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제목은 시선을 끌어야 하고, 포스터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호기심은 마지막 남은 우리 시대의 본능이다. 포스터 속 폐허는 유토피아라는 말과 대비를 이룬다. 콘크리트를 보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도시가 콘크리트의 유토피아라는 뜻일까? 즉 콘크리트 입장에서 유토피아란 뜻일까? 지진으로 유토피아가 만들어졌는가. 제목은 어느 시점을 의미하는 것인가... 호기심이 스멀거린다.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서울에 지진이 일어난다. 그것도 진도 13쯤 되는 지진이다(지진학에서 진도 13은 없다).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나라도 무너진다. 그런데 딱 한 동 남은 아파트. 그 이름은 황궁아파트다. 왕궁도 아닌 황궁이다. 이 나라가 황제의 나라였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1897~1910 잠깐). 기억(ㄱ) 자의 복도식 아파트는 1970~80년대의 대표적인 서민 아파트 형태이다. 최신 공법으로 지은 비싼 아파트들은 넘어지고 무너졌는데 오래전에 지은 비첨단 서민 아파트만 남았다.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지진이 일어난 직후, 모든 통신, 전기, 수도가 끊겼다. 도로는 마비되고 구조대가 언제 올지, 구조해 줄 조직이 남아 있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살아야 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여서 앞날을 도모한다. 이미 우리나라 아파트는 조직이 잘되어 있는 곳이다. 또 호전적인 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들은 조직을 잘 만든다. 붕괴된 공권력을 대신해서 살아남은 자들은 '사권력'을 만들고 주민수칙도 정한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
부녀회장인 금애(김선영 분)의 주도로 주민회의가 결성되고 영탁(이병헌 분)이 얼떨결에 대표를 맡게 된다. 영탁의 지도로 아파트에 몰래 들어와 자원을 소비하는 외부인을 빠짐없이 몰아낸다. 이렇게 조직도 만들어지고 성과도 내면서 안정을 찾아가던 황궁아파트에서 생존자들은 영생할까.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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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맡은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2023)을 만든 김성식 감독도 박찬욱의 제자로 꼽힌다. 김연아 키즈, 박세리 키즈 이후 영화계 키즈들의 탄생. 험한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잘 표현했다. 음악과 CG 등도 호평을 받았다.
콘크리트는 무엇인가
콘크리트는 65~85%의 골재, 15~20%의 물과 10~15%의 시멘트를 혼합해서 만든다. 재료를 구하기 수월하다. 시공도 간편해 현대의 거의 대부분의 건축물 및 사회간접시설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우리의 유토피아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고 건물, 지하철, 고속도로, 다리, 터널, 공항, 댐, 항구 등 그 용처는 이루다 말할 수가 없다. 여러분이 오늘 밟고, 지고 다닌 콘크리트는 얼마나 될까.
포졸란(pouzzolane), source: wikimedis commons by Luk~commonswiki
콘크리트의 원료인 시멘트는 이미 로마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로마시대 나폴리 근처의 포추올리 화산재에서 '포졸란(pouzzolane)'이라는 화산재를 이용했다. 포졸란은 물에 녹지 않지만 수산화칼슘과 반응하여 불용성 화합물을 만든다. 로마인은 근처에서는 석회석을 구하기 쉬웠고(판구조론 조금만 알면 다 안다), 이를 구워서 석회를 만드는 기술도 확보하고 있었다.
측면에서 바라본 로마 판테온의 절개한 모습, source: wiki. com. by public domain
콘크리트 구조물 이야기에서 반드시 나오는 건물이 로마의 판테온(Phatheon)이다. 만신전이라고도 불리는 판테온은 무려 서기 125년에 지어졌다. 그 건물의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뛰어넘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비철근 콘크리트 돔 단일 구조물로 유명하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비도 들어오고 햇살도 들어온다. 콘크리트에 사용되는 부자재를 하중의 부담에 따라 달리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30년 가면 오래갔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갈까. 황궁아파트는 로마인이 지었나?
로마의 콘크리트가 오래가는 이유
로마 콘크리트와 현대 콘크리트의 차이는 포졸란에 있었다. 포졸란이 시멘트의 석회석과 반응하여 알루미늄이 엮기는 규산칼슘 토버라이트를 포함하는 안정된 2차 광물군을 형성한 것이다. Linda Seymour와 동료들은 현대 콘크리트에는 없는 흰색 덩어리에 의구심을 갖었다. 이에 고대유적의 샘플을 X선 분광법, X선 산란법, 라만법으로 분석한 결과 이 덩어리가 순수한 탄산칼슘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즉 현재에는 사용하지 않는 산화칼슘(생석회, (CaO))를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생석회는 물을 부으면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우리 무덤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생석회를 사용했던 것이다.
현대 모르타르 자기 치유 실험, Source: Linda M. Seymour et. al., 2023.
위 그림에서 보듯이, 현재의 모르타르에 생석회를 넣고 기계적으로 파괴해 보았다. 이 틈을 통해 30일 동안 물을 흘려본 결과, 석회 덩어리가 생기며 자연스럽게 파괴된 부분이 메꿔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원리로 고대 로마의 콘크리트는 현재의 것보다 더 내구성이 강했던 것이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우리도 자가 치유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물론 이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팔라틴에서 본 콜로세움과 콘스탄틴의 아치, source: wikimedia commons by Livioandronico2013
저 많은 콘크리트 건축물의 미래는
2050년 경부터는 폐기되는 건축물이 많아질 것이다. 이론적으로 콘크리트의 수명은 50~200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골재, 모래의 품질은 보장할 수 없다. 분당, 일산 같은 1기 신도시에도 바다모래를 썼다고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염분은 철근골조의 부식을 일으킨다. 건설은 GDP를 구성하는 요소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부수고 다시 지어야 GDP에 도움이 된다. 세법에도 콘크리트 건물은 30년 감가상각을 기본으로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중국의 콘크리트 사용량은 눈부시다. 2018~2019년 중국에서 생산된 약 44억 톤의 시멘트는 미국이 20세기를 통틀어 생산한 양(45억 6,000만 톤)과 비슷하다. 그 이후 사용량은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물론 made in china다). 2006년 건설된 중국의 삼협댐은 양쯔강을 가로막은 인류 최대의 콘크리트 댐이다. 대규모 저수에 따른 국부지진의 발생은 차치하고, 9년 동안 지어진 중국 최대의 토목공사다. 이게 다 콘크리트다. 21세기 동안 콘크리트 폐기물의 처리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중국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 삼협댐, source: wikimedia commons by Hugh
사실 기계나 건축물은 설계수명이란 것이 있다. 과다한 설계는 자금이나 자원의 과소비를 의미한다. 인간의 한 세대는 30년쯤을 이야기한다. 물론 정권의 주기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그보다 훨씬 적게 마련이다. 또 100년을 못 사는 인간이 1000년을 이어갈 건물을 만드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 10년을 쓰는 핸드폰을 만들지 못하는 우리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가. 지구의 자원이 허투루 사용되는 것은 아닐까. 이 분야뿐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인간사에서 새겨 생각해 볼 일이다.
참고문헌
1. Linda M. Seymour, Janille Maragh, Paolo Sabatini, Michel Di Tommaso, James C. Weaver,
Admir Masic, 2023,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