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 이야기
내일까지 비가 오면 6일째가 된다. 서울지방은 2024년 2월 18일 17.1mm가 내리기 시작한 강수가 오늘 22일까지 내렸다. 기상청 발표에 따른 서울지방 누적 강수량은 55.2mm이다. 눈과 비가 섞여 내린 이른바 진눈깨비였다. 비가 눈이 되거나 눈이 비로 변해 내리는 기상현상이다. 그럼 내린 양을 어떤 기준으로 측정할까?
이제부터 복잡해진다. 강수량은 어떤 형태든지 물의 총량이다. 비, 눈뿐만 아니라 우박, 이슬, 서리, 안개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적설량은 땅 위에 쌓인 눈의 양을 의미한다. 적설량이 녹은 경우, 물의 양으로 표시한 것이 강설량이다(대략 적설량의 1/10). 게다가 강우량(적설량)의 측정단위는 mm이고 적설량의 측정단위는 cm이다. 자 간단히 정리하자면 강수량 = 강우량 + 강설량 + 우박, 서리, 안개이다.
강우량 : 降雨量, rainfall amount
강수량 : 降水量, precipitation amount
강설량 : 降雪量, snowfall amount
이 정도 되면 기상캐스터가 나올 때 옷만 보지 말고, 무슨 단어를 쓰는지 두 귀를 토끼처럼 쫑긋 하고 들어 보아야 한다. 이번 비는 기상청의 발표에 따르면 강우량이 아니라 강수량이다. 여름의 장맛비는 강우량이 맞고, 겨울에 강원도에 내리는 눈의 양은 강설량이 맞는 표현이라 하겠다. 기상청의 발표를 단어 그대로 이해하면 이번 지는 비인지 눈인지 똑부러지게 정의하지는 않고 있다.
이맘때쯤 오는 비를 보며, 겨울은 가는지, 봄이 오는지 항상 실속 없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 비가 지나면 따뜻해질까 덕담을 나눈다. 그러면 3월에도 눈이 오고 꽃샘추위가 있다고 누군가 끼어든다. 어쨌든 봄은 올 텐데 말이다. 꽃을 꺾을 수는 있어도 봄을 막을 수 없다.
네이버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봄비는 봄에 오는 비다. 덧붙여 설명하기를 특히 조용히 가늘게 오는 비를 말한다고 한다. 그럼 이번 비처럼 우악스럽게 내리는 비는 봄비가 아닌가?
기상청 기준으로는 찬 시베리아 고기압에 밀려온 비구름에서 내린 비면 겨울비, 남서쪽에서 발생한 따뜻한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면 봄비라고 본다고 한다. 기상청 일기 예보에 따르면 이번 강우는 남풍에 실려 있는 수증기에 의해 발생했으므로 정의상 봄비가 맞다.
<여수 밤바다>로 유명세를 겪었던 장범준은 2016년 발표한 <봄비>에서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 하면서 봄비를 '주루루 주루루 주루루 주루루'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보아는 2017년 발표한 봄비(Spring Rain)에서 '봄비가 날 간지럽힌다'라고 했다. 상당히 다른 느낌의 봄비다.
최근 가장 유명한 봄비 노래는 영화 <내부자들>(2015)에 나오는 이은하의 <봄비>(1990)다. 영화에서는 두 번 나오는데, 이병헌이 솔로로 부르는 비자금 담당자의 협박 장면, 아가씨들을 태우고 권력자 파티장소로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하는 장면이다. 두 번째 장면은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는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 서로가 울면서 창 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상황에 따라 같은 사람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봄비는 여전하다고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봄비는 다른 계절의 비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강하다고나 할까.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슬픔과 아쉬움을 갖은 사람에게는 그 모습으로 찾아온다.
봄은 태양이 동지를 지나면서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여 기온이 따뜻해지는 시기를 말한다. 일교차가 크고 변덕스러운 날씨가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양력으로는 3~5월, 음력으로는 2~4월에 해당한다. 하지만 연도별,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그래서 여름이나 겨울은 분명하게 인지되나 봄은 사람들과 합의하기가 어렵다. 다만 춘곤증이 오면 봄이 왔다는 것은 일치하는 듯하다.
자우림은 노래 <봄이 오면>(2004)에서 봄이 오면 꽃핀 들녘으로 봄 맞으러 가자고 한다. 봄은 꽃의 계절이고 대표적인 봄꽃은 싫으나 좋으나 벚꽃이다. 대표적인 벚꽃축제인 '진해 군항제"가 올해에는 3월 22일부터 4월 1일까지 10일간 개최된다고 한다. 이 날짜는 역대 가장 빠른 일정이라고 한다. 통상 4월 1일을 전후하여 개막된 것과 비교하면 열흘정도 빨라진 것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기존의 4월 1일부터 열흘동안 이어졌던 군항제는 날씨와 기후 온난화 때문에 벚꽃이 빨리 피는 이유로 군항제 행사를 앞당겼다"라고 말했다. 군항제뿐만 아니라 '경남 양산 원동매화축제', '창녕 낙동강 유채축제'도 예년에 비해 빨리 개최된다고 한다. 봄이 빨라지고 또 짧아지고 있다. 그래서 조금 늦은 겨울비도 봄비라고 보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꽃피는 봄이 바로 코앞에 와있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