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 살아가는 저자와 편집자의 로맨스가 제철 음식과 어우러진 잔잔한 드라마이다. 13년 전 타계한 아내의 유골을 가지고 사는 작가 츠토무(사와다 켄지 분)는 편집자 마치코(마츠 다카코 분)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는다. 인터넷 시대에 굳이 작가를 찾아와 원고를 챙기는 편집자나 편집자에게 원고 이야기는 안 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저자나 쉽게 상상할 수는 없지만 괭장히 부러운 사심을 살짝 감춘 관계를 이어간다.
허둥대지만 음식에 대한 리액션이 최고인 편집자에게, 눈길은 주지는 않지만 흐뭇해하는 작가의 표정은 연심이 가득하다. 원고를 재촉하는 그녀에게 어쩔 수 없이 써준 제목은 "열두 달, 흙을 먹다(土を喰らう十二ヵ月)."이다.
쇼와시대 인기작가 미즈카미 츠토무(みずかみつとむ, 1919~2004)의 자전적 음식 에세이를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4월 이야기>(1998)의 상큼한 히로인 마츠 다카코의 25년 후 모습을 볼수 있고, 1980년대 혈기 넘치던 그룹사운드 가수 사와다 켄지의 넉넉하게 나이든 모습이 잘익은 우메보시 같은 진한 맛을 풍긴다.
제공: (주)얼리버드픽쳐스
츠토무가 지내는 곳을 나가노현(長野県) 스게무라라고 영화에서는 나온다. 나가노현은 바다와 접하지 않은 일본의 8개의 현 중에 하나이다. 가장 바다와 먼 도시도 나가노현에 있다. 나가노현과 강원도는 2016년에우호교류협정을 맺었다. 그만큼 두 지역이 비슷하다.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것도 공통점이다. 스게무라는 실재하는 지명은 아니고 따로 붙인 지명인 듯하다.
제공: (주)얼리버드픽쳐스
동경에서 출발한 마치코는 나가노시에서 하쿠바촌을 연결하는 406번 도로를 이용하여 시라사와 고개를 넘어 터널을 통과하여 백척동문(白沢洞門)에서 북 알프스 고다테산 연봉을 보게 된다. 촬영장소는 동계올림픽 경기장이 있는 나가노현 기타 아즈미 군 하쿠바촌(白馬村) 호쿠조 스가게이다. 나가노시에서 동쪽방향으로 차로 가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그 밖에도 나가노현 기타 아즈미 군 오다니무라, 오마치시, 마쓰모토시, 스자카시와 니가타현 이토이가와시에서도 촬영되었다.
촬영지역은 일본 북알프스의 동쪽 편인데 2014년 11월 22일 M6.7의 지진이 있었다. 지진은 오타리존과 하쿠바촌 사이의 가미시로 단층에서 일어났다. 진원은 5km로 추정된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이 46명의 부상자만 발생했다. 사실 혼슈 중앙으로는 일본을 반으로 나누는 중앙단층대가 있다.
토란 구이, 제공: (주)얼리버드픽쳐스
죽순요리, 제공: (주)얼리버드픽쳐스
9살에 입 하나 덜려고 절로 보내진 츠토무는 13살에 절에서 도망칠 때까지 동자승으로 식사담당을 하는 전좌(典座) 일을 했다. 그는 절에서 "상차림은 밭에 물어보라고 했다. 텅 빈 부엌에서 밥 짓기가 수행이기에 전좌는 부엌과 밭을 따로 떼려야 뗄 수 없다. 자그만 밭에 의견을 구하는 것이 제철을 먹는 일이며 곧 흙을 먹는 일임을 말로써 답을 듣지 않아도 배울 수 있었다"라고 제철음식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고 추억한다.
그래서 지금도 제철에 나는 채소를 뿌리와 껍질까지 잘 살려 그야말로 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려내는 요리를 해서 먹는다. 그에게 손님은 편집자 마치코와 바보 시바견인 산초뿐이다.
