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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Nov 02. 2023

기적을 이룬 라면의 비밀

생활 속 과학 이야기

가난한 가족은 오늘도 끼니 때울 돈이 없어 라면 두 개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독실한 신자인 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적은 라면이라도 주신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올렸다. 신앙심의 힘으로 다 해결될 것을 의심하지 안 않았다. 정말로 간절하고 장황한 기도를 마친 가족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났다. 두 개의 라면이 네 개분으로 불어났던 것이다.


면이 붓는 이유


이처럼 면은 즉시 먹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퉁퉁 불어 터져, 맛과 식감이 없어진다. 왜 그럴까.

주된 원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을 둘러싼 표면과 중심 사이의 수분 함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면은 삶는 동안에 면의 바깥쪽에서 중심 부분으로 수분이 퍼져간다. 따라서 막 삶아놓은 면은 표면과 내부의 수분 함량이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면의 표면은 80~90%, 내부는 50~70%의 수분 함량을 지닌다.



스파게티면을 삶을 때는 면을 잘라봐서 면 중심부에 바늘 끝 정도의 심지(안 익은 부분)가 남아있을 때까지만 삶아야 맛있다고 한다. 이 상태를 ‘알 덴테’(Al Dente)라고 한다. ‘덴테(dente)’란 이탈리아어로 ‘치아(tooth)’를 뜻한다. 일부 나폴리 지방에서는 완전히 익힌 것보다 약간 덜 삶은 것을 별미로 꼽는데 이런 연유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면의 중심 부분에 심이 남아있다는 것은 면의 표면과 중심 부분의 수분함량이 차이가 난다는 점을 의미한다. 면을 입안에 넣으면 먼저 수분 함량이 높은 표면이 입에 닿고, 씹을수록 표면에서 내부로 파고들면서 쫄깃한 느낌을 주게 된다. 따라서 면의 표면과 내부의 수분 함량 차이가 명확할수록 부드럽고도 쫄깃한 맛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면 속에는 수분 함량이 적어 쫄깃함을 느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부 수분 함량이 점점 많아져 표면과 수분 함량이 같아지게 된다. 결국 쫄깃한 식감은 사라지고 면은 퉁퉁 불어버리게 되어 결국 뚝뚝 끊겨버리는 면이 되고 만다.


특히 라면같이 기름에 튀기는 면은 면발에서 수분이 증발하면서 무수한 구멍이 생기게 되고 먹는데 시간이 지나게 되면 퉁퉁 불어버리기 쉽다. 면은 밀가루인 만큼 물이 많이 들어가면 점성이 풀어지고 쫄깃함이 사라지게 된다.


불지 않게 하는 방법


당연히 끓인 후 오래 방치할 경우 면발을 불어버릴 수밖에 없다. 서둘러 먹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만약 식사 속도가 사람마다 상이하니 먹는 도중 면발이 불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냄비에 끓여 불을 끄고 (영화처럼) 냄비 채로 먹는 게 아닌 차가운 그릇으로 옮겨 먹는 것이 좋다. 이유는 냄비의 잔열이 면에게 열을 가해 더 빨리 불어버리게 한다며 면발이 어느 정도 익었다고 생각될 때 서둘러 그릇이나 냄비에 옮겨야 한다고 한다. 즉 설거지 거리가 늘어도 맛있게 먹으려면 별도의 식기로 옮겨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면발이 두꺼운 우동,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obius6

또 익어가고 있는 면발을 꺼내 찬물을 끼얹는 방법이 있었다. 면발은 어느 정도 익으면 거품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면발을 건져 올려 찬물로 헹궈 주면 푹 익어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일본의 라멘집 같은 경우 중간중간 면발을 들어 올려 공기 중에 식혀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국물이 있는 면요리는 서둘러 먹는 것이 최고의 식감을 즐기는 비법이다.


밀가루의 과학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보통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입에 착 달라붙는’ 면발을 선호한다. 그리고 요리사들은 그런 면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하우와 조리법을 개발했다. 특히 조리 과학이 발달한 현대로 올수록 해법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쫄깃하고 쫀득쫀득한 면을 만들 수 있는 비결, 그 속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는 무엇일까.


Wheat field in Vampula, Finland., source: wikimedia commons by kallerna


우선 면의 원료인 밀가루에 물을 섞어 반죽을 해보면, 반죽을 할수록 끈기가 더해져 덩어리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면을 탄생시키는 원료인 밀가루는 크게 두 가지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바로 전분(탄수화물)과 단백질이다. 밀가루 단백질은 수용성 단백질과 불용성 단백질로 나뉘는데, 이 중 물에 녹지 않는 단백질(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 물을 만나면 끈기를 갖고 서로 결합하는 성분으로 변하는데 이를 ‘글루텐’(gluten)이라고 한다.


