괴돼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고 건물이 화산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파괴되는 등 도쿄의 도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예측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은 후지산이 언제 폭발할지 정확히는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있다. 언젠가는 후지산의 분화를 알리는 전화가 누군가에게로 올 것이다. 일상 그렇듯 안 받을 수도 있고 받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곧 분화를 할 테니 조심하라고. 그다음 몫은 인간에게 달렸다. 후지산은 5분 뒤에, 5일 후에, 5달 후에 분화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갈 수 없기에 가기 힘들기에 가상의 등반기를 기록해 본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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