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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Aug 23. 2023

와인은 프랑스에서 어디로 갈까?

생활 속 지질학, 지구온난홰


일제강점기의 시인 이육사(1904~1944)는 시 <청포도>(1939.8. 문장지 발표)에서 '내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9월이 포도의 계절이고 청포도는 그나마 칠레산이 많이 나오고 있다.  2019년 여름은 '샤인 머스캣(Shine muscat)'이라는 포도가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이 포도는 큼직한 알에 씨도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어, 그야말로 '모시 수건'이 없더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샤인 머스캣은 일본에서 만든 이른바 '청포도 거봉'이다. 1988년 일본의 국립 농업연구소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일본 이외의 외국에서는《식물의 신품종 보호에 관한 국제 협약(UPOV)》에 따른 품종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로열티를 주지 않고도 재배할 수 있다. 원가가 싼 만큼 급격히 재배면적은 늘어 갔고 FTA 협정 후 어려웠던 과수농가에 큰 힘이 되었다. 경북 상주, 김천, 영동에서 많이 나오고 영주, 충남 부여에서도 출하가 된다.


신사임당, <포도>, 31.5x21.7cm, 견본채색, 간송미술관, 출처: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포도를 생각하면 주저리주저리, 알알이, 주렁주렁 같은 말이 따라온다. 포도는 예로부터 풍요, 생명, 다산을 상징하였다. 성경에서 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상징됐고 포도주를 식사에 곁들여 자주 마신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뜻으로 그림에 석류와 함께 포도를 그림과 도자기에 자주 그렸다.


프랑스 포도밭에서 벌어진 일


2022년 프랑스 서남부 보르도(Bordeaux) 지역에서는 그동안 금지되어 온 포도밭에 시설을 이용하여 물을 주는 것을 허용했다. 전례 없는 가뭄이 오랜 전통을 이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에는 엄격하게 재배를 허용된 포도 품종을 관리했는데, 여기에  레드 와인용으로 네 가지, 화이트 와인용으로 두 가지 등 모두 여섯 가지를 추가로 허용했다. 이들 새로 허용된 품종은 모두 더위와 가뭄에 강한 품종이다.


Vineyards of Château d’Yquem, Sauternes,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egan Mallen


실제로 2022년 유럽의 여름은 예년 평균 기온을 크게 웃돌았다. 1991년~2020년 여름 평균기온보다 프랑스는 2.43℃ 높았으며 이탈리아는 2.28℃ , 스페인 2.11℃ 등 대체로 2℃ 이상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더위로 인한 사망자도 6만 1,700명이 사망해서 가장 더웠던 2003년 7만 명의 사망자에 근접하는 수치가 나왔다.


와인용 포도는 무엇보다도 기후에 매우 민감하다. 따뜻한 햇볕에 포도가 익으며 당을 만들면 이 당이 알코올로 변해 포도주를 만든다. 하지만 햇볕이 지나치고 더우면 포도의 당도가 올라가고 알코올 농도도 올라가는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와인 전문가들은 최고급 와인은 포도 생산의 북쪽 한계선 주변에서 생산된다고 주장한다. 일교차가 심한 기후 조건이 포도가 숙성하고 풍미가 익어갈 시간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수목한계선이 북상하고 있는데 포도도 예외가 아니다. 이에 맞춰서 일부에선 포도 재배 지역을 옮기고 있다. 예전에는 보르도 북쪽 대서양 해안을 따라, 영불해협에 붙어 있어 바람이 너무 거세고 기온이 낮아 꺼리던 브르타뉴(Bretagne)와 노르망디(Normandie)까지 와인용 포도 재배지가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독일, 스웨덴 남부해안에서도 품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늘고 있다.


보르도 와인, source: wikimedia commons by Colin


하지만 경작지 이동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보르도의 샤또(Château) 와인이 명품 대접을 받고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사용되는 포도가 보르도에서 생산돼야 하기 때문이다. 엄격한 프랑스의 와인 원산지 규정은, 보르도의 특정 지역 바깥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은 보르도 와인이 아니라고 한다.


수확한 포도를 옮기고 있다. Aosta, Italy,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rtemas Ward, public domain


포도와 지구온난화


품질 좋은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는 그 어떤 작물보다 날씨에 민감하다. 신맛과 단맛이 모두 우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도의 단맛은 많은 햇볕을 필요로 한다. 반면 신맛은 서늘한 날씨가 필수다. 그래서 양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데에는 적당한 일교차가 중요하다.



