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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Nov 15. 2023

무한 도전,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2023)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수영 전문가 다이애나 나이애드는 평생의 꿈을 이루려고 결심한다. 그런데 사소한 장애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녀의 나이가 60세이고 다른 하나는 그 꿈이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거친 바다를 100마일 헤엄쳐 건넌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는 스포일러도 없다. 갖은 고생을 다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후 결국 성공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두 명이니 끈끈한 우정이 나오리라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Nyad)>는 중국계 미국인 부부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Elizabeth Chai Vasarhelyi)와 지미 친(Jimmy Chin)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두 사람은 2019년 <프리 솔로(Free Solo)>로 91회 아카데미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바 있다. 참고로 프리 솔로란 인공보조물이나 확보 없이 등산화와 손에 바르는 석회가루만 이용하여 홀로 거칠고 높은 암벽을 오르는 등산방식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운동 1위에 꼽힌다. 따라서 멍멍이 고생을 사서 하는 감독이자 등반가들이라 생각하면 딱 맞다.


Diana Nyad , 2016 응용스포츠심리연례회의, Source: wikimedia commons by Gage Skidmore


영화는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Diana Nyad, 1949~)의 삶을 다룬 스포츠, 전기 영화이다. 뉴욕출신으로 청소년기를 플로리다에서 성장한 그녀는 올림픽 대표 출신 잭 넬슨에게 수영을 배워 지역 대회를 휩쓸고 올림픽 추전을 꿈꾸던 중 심장내막염으로 장거리 수영으로 전환한다. 1975년 맨해튼 둘레 (45km) 수영(7시간 57분) 성공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 후 쿠바와 플로리다 간의 수영 종단에 도전했는데 1978년(29세), 2011년 8월, 9월(62세), 2012년 8월의 도전은 거센 해류, 상어, 독성 해파리떼로 모두 실패했다.


 다이애나  하바나 - 키웨스트 실재 수영 경로, 1978 ~ 2013, source: wikimedia commons by Froggerlaura


결국 64세이던 2013년 8월 31일 해파리 방어용 실리콘 마스크, 전신수영복 등을 착용하고 안전망 없이 하바나 바다에 뛰어들어, 9월 2일 오후 1시 55분 미국 플로리다 키웨스트 해안에 도착했다. 최초로 하바나-마이애미 간 180km를 53시간 동안 헤엄쳐 종주한 것이다.


딱 맞는 캐스팅의 두 배우


이 영화의 주연은 다이애나 나이애드 역에 아네뜨 베닝, 친구 보니 스톨 역에 조디 포스터, 선장 리스 이 반스 역에 존 바틀렛이 연기했다. 우선 이야기보다는 두 여주인공의 외모가 강렬한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그렇게 예쁘던 아네트 베닝(Annette Bening, 1958~)도, 용감무쌍하던 조디 포스터(Alicia Christian "Jodie" Foster, 1962~)도 세월의 흐름을 거슬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이렇게 용감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긴 여배우는 오드리 헵번 처럼 예쁜 시절 모습만으로 기억되면 안 된다.


제공: 넷플릭스

베닝은 현재나이 65세, 포스터는 61세이다. 영화 주인공의 당시 나이 64세에 딱 맞는 캐스팅이다. 60세 생일에 도전을 선언하는 주인공 나이애드의 대사는 두 여배우의 외침이기도 하다.

"몸은 늙었지만 정신은 아주 멀쩡해.
젊어서는 그게 없었지만 지금은 있어..."


거친 파도를 헤쳐가는 베닝의 수영 실력과 선수 같은 널찍한 등과 이두박근과 복근을 갖춘 포스터의 모습이 방금 수영장에서 건져 놓은 진짜 선수와 코치 같다. 운동선수 같은 연기와 눈빛은 대배우답게 영화를 빛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몸을 수정하거나 확대한 장면이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이를 위해 1년간 수영 훈련과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했다고 한다.


