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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Mar 21. 2024

인생 정리 방법, <리빙: 어떤 인생>

영화 속 과학 이야기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차를 타고 집과 직장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기계처럼 반복적인 일상을 살던 런던시청 공무원 윌리엄스 씨는 자신에게 이제 살날이 불과 몇 달밖에 안 남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때부터 윌리엄스의 심리적인 변화를 따라 영화는 진행된다.


제공: 티캐스트


영화 <리빙:어떤 인생 Still Life>(2013)에서 빌 나이는 세계대전 이후 시대에 은퇴를 앞둔 공무원 윌리엄스로 분했다. 영국 런던시청 공공사업부 과장인 윌리엄스는 복지부동형 관료의 전형이다. 어쩌다 골치 아픈 민원이 들어오면 최대한 다른 부서로 떠넘겨 버린다. 만약 떠넘기기에 실패하면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에 밀어놔 버린다. "손해볼 일은 없으니까". 항상 똑같이 말하고 움직인다.


하지만 시한부판정을 받은 윌리엄스는 지신의 답답했던 인생이 너무 억울해서 이제야 난생처음으로 인생을 제대로 즐겨 보기로 결심한다.직장도 팽개치고 바닷가 휴양지에서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을 펑펑 써가며 술과 노래에 취해 보기도 한다. 또 직장 동료였던 귀여운 아가씨 마거릿과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평소 나눴던 이야기도 나누고 자기의 별명이 '좀비'라는 것도 알게 된다. 가족에게는 이 사실을 숨긴 채 남은 시간을 만끽하고 지낸다. 



제공: 티캐스트
제공: 티캐스트
제공: 티캐스트


그러던 그는 문득 사무실 책상에 먼지 쌓인 채 놓여 있던 서류 하나를 생각해 내고, 남아있는 나날을 보낼 생애 가장 찬란한 선택을 하게 된다. 빈민가 지역에 자투리땅에 조그마한 공원을 만드는 일이다. 오래전에 주민들에 의해 요청됐지만, 부서 간의 핑퐁게임으로 관료주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윌리암스는 이 일에 자신에게 남겨진 나날들과 목숨을 건다.


제공: 티캐스트


영화에서 시한부 설정은 다소 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1952년 개봉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이키루’(살다)>를 각색한 영화다. 하지만 진부한 영화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주름살 하나, 입꼬리 근육 하나까지 섬세하게 연기하며 영혼 없는 노년의 관료를 퍼팩트하게 표현하는 빌 나이(Bill Nighy, 1949~)의 연기 때문이다. 생의 막바지에 작은 모험을 떠나고, 원하는 삶의 엔딩을 이뤄내는 좀비 아저씨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영화수입사에서는 포스터에서  ‘각본 가즈오 이시구로’라고 썼지만, 정확하게는 각본이 아니고 각색이다. <리빙>의 원작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2년작 <살다(生きる, 이키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각본이 아니고 각색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수상은 불발). 각본은 구로사와 아키라 외 2명으로 되어 있다.


원작 구로자와 아키라,  <이키루>(1952)


1952년 일본 영화 이키루의 극장 개봉 포스터. Public domain


<리빙: 어떤 인생>은 영국 런던과 그 근교를 배경으로 삼았고 실제 런던 시청에서 촬영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원작은 1952년에 개봉한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이키루>이다(이키루: 우리말로 ‘산다’라는 뜻).


시나리오를 집필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오랫동안 영국판 <이키루>를 만들길 오랫동안 구상했다고 한다. 그가 영화의 배경을 영국으로 삼고자 했던 이유는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찾을 수 있다. 1954년 일본에서 태어난 가즈오 이시구로는 5살 무렵 영국으로 이주한 뒤 영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삶에 많은 영감을 준 <이키루>는 <리빙: 어떤 인생>과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서류에 둘러싸인 채 “그는 산 적이 없다. 살아 있다고는 할 수 없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소개되는 주인공 와타나베 겐지(시무라 다케시 분)는 30년간 결근 없이 시청 공무원으로 일했으나 위암에 걸려 윌리엄스처럼 6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신세에 처한다. 의미 없이 음주가무로 허송세월을 보내던 와타나베 역시 젊은 여성 동료 오다기리 도요(오다기리 미키 분)와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윌리엄스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리빙이든 이카루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심리적인 변화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의 구조는 비슷하다. 심리학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보이는 '죽음의 5단계'라는 것이 있다. 이야기는 가즈오 이시구로 이야기 후에 글의 말미에 언급한다.


원작자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12월 6일 스웨덴 한림원 기자회견 중 가즈오 이시구로, Source: wikimedia Commons by  Frankie Fouganthin


가즈오 이시구로 경(Sir. Kazuo Ishiguro,  石黒一雄, 1954~)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해양물리학자인 아버지 시즈오 이시구로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켄트 대학에서 영어학과 철학 학사과정을 마친 후,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Creative Writing)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1982년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잘 엮어 낸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해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다. 1986년 일본인 화가의 회고담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고,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


1989년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 상을 받았고 이 작품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앤서니 홉킨스, 엠마톰슨 주연)로 제작되어 수작으로 인정받았다. 2005년 발표한 복제 인간을 주제로 인간 존엄성 문제를 다룬 <나를 보내지 마>가 타임지의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에 선정되었다. 이 작품도 <네버 렛 미 고>(2011)로 영화화되었는데 갑갑하고 우울한 내용이지만 명작으로 꼽힌다. 2017년 “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적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가와 함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상복이 많은 작가다.


