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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Feb 01. 2024

달콤 쌉싸름한 쵸콜릿 환상, <웡카>

영화 속 과학 이야기

"비밀이 이거야. 중요한 건 초콜릿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란다."


마법사처럼도 보이는 초콜릿 제작자 ‘윌리 웡카(티모시 샬라메 분)’는 디저트의 성지, ‘달콤 백화점(galleries gourmet)’에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여는 꿈을 갖고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모자 가득한 꿈과 단돈 12 소버린뿐이지만 특별한 마법의 초콜릿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다.


작은 글자를 잘 보아야 하는 이 도시에는 곳곳에 함정이 있다. 눈 깜 박할 사이에 가진 돈을 다 뺏긴 웡카는 낡은 여인숙에 끌려가 ‘스크러빗 부인’과 ‘블리처’의 계략에 빠져 그야말로 껍데기까지 다 벗겨진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숙박비로 인해 순식간에 빚더미에 오른다. 하지만 다정한 동료들을 만나게 되며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밤마다 초콜릿을 훔쳐가는 작은 도둑 ‘움파 룸파(휴 드랜트 분)’와 ‘달콤 백화점’을 독점한 초콜릿 카르텔의 강력한 견제에 부패한 경찰서장과 사제(유명한 배우다)까지 한통속이 되어 웡카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웡카의 마음과 달콤한 초콜릿도 만만치 않은데...


제공: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윙카 Wonka>(2023)는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 1916~1990)이 1964년 발표한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정확히는 원작에는 없는 주인공 웡카의 더 젊은 시절을 보여주는 프리퀄이다.  이 소설은 이미 1971년,  2005년에 영화화된 적이 있다.


모두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뮤지컬 영화다. 1971년 영화는 진 와일더가 웡카를 연기했는데, 원작소설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팀 버튼이 감독하고 조니 댑이 주연을 맡은 2005년의 영화는 좀 더 정신없고 기이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덜 떨어진 어른 분위기다. 그래도 젊고 차분한 조니 댑을 만나볼 수 있다.


제공: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프로드노즈, 슬러그워스, 피켈그루버는 초콜릿 카르텔을 만들어 이미 달콤 백화점에 상점을 가지고 시장을 독점한다. 성당 지하에 비밀 장소를 만들어 놓고 시장을 영구히 독점할 음모를 꾸민다. 영리하지만 초콜릿을 너무 좋아하는 서장은 초콜릿을 뇌물로 받고 웡카를 내쫓고자 한다.


제공: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움파 룸파'족은 웡카가 훔쳐간 카카오 열매 4개를 회수하기 위해 밤에 몰래 웡카의 방에 침입한다. 2005년 후속 편에는 마치 노예처럼 웡카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임상실험을 당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좀 덜 괴기스럽게 나온다. 휴그랜트의 영국식 억양이 흥미롭고 중독성 있는 노래와 춤이 재미나다(시간 날때 남이 안보는 곳에서 따라해 보시길).


제공: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감독 폴 킹은 <패딩턴>(2014), <패딩턴 2>(2017)로 가족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두 영화에 출연한 사이몬 파너비, 휴 그랜트, 샐리 호킨스가 나온다. 이번 영화의 주연인 티모시 샬라메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다. 외가 쪽의 강력한 문화예술분위기에 힘입어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인터스텔라>(2014)에서 주인공의 아들로 나왔는데 존재감이 없었다. 이후 <미스 스티븐스>(2016)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된다. <듄>(2021)과 <듄 2>(2024)에서 주연을 맡았고 <돈 룩 업>(2021), 웨스 앤더슨 감독의 <프렌치 디스패치>(2021)에도 출연했다.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남자배우다.