보통 포도는 연평균 기온이 10~20도 이하 지역에서 생산된다. 평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절이 변화해야 한다. 여름철엔 19도 이상 유지되면서 일조량이 풍부해야 한다. 물론 너무 더운 날씨는 좋지 않다. 반면 겨울에는 지나치게 춥지 않아야 한다. 포도나무는 영하 20도까지 견딜 수 있지만,  영하 1도 이상이 좋다고 한다.


적당한 비도 필수다. 포도나무가 성장하는데 연간 700mm 정도 비가 필요하다. 기온처럼 강수량도 계절에 따른 변화가 중요하다. 겨울과 봄에 비가 많이 내리고, 여름에는 포도를 맺을 만큼만 적당량의 비가 내리는 것이 좋다. 온화한 기후를 가지는 지중해 지역에서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발이 달리지 않는 포도는 포도의 당분을 증가시키고 있다. 달콤한 포도는 발효되면서 알코올을 증가시켜,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게 된다. 그러니까 지구온난화로 인해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고 단맛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빨리 딸수도 없는 게 신맛이 안 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매우 가까운 미래에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던 유명 포도주의 맛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현재의 와인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올해도 미디어들은 유럽의 폭염에 관한 기사를 매일 쏟아냈다. 그래서 지구온난화가 가속한다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와인을 영국 와인이 대체할 거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영국은 역사상 가장 더웠다. 지역에 따라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어섰다. 그보다 위도가 낮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는 폭염에 시달렸고 대규모 산불이 나기도 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폭염과 산불은 포도 생산에 치명적이다.


포도주, 점점 안 마시는 MZ세대


2023년 8월 프랑스 정부는 레드와인을 화장품 등에 사용하는 산업용 알코올로 바꿔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와인이 피부에 좋아서가 아니라 팔리지 않고 쌓여가는 와인이 많아서다.  프랑스 AFP통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프랑스 농업부는 레드와인을 약품·화장품 용도의 산업용 알코올로 증류하기 위해 1억 6,000만 유로(약 2,165억 원)를 지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국민 1인당 연평균 와인 소비량은 약 40리터로 알려졌다. 연평균 130리터를 소비했던 70년 전보다 30%로 줄은 것이다. 감소세는 꾸준했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식당들이 문을 닫으면서 프랑스 내 와인 소비가 감소했다 한다. 프랑스 와인생산 총연합회에 따르면  2022년 레드와인 판매량이 15% 감소했다고. 화이트와인과 로제와인 판매량도 약 3~4% 줄었다(슈퍼마켓 기준).


납득이 되는 게 포도주는 아무리 싸도 10유로는 하는데, 포도주를 곁들이는 진지한 식사자리가 줄고 혼밥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포도주 소비가 늘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한병의 용량이 너무 커서 한 병을 따면 다 마시기가 부담스럽다. 게다가 대체제로 위스키와 맥주가 있다. 포도주는 원액을 마시는 방식이라 위스키처럼 물을 타거나 해서 내 마음대로 먹기도 힘들다.


지구 온난화로 한국도 포도주 명가?


2010년대 중반 <신의 물방울>이란 일본 만화가 폭풍 같은 인기를 얻은 때가 있다. 최고의 와인인 '12 사도'를 맞춰야 유산을 받을 수 있다는 설정으로  프랑스와인 위주로 줄거리를 끌어간다. 그때부터 포도주 마시는 것이 우리 사회의 좀 산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다. 그 영향인지 종종 우리나라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맛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정성 들여 농사짓고 인고의 숙성시간을 거친 만큼 나름 맛이 있을 것 같다. 멋진 국산 와인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보통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는 건조하고 선선한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연평균 기온이 10~20도 선선하면서 일조량이 풍부하고 비가 적어야 당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와인이 유명하다.


국립기상과학원에서 발간한 <한반도 100년 기후변화>(2017)에서 보면 최근 30년 기온은 20세기 초보다 1.4도 상승했고 강수량은 124mm 증가했다고 한다. 여름은 19일 길어졌고 겨울은 18일 짧아졌다. 2011~2017년 연평균기온이 14.1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 온도면 포도생산에 적합한 듯 보인다.


하지만 포도주 포도에 적합한 강우량은 연간 700mm 내외이고 봄과 가을에 많이 내리는 게 좋다. 우리는 여름에 강수가 집중된다. 게다가 올해 같이 극한호우가 오면 포도나무에 최악의 기후상황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솔직히 말하면 지구 온난화로 포도주 포도가 생산되기는 어려운 환경으로 변할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우리는 열대과일을 더 쉽게 재배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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