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이국적인 장소, 풍경이나 음식을 인스트그램에 올려봐야 차별점이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양을 먹거나 이상한 것을 먹던가 하는 것으로 눈길을 끌려고 한다. 특이한 장소도 입소문이 나면 1~2개월 안에 사진이 가득해진다. 그래서 더더 특이한 볼거리를 찾는데 그중에 하나가 오로라(Aurora)다.
오로라라는 이름은 눈처럼 하얗고 장미향 나는 피부를 가진 금발의 아름다운 여신이며, 그리스의 태양신 헬리오스, 달의 여신 셀레네와 남매인 '에오스'에서 유래했다. '새벽'이라는 뜻이며,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여명의 여신(아우로라)'이기도 하다.
the Víkurkirkja church at Vik in Iceland,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stroAnthony
오로라 핫스폿
오로라는 추운 고위도 지방으로 가야 하고, 낮에는 안 보이니 밤에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구름 끼거나 비 오는 날이 많아져 쉽게 보기 힘들다. 거기에 지구 자기장의 변화와 태양풍의 세기까지 모조리 궁합이 맞아야 하니 멋진 오로라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까 말까 하다.
오로라는 밤에 생기니 밤을 새워야 하고 그러니 낮에는 자야 한다. 그렇다고 밤새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뜬눈으로 세워야 한다. 그 추운 지역엔 다른 볼 것도 없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으니까. 누군가는 템플스테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된다는데 딱 맞는 표현이다.
가장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 곳은 아이슬란드, 캐나다(엘로나이프, 화이트호스, 도슨시티), 북유럽 3개국 등 추운 나라다. 물론 각 나라에서도 잘 보이는 곳은 그때그때 다르다. 기간은 춘분이나 추분 때 잘 보인다. 여행경비가 만만치 않으니 오로라 구경했다고 하면 부자라고 알면 된다.
북극권 오로라 대역(NOAA), Kp는 지자기장 활동 수준임. 출처: NASA & NOAA
:: 서로 다른 지자기 활동(geomagnetic activity) 수준에서 오로라의 밤중 경계를 보여주는데 Kp = 3은 낮은 지자기 활동 수준에 해당, Kp = 9는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 따라서 지자기가 강해지면 낮은 위도 지역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오로라가 자주 보이는 곳은 남극과 북극 지방의 지구 자기 위도 65∼70도의 지역으로 오로라 대역(auroral zone)라고 한다. 오로라 대역보다 고위도(극관지역)나 저위도로 가면 출현빈도가 감소한다.
출현하는 위도는 시간에 따라 다르며, 야간에는 65∼70도에 많으며, 주간에는 75∼80도로 위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오로라가 출현하는 위도가 지역 시간에 따라 변화를 보이기 때문에 오로라출현대(지구를 극지의 상공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동시에 오로라가 보이는 영역)를 오로라대와 구별해서 오로라 오벌(aurora oval)이라고 한다.
오로라 오벌은 대개 2종류의 오로라로 구성되는데, 낮~저녁~심야에 이르는 시간에는 커튼형 오로라이고, 그 이후 심야~아침까지의 반(半)은 주로 맥동성오로라로서 일반적으로 엷은 배경으로 동반되어 나타난다.
오로라
멋지고 환상적이지만 오로라는 자기장이 있는 행성에 나타나는 과학 현상이다. 태양은 양성자와 전자 등으로 이루어진 플라스마 입자를 항상 방출한다. 보통 18시간이면 지구로 도달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자기장 밖으로 흩어지지만 일부는 지구의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하고 공기 입자와 충돌, 오로라를 만든다. 그런데 지구의 자기장은 극지방 쪽으로 갈수록 얇고 구부러지는 형태가 되는데 이곳에 플라스마가 빨려 들어 산소와 질소 분자와 충돌하게 되고 강력했던 에너지를 잃어버리면서 빛을 내는 것이 오로라다. 낮 쪽에서는 안 보이고 지구의 반대편 자기장에 부딪친 게 밤 쪽에 관찰되는 오로라를 발생시킨다.
Aurora From Space, source: wikimedia commons by NASA
오로라가 생기는 원리를 보면 사실 똑같은 자력선을 따라 플라스마가 스며들면 북극권과 남극권에서 비슷한 색과 모양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때 태양의 지닌 강력한 자기장 때문에 자력선이 뒤틀리면서 대칭적인 모양이 아니라 짓눌린 타원 모양처럼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로라의 색상이나 모양, 발생하는 위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오로라의 종류
오로라는 극관(極冠) 글로오로라, 대형(帶型) 오로라, 중위도(中緯度) 오로라 등 크게 셋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서 가장 현저한 것이 극관글로오로라, 대형오로라이고, 보통 오로라라고 하면 다시 커튼형 오로라, 패치상(狀) 맥동성오로라, 희미한 부정형(不定形) 오로라(diffuse auora)로 나뉜다.
오로라가 나타나는 높이는 지상 약 80∼수백km이다. 커튼 하단의 높이는 전리층 E층 (100~110km)이고, 커튼 상반부는 400km까지 펼쳐져 있다. 지구자기장의 모양에 따라 보통 극관글로오로라는 80∼100km, 중위도오로라는 300∼600km에서 나타난다. 또 대형오로라는 출현시간, 위도 및 그 종류에 따라 고도가 변화한다. 일반적으로 주간에 고위도에서 출현하는 커튼형 오로라는 백수십∼수백km로 높지만, 저녁부터 심야까지는 점차 하강해서 100∼수십백 km가 된다. 심야에서 아침까지의 오로라는 주로 맥동성 오로라로서 높이가 커튼형보다 낮아서 90∼100km 정도가 많다.