글루텐의 구조,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arinasauri


그림에서 프롤라민은 높은 프롤린(proline) 아미노산 함량을 갖는 식물 저장 단백질 그룹이다. 밀에서는 글리아닌, 보리에는 호르데인으로 불린다. 또 다른 단백질인 글루테닌은 밀가루 내 단백질로 전체 단백질의 47%를 차지한다.  즉 밀의 단백질은 글리아닌과 글루테닌의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글리아닌은 빵의 점성, 신장성에 관여하고, 글레테닌은 탄성에 관여한다. 이 두 성분이 물과 결합하면 글루텐이 만들어진다.


밀가루와 물을 혼합해 반죽하면 글루텐 분자 간에 그림처럼 그물망 같은 결합이 생긴다. 면이 쫄깃해지는 것은 이런 구조 덕분이다. 쌀에는 글루텐이 없기 때문에 반죽을 할 수가 없다. 쌀이 밥이나 떡으로만 이용되고, 빵이나 국수, 만두 등 반죽이 필요한 요리에 적합하지 않은 게 이 때문이다.


밀가루의 구분


당연히 밀가루는 글루텐의 함량에 따라 가공 용도가 달라진다. 글루텐의 함량이 많은 강력분으로 만든 반죽은 탄력이 크고 단단한 성질이 있으므로 빵을 만드는데 좋으며, 중력분은 국수류, 박력분은 과자, 케이크, 튀김류를 만들 때 쓰인다. 글루텐의 양이 많은 밀가루에서는 사슬 구조가 더욱 두꺼워진다. 이 경우 적당한 탄력과 무른 정도를 유지하는 반죽을 하고 싶다면 물과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빵을 만들 때 밀가루의 특성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발효와 굽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글루텐의 그물 구조가 제 역할을 해낸다. 즉 글루텐의 끈기는 반죽 안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놓는 능력을 갖고 있어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글루텐 결합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


글루텐의 친구는 소금, 액체류, 계란, 천적은 설탕, 지방(유지), 전분이다. 소금은 글루텐의 퍼지는 성질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그래서 밀가루 반죽에 소금(물)을 넣는다. 이밖에 소금은 반죽의 숙성 중에 일어나는 화학변화를 억제하여 유해미생물의 번식을 막아주고 면의 맛을 좋게 하며, 데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의 소금은 삼투압 현상을 일으켜 반죽 속에 수분을 지나치게 빨아들인다. 또한 반죽을 치대면 글루텐 형성이 촉진된다.


잘 만들어진 우육탕면, source: wikimdedia commons by 大众点评


반면 설탕이나 전분, 유지의 입자는 글루텐의 결합을 방해하거나 아예 짧게(shortening) 끊어버린다. 설탕이나 유지가 많이 첨가된 크루아상이나 파이가 잘 부서지는 이유다. 그리고 기름이 번질번질한 이유다.


첨가되는 재료는 밀가루의 반죽 시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반죽 종료 몇 분 전에 소금을 첨가하면 반죽에 소요되는 시간을 20% 정도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튀김반죽에 얼음을 사용하는 것, 많이 저어주지 않는 것은 글루텐 생성을 줄여 바삭한 맛을 얻기 위해서다.


밤에 라면을 먹고 자면 얼굴이 붓는 이유


한밤중에 매콤한 라면의 유혹은 강력하다. 그런데 자칫 잘못 먹으면 다음날 소화 불량에 얼굴이 붓기까지 한다. 밤에 라면을 먹으면 얼굴이 붓는 이유는 나트륨 때문이다. 우리의 혈액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장으로 구성된다. 혈장은 혈관 내에서 영양소나 호르몬, 노폐물을 몸 곳곳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라면을 먹으면 혈장은 많은 양의 나트륨을 세포 곳곳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나트륨이 들어간 세포들은 삼투압 현상(수분이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으로 수분을 끌어당긴다.  혈관을 돌아야 할 수분이 세포에 잡히면서 붓게(일종의 부종)되는 셈이다. 특히 얼굴이 붓는 이유는 영양소 교환이 이뤄지는 모세혈관이 다른 부위보다 얼굴에 더 많기 때문(그래서 빨개지기도 쉽다)이다.


붓기를 예방하려면 나트륨을 줄이거나 빠르게 배출해야 한다. 나트륨을 빼고 먹으면 안 붓지만 당연히 라면맛이 없다. 낮에는 수시로 수분을 섭취해 체내 나트륨 농도를 낮출 수 있지만, 자는 도중엔 자다 말고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붓기가 심해진다. 따라서 라면을 먹은 뒤엔 체내에서 자동적으로 나트륨 배출을 촉진하는 칼륨을 섭취하는 게 부기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칼륨 이온 2개는 세포 사이로 파고들어 나트륨 이온 3개를 배출하는 특성을 가지는데 이를 ‘나트륨-칼륨 펌프(sodium-potassium pump)’라고 한다. 게다가 칼륨은 수분과 함께 쉽게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칼륨이 많은 식품인 우유, 바나나, 호박, 해조류 등이 부기를 빼는데 좋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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