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월이 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유난스러운 2월 날씨가 당혹스럽다. 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 서울은 최고기온이 18.3도였다. 두 번째로 더운 2월 기온이다. 첫 번째는 2004년이었는데 18.7도였다. 아직 2월이 다 지나지 않았으니 최고 온도 갱신을 기대(?) 해 본다.
참고로 같은 날 전남 완도는 20.4도까지 올라가 최고 기온을 갱신했는데, 이전 최고 기록은 2021년 20도였다. 기상청은 '4월 같은 2월' 기온은 일본 동쪽에 고기압을 따라 우리나라로 온난 습윤한 남서풍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참고로 기억을 가다듬기 위해 찾아보니 우리나라 2월 평년 기온은 영하 6도 ~ 영상 3도 정도이다. 평년 기온(Standard Normals)이란 지난 30년간 기후 평균을 말한다.
그렇다면 일본도 더울 것 같다. 기사를 찾아보니 그럼 그렇지. 최북단 홋카이도 온도가 55년 만에 10도를 넘었단다. 스키장과 눈썰매장은 곳곳에 맨땅이 드러났다. 얼음 축제장 얼음이 녹아, 붕괴 우려로 관람객을 통제해 들어가지 못한다. 도쿄 등 수도권도 20도까지 올라가 때이른 봄맞이에 들뜬 분위기다.
유럽 스키장, 눈 안 와 고전
전 세계 스키 이용객의 40%가 찾는 알프스 산맥의 스키장은 기후 변화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 겨울 23/24 시즌은 많은 비로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야 개장했다. 우리나라도 겨울비로 스키장 개장이 늦어졌다. 스위스에 있는 한 스키장은 눈이 내리지 않자 문을 닫았고 65개 슬로프는 방치되고 시설은 녹슬고 있다. 직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쥐라기라는 중생대 지질시대의 어원이 된 프랑스와 스위스 사이의 쥐라(Jura) 산맥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발 1,400m에 위치한 스키장의 온도가 12.7도까지 올라갔다.
이탈리아 알펜니노 산맥,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ario1952, public domain
이탈리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탈리아의 스키장은 알프스보다 고도와 위도가 더 낮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국토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산맥을 아펜니노 산맥(Monti Appennini)이라고 한다. 길이는 1,200km, 너비 30~250km에 달한다(최고봉은 코르노그란데 산, 2,912m). 얼마 전 TV 보도에 로마인근 아펜니노 산맥의 테르미닐로산에 있는 눈 없이 황량한 스키장의 모습이 보도됐다. 불쌍한 리프트 업자는 작년엔 잘 됐는데, 올해는 망했다고 카메라를 보고 신세 한탄을 하고 있다(하단 기사 링크).
눈이 안 오면 인공눈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기온이 너무 높아, 만들자마자 녹아버린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연구진은 학술지 ‘네이처 기후 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 높아질 경우, 유럽 28개국의 2,234개 스키 리조트 중 53%가 눈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우리나라는 12개이다).
용평리조트의 인공눈 발생장치, 2014, source: wikimedia commons by Piotrus
그리고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4℃ 높아지면 전체의 98%가 눈 부족을 겪을 것으로 주장했다. 또한 스위스 바젤대학의 연구진에 따르면 21세기 중반쯤 해발 1,800~2,000m에 위치한 스위스 스키장들의 경우, 낮은 고도의 스키 슬로프 운영을 포기하고 높은 곳의 슬로프만 그것도 인공 눈에 의존해 운영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 했다. 스키장 사업주에게 암울한 예언이다.
국내 스키장 폐업 시작되나
최근 3~4년 사이 천마산 스타힐리조트, 알프스리조트, 양지 파인 스키밸리 등 5개 스키장이 폐업하고, 베어스타운은 영업중단 중이다. 출산율 저하로 전체 스키장의 반이 사라진 일본의 전철을 밟는 듯하다.
용평리조트, 2018.2.7, source: wikimedia commons by DangTungDuong
2011~2012년 686만 명에 달하던 국내 스키장 이용객수는 2021~2022년 213만 명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도 크지만, 저출산에 따른 학생감소도 영향이 크다. 예전에는 중고등학교에서 스키캠프를 여는 것이 주변에서 많이 보였지만, 요금은 거의 사라졌다. 땀나고 춥고 위험한 운동인 스키를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젊은 층은 스키 대신 그 돈으로 골프, 테니스와 캠핑을 즐긴다. 겨울엔 게임도 스키장이용객 감소에 한몫한다. 주이용층인 3040은 다른 스포츠로 이탈하고 차세대 이용객이 될 청소년층의 스키캠프는 없어져 버린 상황이다. 요즘 스키장은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울상이다.
기후변화로 개장일은 점점 늦어지고, 겨울이 짧아져 폐장일은 계획보다 당겨진다. 게다가 춥지않고 더운 날씨에 겨울비가 잦아지고 있다. 겨울이 실종되면 겨울스포츠는 어디로 갈것인가.
이탈리아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 올림픽(2/6~22)’을 유치하며 이탈리아가 가장 유명한 겨울 스포츠 장소로 전 세계에 알릴 예정이었다. 관광도시 밀라노와 돌로마이트의 어원으로 유명한 돌로미티산맥의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개최된다. 그러나 강설량이 줄어들면서 기대하던 올림픽의 효과는 둘째치고 경기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975년 용평리조트에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이 개장되면서 스키 대중화시대가 시작됐다. 한때는 자동차 지붕에 스키 케리어를 붙이고 다니는 것이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물론 스키 탈 목적 말고 다른 음흉한 목적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그로부터 50년도 못되어 지금은 스키 케리어를 달고 다니는 차를 찾기 어렵다. 그 많던 개인 스키도 다 사라졌다.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인데, 인기 고급스포츠에도 해당될 것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에서 스키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기후변화 그리고 팬더믹과 인구감소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벌어지는 스키의 인기하락을 보니, 복합적인 아픔과 복잡한 심경이 밀려온다.
참고문헌
Hugues François, Raphaëlle Samacoïts, David Neil Bird, Judith Köberl, Franz Prettenthaler & Samuel Morin, Climate change exacerbates snow-water-energy challenges for European ski tourism, Nature Climate Change volume 13, pages935–942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