제공: (주)얼리버드픽쳐스
혼자 사는 장모의 죽음에 얼떨결에 우유부단한 처남을 앞세운 처남댁의 강요로 츠토무는 자기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손님을 대접한다. 절에서 배운 반야심경까지 읊으며 소박하지만 성의를 다한 음식까지 내며 문상객을 맞는다. 덩달아 마치코도 손을 돕는다. 음식을 칭찬하는 주민들의 성원에 마음이 열린 츠토무는 또한번 얼떨결에 장모의 유골까지 떠맡게 된다. 이제 제단엔 유골봉투가 두개가 된다.
양하주먹밥, 제공: (주)얼리버드픽쳐스
제공: (주)얼리버드픽쳐스
고마도후, 제공: (주)얼리버드픽쳐스
장례를 마친 츠토무는 마츠코에게 여기서 함께 살면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며 프로포즈를 한다. 하지만 백로에 산초와 산책을 나갔다 황토층을 본 츠무토는 자기 뼈를 담을 항아리를 빚으려고 하던 중 심근경색을 일으켜 마츠고의 도움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실려간다. 3일 만에 깨어나 집에 온 츠무토는 죽음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결국 마츠코를 놓아주고 집사람과 장모의 유골을 호수에 뿌린다.
일본 가정요리의 본질을 추구하는 유명 요리사인 도이 요시하루(土井善晴, 1957~)의 자문을 받고 그릇과 음식을 준비했다. 좀 어눌한 조문객들은 나가노 현지인들을 오디션을 보고 뽑아 나가노 말투를 영화에 담았다.
촬영한 집은 오래된 민가를 리모델링하였고 집 앞 텃밭을 가꾸어 계절별로 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 조감독과 스탭이 촬영시작 6개월 전부터 현지에 기거하면서 촬영 때 알맞은 채소를 얻을 수 있도록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물론 산나물은 촬영 시점에 직접 산에서 채취한 것을 사용하였다.
24 절기는 간혹 음력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양력기준이다. 춘분을 시작으로 황도면을 15도 기준으로 24개로 나누어(즉 절기 사이는 15일임) 각각의 절기를 이름 붙였다. 당시에는 태음력을 달력으로 사용하였는데, 계절의 변화와 다른 일자로 표시되기 때문에 농경에 적합하지 않았다.
24 절기 72 후, source: wikimedia commons by Kamatte2010
24 절기의 첫 시작은 입춘(立春)으로 2월 4일 경이다. 여름의 시작인 입하(立夏)는 5월 5일, 가을의 시작은 입추(立秋)이고 8월 7일 경, 겨울의 시작은 입동(立冬)으로 11월 7일이다. 24 절기의 마지막은 대한(大寒)으로 1월 20일이다.
24 절기의 유래는 주(周) 나라 당시 중국 화북지방(북경 근처, 황하 이북, 회하 이북이라고도 함)으로 알려졌다. 2,500년 전의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기준이다. 게다가 화북 지방은 밀과 같은 밭농사가 중심이었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기후와는 맞지 않았고, 논농사 중심인 우리의 농업현실과 달랐다. 이에 조선 세종은 정초, 변효문 등에게 명을 내려 <농사직설>(1429)을 짓는 등 개선을 꾀했다.
기후온난화로 예전의 절기에 해당하는 기후가 점점 달라진다고 한다. 지구 전체의 온도가 올라가니 봄, 여름은 빨라지고, 가을, 겨울은 늦어지게 되었다. 2021년 기상청의 <기후변화가 바꾼 우리나라 사계절과 24절기>를 보면, 과거 30년 대비 최근 30년은 여름은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고 한다.
출처 : 기상청(2021)
절기와 후를 합쳐 기후로 표현되는 24 절기는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각 절기가 0.3~4.1도 상승하고 있다. 특히 겨울과 봄에 해당하는 '대한'과 '소한'의 기온 상승이 높게 나타났다. 옛말에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젠 아무도 얼어 죽지 않는 시절이 오고 있다. 속담도 바꿔야 하는 세상이다.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의 온도가 이제는 각각 13일, 8일 당겨서 나타나고 있다. 절기 간의 간격이 15일임을 감안하여 볼 때, 가까운 시간에는 절기에 대한 계절감각이 한 칸씩 당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김장을 보더라도 예전에는 보통 입동에서 소설사이에 담궜는데 점점 늦어지는 추세이다. 절기의 기후가 점점 달라지는것은 분명하다. 섣불리 절기 이야기하면 노땅 취급받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조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