그 외에도 황혼에 대한 다섯 단편을 모은 <녹턴>(2009)까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낸 작품들로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으며, 2008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50인’에 선정되었다.  2021년  <클라라와 태양>을 발표했다. 글쓴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쿼블러 로스, 죽음의 5단계


스위스 출신의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 분야의 개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가 1969년에 쓴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에서 선보인 모델로서,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5단계로 구분 지어 놓은 것이다. 퀴블러 로스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미국 주간지 〈타임〉이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한 유명한 학자다.


 부정 ·분노·거래·좌절·수용(DABDA model)


쿼블러 로스는 임종을 맞이하는 말기환자들을 오랜 기간 연구하여, 죽음에 이르는 정신상태를 5단계로 구분하였다. ‘부정 ·분노·거래·좌절·수용’의 5단계는 꼭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암이나 만성질환, 난치병 등의 진단을 받아들이는 환자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


1단계 부정(denial)에서 다수의 사람은 진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고 제차 확인하고 싶어 한다. 검사가 잘못된 것일지도 몰라. 의사도 사람인데 실수한 거야.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검사하자. 의사들이 다 짜고 나를 골탕 먹이려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치료를 거부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이는 보호자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는데,  보호자 중에서는 “우리 부모님은 그럴 분이 아니야. 금방 회복하실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치료를 거부하여 오히려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


2단계 분노(anger)에 이르면 “왜 하필 나야?”라는 생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분노와 원망으로 바뀐다. “내가 이런 병에 걸린 건 너희 때문이야”라며 가족이나 사회 전체에 적의를 드러내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3단계 거래(bargaining)에서는 의외로 긍정적, 밝은 모습을 보이고, 이리저리 빠져나갈 방법을 강구한다.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온갖 좋다는 것들은 다 해보고,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이는데 이렇게 지성으로 하면 하늘이 도와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다. 종교적인 귀의를 하기도 하고, 장기를 기증하기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푼다거나, 새로운 생활패턴을 가진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노력과 건강을 바꾸고 싶어 한다. 우리말에 사람이 안하던 일을 하면 죽는다고 하는데 이 단계를 말할 수도 있다.


4단계 좌절(depression)은 이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 없이 계속 진행되는 병세를 보면서 심한 우울감에 빠진다. 결국은 소용도 없다는 생각에 치료를 포기하기도 하고, 남겨질 가족, 친구의 상실 등을 걱정하면서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5단계 수용(acceptance)은 마지막 단계로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후에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게 되고, 할 수 있는 일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노력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담담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영화 <리빙>, < 이키루>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들을 살펴보면 1, 2 단계에서는 부정적이고 음울한 감정 상태, 3단계에서는 긍정적이고 밝은 면으로 바뀌는 단계,  4단계에서는 다시 의기소침한 상태가 되었다가 5단계에서는 평온한 상태로 임종을 맞는다. 전체적인 감정상태와 생활태도가 부정-긍정을 반복하면서 결국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가는 것이다.


때문에 보호자들은 환자가 우울에 빠져 있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도 없고, 밝고 쾌활하다고 너무 좋아할 필요도 없다. 이 과정들을 조바심 가지지 말고 지켜보면서 그때그때 환자를 지지해 주고 보호해 주면 된다. 말기암처럼 전체적인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에는 이 단계 간의 진행 속도도 빨라서 몇 달 만에 수용의 단계에 이르기도 하고,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질환의 경우에는 진행속도도 느려서, 몇 년에 걸쳐 치료도 거부하고 우연히 좋아지기만 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오랜 원망으로 정서적인 지지를 모조리 날려 버리기도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의 일부를 설명해 주는 말인 듯하다.


개인 차이도 많아서 정신적으로 강건한 사람들은 하룻밤만에 위의 5단계를 모두 거치고 다음날부터는 수용적인 태도로 건강한 투병 생활을 하기도 하고, 오히려 몸은 병들었더라도 다른 모든 생활과 마음을 훨씬 나은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환자 스스로가 어느 단계에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대처해 나간다면 가족과 환자 모두에게 훨씬 건강한 투병생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 계설처럼 단계를 나누는 이론은 단계 간의 이동, 역이동, 점프 등을 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하고, 또 단계 간의 분명한 경계도 불확실하다. 그래서 논란이 있지만, 죽음의 심리 단계를 표현한 이론이 이 이론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간호 관련 국가고시에선 단골로 출제되며 정신과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호스피스 교육과정에서도 필수적으로 다루어진다.




죽음(Dying)은 산자들의 몫이 아니기 때문에 산자들의 세상에서는 정의하고 재단하는 일이 부질없다. 우리는 모두 죽음의 선고를 받은 자이지만, 집행일을 알 수 없는 당분간 집행 정지된 상태이다. 웰다잉이 과학적인 방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증명될 길은 없을 것이다.


죽음은 망자에게 가지는 의미를 떠나 남겨진 자들에게는 남은 과제일 뿐이다. 그래서 웰 다잉은 그저 잘 보내고 잘 기억하는 것에 그칠지도 모른다. 먼저 간 사람들이 남겨 놓은 것이 무엇인지, 이름이 잊히는 사람의 인생에서 남는 게 무엇인지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남아있는 나날 동안 숙고해 볼 일인 것이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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