제공: 넷플릭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의 대한해협 종주


조오련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 출처: 대한체육회

우리나라에도 바다 횡단 수영의 기록이 있다. 조오련(1952~2009)은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m,  1500m에서 우승하며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해양 종주에 도전했는데 중요한 기록은 아래와 같다.


 - 1980년 대한해협 횡단: 부산 다대포에서 쓰시마 섬 북단 사오자끼 등대 방향(48km), 13시간 16분

 - 1982년 영국 도버 해협 횡단(첫 동양인): 영국 도버에서 프랑스 방향(34km), 9시간 35분

 - 2005년 울릉도-독도 횡단(두 아들과 릴레이 방식): 울릉도 도동에서 독도 방향(87.4km), 18시간


1980년 당시 보도에 따르면 조오련 선수와 트레이너 차동석 씨는 종주에 걸리는 시간을 18시간 정도로 예상했다고 한다. 대한해협의 밀물, 썰물에 의한 거센 조류, 대마도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급격한 해류 등을 감안했을 때 그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의외로 밀물을 만나 속력을 높일 수 있었고 13시간 만에 횡단을 이뤄냈다고 한다.


물론 중간에 강한 해류에 근육마비를 겪어, 15분간 서서 헤엄치며 몸을 풀어야 했다. 또 영양분 섭취를 위해 잣·쇠고기·어간·쌀겨·비타민·소화제 등을 섞어 만든 영양죽 봉지를 장대로 받아먹으며 수영하기도 했다(손이 배에 닿으면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지루함은 수중 스피커로 디스코 음악을 들으며 달랬다(영화 마션에서 보았듯이 말이다). 조오련은 3척의 배가 상어 떼의 습격에 대비하여 이끄는 길이 10m, 폭 5m, 깊이 2m의 쇠그물 안에서 헤엄쳤다.


장거리 해양 수영의 과학 - 조류


한두 시간쯤 하는 수영이 아니라 며칠씩 걸리는 해양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는 체력이겠지만, 전체로 제일 중요한 것은 조류의 움직임이다. 바닷물은 달과 태양의 인력 그리고 지구의 자전에 따라 주기적으로 상승하고 하강한다. 이를 조석 현상이라고 하고 12시간 25분의 주기를 가진다. 따라서 해안에서는 하루에 2번의 만조와 간조가 나타나는데, 만조와 간조의 높이 차이에 따라 바닷물의 흐름이 생기는 것이 조류이다. 연안해에서는 조류가 해류보다 강하고, 원양해에서는 해류가 더 강하다.


독일 함부르크주 노이베르크 섬의 밀물과 썰물 때의 사진,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eroid


결국 밀물과 썰물일 때가 절대적인데 이걸 이길 수영선수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 달 중 조류의 차이가 가장 작은 조금(음력 8, 23일)과 가장 큰 사리(음력 1, 16일)를 확인하고 시작하여야 한다. 따라서 수영 시작의 날짜와 시간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밀물 때 시작하는 선수는 첨부터 도전하지 않는 게 좋다. 썰물 때 출발하여 밀물 때 도착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수영법이다.


기상 상황 역시 중요한데 이는 일기 예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해변가보다는 원양해양에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수온이 낮으면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으므로 물이 따뜻한 여름에 도전하여야 한다.




나이애드의 무모한 도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해협의 종단 수영은 매우 위험하다. 1875년부터 1994년까지 영불 도버해협에서 횡단에 도전한 사람은 4200명이고 성공한 사람은 40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성공한 후에 청각을 잃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도전은 무모하지는 않고 아름다웠다. 꼭 수영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속에 있는 그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나만 아는 비밀일 것이다.


참고문헌


1. 180km 거친 바다를 휘젓게 한 분노, 중앙일보, 2022.9.2,

2.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대한해협 횡단 직후 한 말은..., 경향신문, 2020.8.12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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