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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Mar 04. 2024

결국 홀로그램의 기억만 남는다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스페인계 네덜란드 예술가인 알리시아 프라미스(Alicia Framis, 1967~)가 결혼을 발표했다. 그런데 상대는 실물인간이 아닌  '홀로그램 파트너'인 '아이렉스(AILex)'이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여름 로테르담의 디포 보이만스 반뵈닝겐 박물관의 테라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아마도 밤에 할 것 같다. 낮에는 야외에서는 배우자가 안 보이니까.


홈페이지에는 '홀로그램과 결혼하는 첫 여성(The Woman to marry a Hollogram)'이라는 타이틀의 사진과 여러 스틸 사진을 올렸다.  알리시아는 예전 애인들의 정보를 홀로그램에 학습시켰다고 한다. 전 애인들이 알면 등골이 서늘할 듯하다.


'아이렉스'는 흔한 남성 이름이 알렉스(Alex)와 인공지능을 의미하는 AI를 합쳐 만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배우자의 이름을 지어주고 결혼하는 첫 여성일지도 모른다. 외신에 따르면 결혼식 음식으로 인간과 '홀로그램'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분자음식(Molecular food)이 준비된다고 한다. 아마 하객 홀로그램도 오는 모양이다.


출처: Alicia Framis 홈페이지


사진을 보면 현재 동거 중인 두 존재(?)가 함께 식사하고 설거지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양자 간의 눈 맞춤이나 싱크가 대체로 잘 맞는 것으로 보인다. 알리시아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감정적인 연결이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예전에 피에르라는 마네킹과 연애한 적이 있다고 한다.


출처: Alicia Framis 홈페이지
출처: Alicia Framis 홈페이지
출처: Alicia Framis 홈페이지

사진 속의 마주 잡은 손이 그럴듯하다. 하지만 보통 홀로그램은 물체가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잘 연기해야 저렇게 보일 수 있다. 행복하게 잘 살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장래식에 남는 것은 홀로그램 아이렉스일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아이렉스의 기억에 남은 떠나간 알리시아의 모습이 진짜 알리시아일까...




"기억은 퇴적층과도 같아서, 잊어버려도 거기에 있어"


홀로그램과 결혼까지는 아니지만, 인간과의 유대관계를 소재로 삼은 영화가 있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Marjorie Prime>(2017)이 바로 그 영화다. 에단 호크 주연의 <햄릿 2000>(2000), <테슬라>(2020)를 감독한 마이클 말메레이다(Michael Almereyda)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단 해리슨(Jordan Harrison)의 동명 희곡(2015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연극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그렇듯, 배우들의 연기가 볼만하다. 로이스 스미스, 존 햄, 지나 데이비스, 팀 로빈스가 주연을 맡았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제공: 싸이더스

사위 존(팀 로빈스 분)과 딸 테스(지나 데이비스 분)는 알츠하이머(치매)를 앓는 85세의 마조리(로이스 스미스 분)를 위해 Prime이라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을 되살려 환자의 증세를 완화시키는 프로그램인 Prime은 홀로그램이다. 마조리와 옛이야기를 하는 존재는 젊은 시절의 남편 월터(존 햄 분)이고, 마조리는 그를 휙 통과하면서 초반부터 홀로그램임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마조리는 옛 기억을 떠 올리며 월터 프라임(홀로그램)에게 옛이야기를 하며, 홀로그램은 이를 학습한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제공: 싸이더스

월터 프라임은 마조리와 가족들에게 학습받은 기억을 갖게 된다. 살아 있는 자만이 프라임을 학습시킬 수 있다.  마조리 프라임의 기억은 테스와 존이 학습시키고, 테스 프라임의 기억은 존이 학습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은 가고 없고 프라임들만이 남아 거실에서 가족의 기억을 회상한다. 이 기억들은 누구의 기억일까?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제공: 싸이더스


기억이란 우물이나 서랍장 같은 게 아니야

무언가를 기억할 때는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한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 것뿐이야

복사본의 복사본처럼 계속 희미해질 뿐

절대 생생해지거나 선명해지지 않아




영국 레스터 대학교 시스템 신경과학 연구소장인 로드리고 퀴안 퀴로가는 <망각하는 기계>(형주, 2022)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정보를 다 기억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30년 전 일에 대해 세세한 기억이 나고, 영화 보듯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뇌가 구축한 환상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나를 만드는 고유하고 변화하지 않는 '자아'에 대한 나의 인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결코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오래된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옛날이야기를 해보시라.


모두 다른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일치하는 이야기하는 것보다 당연한 일이다.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기억을 꺼내고 다시 가라앉히며 다른 모습으로 점점 바꾸어 보관한다. 결코 당신이 알츠하이머거나 건망증이 생겨서가 아니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강화하기 위해서 홀로그램이나 거울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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