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식 Nov 20. 2023

펜타닐과 <헤어질 결심>(2022)

영화 속 과학 이야기

2023년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오랜만에 정상회담을 마쳤다. 여러 가지 주제가 논의 되고 합의 사항이 발표됐다. 복잡해지는 국제문제와 양국 간의 무역 대결 중에서도 눈에 띄는 합의사항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Fentanyl)에 대한 합의였다.


2023년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담 중 회의, 출처: 백악관, Public Domain


중국은 중국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을 막기 위해 펜타닐 전구체 물질을 제조하는 화학회사를 직접 단속하기로 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양측은 펜타닐을 비롯한 합성 마약을 포함한 국제 불법 마약 제조와 밀매 대응에 양자 협력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펜타닐 과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7만 1,000여 명으로 18~45세 젊은이의 사망원인 1위로 코비드 19, 자살, 자동차사고로 인한 죽음보다 더 많은 사망자 숫자이다.


마약청정국이라고 불리던 한국에서도 마약중독 문제가 점점 증가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과거 정부의 방관 속에 우리 사회에도 이제 마약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각국의 의료용 대마 허용, 펜더믹 이후의 세계 여행 증가,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국내 반입 등 마약단속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영화 <헤어질 결심>


우리 영화에서도 펜타닐이 등장한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헤어질 결심>이다. 2020년  발표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박해일과 탕웨이가 주연을 맡은 범죄 스릴러 로맨스 영화이다. 변사사건을 맡은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난 후 의심을 갖지만 점점 관심으로 변해가고 결국 헤어지는 내용의 영화이다.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린 영화다.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제공: CJ ENM


“원하던 방식으로 보내드렸어요. 펜타닐 캡슐 네 개면 되죠. 나도 네 개를 챙겼구요.”


중국 밀입국자인 서래는 중국에서 간호사로 일했는데, 병든 자기 어머니를 펜타닐로 안락사시켰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어머니 유골함뚜껑 밑에 청록색 4알을 숨겨놓고 자기가 원하는 때 죽기 위해 보관한다.


제공: CJ ENM


<헤어질 결심>에는 순천 송광사가 등장한다. 비 오는 날의 데이트를 그리는 장면에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촬영을 허가하지 않은 송광사 촬영을 위해 두 주인공인 송광사 조실스님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송광사 여행을 통해 급격히 가까워지게 된다.


제공: CJ ENM
제공: CJ ENM
제공: CJ ENM


펜타닐


펜타닐은 미국 얀센이 처음 개발했습니다.  펜타닐은 아편을 정제해 만드는 합성 아편유사제(opioid)인데 중추신경계에서 통증의 전달을 억제하고 황홀한 쾌감을 유발한다. 약물 발현시간이 1~4분 정도로 매우 빨라 수술 중 마취 보조 또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중증 환자에게 주로 사용된다.  

Chemical structure of fentanyl in third dimension, source: wikimedia commons by Benjah-bmm27

1981년 얀센의 펜타닐 특허가 만료되자 효과가 좋고 제조가 쉽기 때문에 상업성이 높다고 판단한 제약회사들은 여기저기 로비활동을 펼치며 오남용이 시작되었다. 영화 <크라이시스(Crisis)>(2021), <페인허슬러(pain Hustler)>(2023) 등에 오피오이드 문제가 잘 다루어졌다.


제공 : ㈜누리픽쳐스


문제가 되는 점은 펜타닐이 인체에서 분비되는 엔도르핀에 영향을 미쳐 강한 중독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엔도르핀은 뇌에서 추출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데 진통 작용과 쾌감을 유발한다. 합성 마약인 펜타닐에 노출되면 약물이 주는 진통 작용과 쾌감이 훨씬 크기에 인체는 엔도르핀 수용체를 줄이고 분비를 방해한다. 따라서 약효가 끝나는 순간 엔도르핀 부재로 심한 통증과 금단 증상을 겪게 된다.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은 인지 기능장애, 섬망, 환각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과량 투여 시 신경이 마비되고 호흡이 억제돼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문제는 이 치사량이 극미량(2mg)이라는 점이다.


펜타닐의 치사량(우하 2mg), 미국 1 페니 주화의 크기는 한국 신형 10원 주화와 비슷, 출처 : 미국마약단속국


영화에 등장하는 펜타닐 알약은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환자들이 많이 쓰는 액틱 구강정(막대사탕 형태로 입 안쪽 벽에 문질러서 흡수시키는 약)이 아닌 혀 밑에서 녹여서 흡수시키는 펜토라박칼과 같은 설하정을 뜻하는 듯하다. 액틱 구강정, 펜토라박칼 설하정 모두 환자가 투약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펜타닐과 시트르산염(구연산)을 혼합한 약제로 약간 시큼한 단맛이 난다고 한다.


Fentanyl patch packages from several german generic drug manufacturers, 출처: wiki-medi by Alcibiades


붙이는 패치 형태로 제작된 '펜타닐 패치'는 접근성이 높아 청소년 마약 범죄에 주로 쓰인다고 한다. 다른 마약류와 달리 의사 처방에 따라 합법적 구매가 가능하며 몸에 붙이기만 해도 빠른 속도로 약효가 나타나 마약을 처음 접하는 청소년 역시 쉽게 접근할 우려가 있다. 청소년은 신체적인 특성이 성인보다 마약류에 더욱 민감하기 때문에 중독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왜 미국에서 마약이 창궐하는가


미국은 의료접근성이 떨어지고 의료보험이 비싸 오래전부터 진통제(pain killer)가 사회 문제로 되어 왔다. 우리 같았으면 참거나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부황 뜨며 다스렸을 것들을 온갖 진통제로 다스린다. 대형 마트에서도 아예 진통제만을 따로 파는 매대가 있을 정도이다. 이렇다 보니 진통제 복용 습관은 더 빠르고 좋은 효과를 찾게 되고 이 악순환이 오피오이드를 통해 마약으로 연결되는 길이 된다.


보통 마약은 저소득층, 흑인 또는 히스패닉 아이들을 위해 주로 퍼졌는데, 요즘은 백인들까지 가리지 않고 퍼져 가는 양상이다. 멀쩡한 사랑이 자기도 모르게 여기 저기에서 처방받은 오피오이드를 통해 중독되는 케이스가 늘어나니 이제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연예인들의 마약 문제로 시끄럽다. 이미 정치인의 자녀, 재벌가의 청년층을 통해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는 이미 저변에 많은 부분이 노출되었다는 반증이다. 식약처 등에 따르면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도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오피오이드는 싸고 쉽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도 다중의약품 처방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아야 하겠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매거진의 이전글 무한 도전,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20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