초콜릿(Chocolate)


카카오는 카카오나무 열매로 10cm 내외의 길이에 5개로 갈라진다. 하얀색 과육을 들어내면 40~60개 정도의 종자가 나오는데 이게 카카오 빈이다. 카카오 빈에는 약 2%의 테오브로민, 약간의 카페인과 50%의 지방이 들어있다. 성분만 보면 강력한 흥분제이자 스테미너식이란 걸 알 수 있다.  카카오 빈을 나무 통에서 며칠 동안 발효시키면 붉은빛을 띤 갈색으로 변하며 독특한 향이 난다.


카카오(Cacao) 빈을 로스팅하고 껍질을 제거한 카카오 닙스를 갈면 페이스트 형태인 카카오매스(Cacaomass)가 만들어진다(엄청 씀). 여기에 설탕 등을 첨가해 달콤하게 만들면 초콜릿이 완성된다. 카카오매스에서 지방을 빼면  카카오 버터가 나온다.  상품으로 판매되는 과자 초콜릿은 여기에 다량의 설탕, 우유 등을 넣어 풍미를 조절한 것이다. 특유의 쓴맛이 단맛과 조화를 이루는 '대비효과'를 이용하는 각종 디저트의 중요한 원료로 사용된다.


원래 마야인들은 거품의 내고 음료화해서 먹었다.  핫초코로 마시거나 고체로 굳혀 먹으며, 액체로 만들어 마시멜로를 찍어 먹거나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에 올려 먹는다. 커피 만드는 사람을 바리스타라고 하듯이 초콜릿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쇼콜라티에(chocolatier)라고 부른다.


카카오(Theobroma cacao) 열매, Source: wikimedia commons by Fpalli


초콜릿의 영양학


초콜릿에 들어 있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은 카페인 보다 강력한 흥분제인데 심혈관계 확장과 심박 상승 작용을 한다.  개, 고양이, 앵무새 등등 많은 동물이 초콜릿에 들어있는 테오브로민(알칼로이드)을 잘 분해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먹으면 심장과 콩팥에 부담이 가고 잘못하면 심장마비로 죽는다. 특히 개에게는 조심해야 하는데 단맛을 못 느끼는 고양이에 비해 개는 단맛을 잘 느끼고 아주 선호하기 때문이다. 테오브로민은 사람이 먹으면 천식이나 기침 등에 도움이 된다.


카카오 함량이 높은(70% 이상) 다크 초콜릿은 일찍부터 다양한 건강 효과로 주목받았다. 테오브로민 성분이 식욕억제호르몬인 랩틴을 자극하여 과식을 막아준다고 알려졌다. 또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다크 초콜릿을 먹는 것만으로도 30분 동안 운동효과가 있다는 동물임상실험 결과도 있다. 하지만 순수 카카오매스도 불포화지방산이라고는 하나 100g에 600kcal에 달하는 압도적인 칼로리기 때문에 과식하면 결과가 뻔하다.


cacao tree species(Criollos(blue),  Forasteros(Green), Trinitarios), Source: wiki. com. by Sémhur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유역과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강 유역으로 일컬어진다. 적도에서 위도 20도 사이 지역 중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자란다. 현재도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되는 카카오는 최상품으로 인정받는다. 유럽이 전 세계 카카오의 50%가량을 소비하며, 북미에서 25%가량을 소비한다. 카카오 생산 및 수출은 아프리카가 75%를 담당하니 커피처럼 주요 생산자와 주요 소비자가 거의 다르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럽으로의 전래


에르난 코르테스, Source: wikimedia commons


카카오의 원산지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지역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이전에 카카오나무가 경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1,500년경 멕시코만 연안의 베라크루스 남부와 타바스코 지역을 중심으로 고대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문명을 형성시킨 올메크족(olmecs)이 있는데, 이들이 카카오 원두를 갈거나 빻아 물에 탄 음료 형태로 먹기 시작한 것이 초콜릿의 기원이라고 한다.  카카오 원두는 멕시코 원주민들이 음료 또는 약용으로서 귀히 여기던 것으로, 화폐로도 유통되었고 세금과 공물로 바쳐졌다고 한다.