Vallentuna, Sweden, March 17/18, 2015, source: wikimedis comons by P-M Hedén, public domain
오로라의 다양한 색상은 대기 중 산소와 질소의 양에 따라 발생하는 색들 차이로 나타나는 것으로, 산소와 플라스마가 충돌하면 주로 녹색과 적색 빛이 나타나며, 질소와 만나면 파란색과 보라색 빛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 나타난 오로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오로라(적기, 赤氣)가 발견됐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래는 1737년 조선왕조실록 중 일부이다.
영의정 이광좌가 아뢰기를, "며칠 전 새벽에 일어나 동쪽을 보니 불꽃같은 붉은빛이 있었는데, 그것은 적기(赤氣)였습니다. 올해도 재변이 이처럼 거듭되고 있으니 수성(修省)하는 방법으로는 덕(德)을 닦는 것이 최선이고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차선이니, 청컨대 조정의 신하로 하여금 각각 몇 사람씩 천거하도록 하소서.(1737, 영조 13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1625~1628년 사이 연평균 20여 차례의 오로라가 관측됐다고 한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에 ‘오로라’로 추정되는 기록은 수백 차례 정도가 나타난다고 한다.
오사카대 교토대와 콜로라도대 천문학자들은 1770년 9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태양 자기 폭풍의 결과로 동북아시아에 오로라가 관측됐다는 연구 결과를 2017년 11월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에 소개했다. 청 왕조의 공식 기록과 조선왕조실록 및 승정원일기, 일본 내 기록 111건을 조사, 기록을 검토한 결과 오로라가 관측된 기간은 1770년 9월 10일부터 19일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해당 날짜의 승정원일기에 거의 매일같이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오로라’ 현상을 관찰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적기는 왕의 처신으로 연결되니 왕에겐 잘된 일이다.
2003년 10월 30일 보현산천문대에서 촬영된 오로라, 출처: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최근에 관측된 오로라
2003년 10월 30일 태양의 거대한 폭발로 강력한 에너지의 하전입자가 지구로 쏟아져 들어왔다. 덕분에 이때 발생한 오로라는 꽤 남쪽까지 내려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었다. 경북 영천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 천문대에서 극지연구소 원영인 박사가 붉은색 오로라를 관측, 촬영했다. 보인다고 해도 중위도 지방에서는 낮은 고도에서 생기는 녹색 오로라는 볼 수 없고 높은 고도에서 생기는 붉은 오로라만 관측할 수 있다.
2025년 우리나라에서 오로라 관측 가능?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태양 활동이 25번째 주기에 들어섰다고 2020년 9월 공식 발표했다. 나사는 15일 국립해양대기국(NOAA)과 함께 '태양 25주기 예측위원회'를 열어 태양 활동이 2019년 12월 극소기를 지나 새로운 주기를 시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태양 활동은 약 11년 주기로 극소기와 극대기를 반복한다.
흑점은 태양 플레어나 코로나 질량 방출 같은 폭발 현상의 진원지로, 이곳에서 발생한 강력한 자기장이 열전달을 방해하는 탓에 주변보다 온도가 낮아 검게 보인다. 따라서 흑점 수가 줄어들면 태양 표면의 폭발 현상이 줄어든다는 걸 뜻한다. 흑점이 많아지면 폭발현상이 늘어 지구의 통신과 전력망, GPS, 항공기 운항 시스템, 우주선 등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2월, 2012년 3월, 2013년 11월에 우리나라의 단파통신에도 지장을 준 바가 있다.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 spaceweather.rra.go.kr 참조)
나사는 2025년 7월에 극대기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극대기에는 보통 200개가 넘는 흑점을 볼 수 있다. 이 위원회는 이번 주기의 태양 활동은 이전 24번째 주기와 마찬가지로 평균 이하의 활동 강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2024년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하는 유인 달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Artemis Program)'가 계획되어있는데 이 때는 태양주기가 정점을 향해 진행되는 시기다. 하지만 오로라 측면에서 보면 가장 화려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Eielson Air Force Base, Alaska, source: wikimedia commons by public domain
Aurora in Nunavut source: wikimedia commons by S.Qollaku
마냥 아름다운 오로라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오로라가 발생하는 지구 대기 영역은 전리권으로 불리는 전자가 밀집해 있는 공간이다. 전리권은 전자기파를 반사해 원거리 무선통신을 가능하게 하지만 오로라 등으로 전자밀도가 급격하게 변할 경우 통신을 교란하고 위성에서 오는 신호를 왜곡해 GPS와 같은 항법 시스템의 성능을 떨어뜨린다. 오로라의 아름다움에 취해 내비게이션만 믿고 눈 덮인 길을 운전하다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2023년 3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맨체스터로 향하던 영국 이지젯 여객기가 비행 중 오로라를 발견하고 승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예정에 없던 360도 비행을 했다는 흐뭇한 소식이 들렸다. 비행 방향의 한쪽에 앉은 승객만 보였을 테니 다른 쪽에 앉은 승객을 배려한 비행이었다. 기장은 꼭 그렇게 해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그 한 번의 기억이 승객들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나 보다. 배려와 너그러움이 인류 사회를 지탱하는 진정한 힘일 것이다.
오로라는 자연현상이지만 신비롭다. 점점 더 핫한 장소를 찾지만 오로라는 결코 핫하지 않고 쿨하기도 하다. 일상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고 일상이다. 우리가 사는 곳을 다르게 볼 수만 있다면 거기에 오로라가 있을지도 모른다. 파랑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