유럽에 전해진 최초의 기록은 15세기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 4번째 항해를 하던 중 유카탄 반도 연안에서 카카오 빈과 여러 농산물을 가지고 돌아간 때이다. 당시엔 평범한 농작물로 여겨졌다. 그 후 16세기 중반에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 15~17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을 침입한 스페인사람)인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 1485~1547)가 카카오의 활용법을 깨닫고 이를 고국의 왕 카를로스 1세에게 진상하는 과정에서 스페인의 귀족과 부유층에 소개되어 17세기 중반에는 유럽 전체에 퍼지게 됐다.


유럽에 단순한 사람들은 커피와 담배처럼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멕시코의 매운 초콜릿음료인 쇼콜라틀(xocolatl)은 당연히 유럽인들의 입맛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초콜릿의 쓴 맛을 덜하게 하기 위해 설탕을 타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또 설탕이 중요해졌다. 사실 커피를 마시던 카페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이런 것을 마시던 초콜릿하우스다.


초콜릿이 유입된 직후 16세기 한때 교황청에서는 초콜릿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 초콜릿이 지나친 매력과 흥분을 유발하는 자양제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비오 5세는 직접 이 초콜릿 음료를 먹어본 뒤 "이렇게 맛없는 것이 습관이 될 리 없다"라며 초콜릿 금지령을 풀었다고 한다. 아마도 설탕을 안 탄 쓰디쓴 생 초콜릿을 맛본 모양이다.


기브 미 초콜릿


1679년 초콜릿파우더가 선보인 이후, 1828년 네덜란드의 반 호텐(Van Houten)은 카카오 매스를 압착해 지방을 추출하여 카카오 버터를 만들었다. 그 후 카카오 버터의 성질을 이용하여 성형판을 사용, 크림에 초콜릿을 입히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1876년 스위스의 다니엘 페터(Daniel Peters)와 앙리 네슬레(Henri Nestlé)에 의해 오늘날의 밀크 초콜릿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밀크 초콜릿의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 낸 것은 다니엘 페터였는데, 우유에 수분이 제거되지 않아 생기는 흰 곰팡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가 이유식 제조자이자 연유의 발명자 중 한 사람인 앙리 네슬레의 기술 협력으로 현재의 밀크 초콜릿이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둘은 이를 계기로 네슬레사를 설립한다.


쿠키나 케이크 등에 외피처럼 입힐 수 있는 커버링 초콜릿도 같은 해 스위스의 린트(Lindt)에서 제조되기 시작하면서 소비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여기에 원산지인 중남미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제국주의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대량 재배되면서 생산 역시 크게 늘었다.


D ration chocolate bar, source: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public domain


초콜릿은 칼로리가 높아 에너지 보충에 제격이다. 휴대하기 좋고, 잘 썩지도 않아 오래전부터 군대 비상식량으로 쓰였다. 미군도 2차 대전 때 허쉬사(Hershey's)를 통해 초콜릿바를 만들어 비상식량(D레이션)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군인들은 주둔지에서 어린이에게 초콜릿을 나눠 주었는데, 아이들은 미군만 보면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쫓아다녔다.


2차 대전이 종전된 후에 풍요로워진 유럽과 미국 등 서양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초콜릿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페레로 로쉐(Ferrero Rocher)나 허쉬 같은 초콜릿 기업들도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유럽인과 미국인들은 3일에 한 번 판초콜릿을 먹었다고 한다. 치과의사도 먹고살 길이 생겼다.


조선말 러시아공사 부인이 명성황후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고, 1968년 동양제과와 해태제과에 의하여 처음으로 초콜릿이 제조, 판매되었다. 너무 단 쵸콜릿은 쵸콜릿의 풍미를 느끼기 어렵다. 다크쵸코릿이 진정한 쵸콜릿에 가깝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달콤 썁사름한 맛으로 표현한다면 그게 바로 초콜릿이 될 것이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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