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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Nov 24. 2023

슬프고 무서운 빙하의 장례식

지구를 위한 진혼곡

우리나라도 기쁜 일 보다 슬픈 일에 기념할 만한 장소에 동판을 새겨 암석에 붙여 놓는 것이 여러 곳 있다. 6.25 전적지가 그렇고 각종 사고 현장에도 어김없이 동판이 설치되고 정치인이나 관계자가 참석하여 성대한 제막식을 한다. 그런데 외국에 색다른 현장에 설치된 동판이 있다.


빙하야 잘 가라


2019년 8월 18일, 아이슬란드 ‘오크(Ok)’ 화산에서의 일이다. 빙하 추모비 제막식에는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 구드문두르 잉기 구드브랜손 환경부 장관과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과 조문객 100명이 참석했다. 재막식의 명칭은 ‘빙하 장례식’이다.  한 빙하가 기후 변화 탓에 더는 빙하로 인정받을 수 없을 만큼 녹아내려 공식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을 아쉬워하는 행사다.


그날의 추모 대상은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북동쪽으로 70km 떨어진 약 700년의 짧은 삶을 살다 간 ‘오크예퀴들(Okjokull)’ 빙하였다. 40년 전까지 화산 분화구 (creator) 대부분을 덮고 있었던 이 빙하는 점점 녹아버려 얼음 더미 정도의 크기가 됐고, 결국 ‘사망 선고’를 받았다. 빙하의 추모비엔 “앞으로 200년 사이 모든 빙하가 같은 길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적혔다.


추모비 동판에는 <미래로 보내는 편지(a letter to th future)>라는 제목으로 “오크(오크예퀴들 빙하)는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빙하의 지위를 잃었다. 앞으로 200년 사이 아이슬란드의 주요 빙하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우리는 이 추모비를 세움으로써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인식하고 있음을 알린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2000년 당시 아이슬란드에는 300개가 넘는 빙하가 있었지만 2017년까지 작은 빙하를 중심으로 56개가 녹아 사라졌다고 한다.


오크예퀴들 빙하의 위치, 출처: google map
Oddur Sigurðsson 1990년 오크예퀴들 빙하의 모습, Source: wikimedia commons by


사진에서 보듯, 오크예퀴들 빙하는 1990년까지만 해도 빙하 가족으로 멋진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본래 오크예퀴들 빙하는 오크 산 정상을 상당 부분 덮을 만큼 규모가 컸었다. 이름도 화산 이름인 오크와 빙하를 뜻하는 예퀴들을 합성해 지었다.  하지만 이제는 화산 정상에 덩그러니 놓인 얼음 더미 정도로 작아졌다. 봄을 맞은 눈사람처럼 점점 녹아내렸다.


2003년 오크예퀴들 빙하의 모습, Source: wikimedia commons by  Oddur Sigurðsson

오크예퀴들 빙하가 지난 2014년 소멸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2022년 미국 텍사스주 라이스대학 인류학자인 시멘 하우, 도미닉 보이어가 사라진 빙하를 소재로 ‘낫 오케이(Not Ok)’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서 괸심을 끌기 시작했고 추모비를 건립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빙하 살해자는 바로 '인간'


보이어는 “사람들은 동판에 업적이라든지 대단한 사건을 새긴다. 빙하의 죽음 역시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인간이 이룬 일”이라며 “이 빙하를 녹게 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오크예퀴들이) 세상에서 맨 처음 사라진 빙하는 아니고, 더 작은 빙하 덩어리들도 많이 녹았지만, 오크예퀴들 크기 정도의 빙하가 녹기 시작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다른 유명 빙하들도 곧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모비 문구를 작성한 아이슬란드 작가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은 BBC에 “동판에 글씨를 새겨 넣으면 종이에 쓸 때와는 다른 단위의 시간이 보인다”며 “누군가 300년 뒤에 찾아와 비문을 읽는 상상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막식이 “아주 상징적인 순간”이라며 “이 추모비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상기해 주며, 우리가 이런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낸다”라고 평했다.


인간이 대기로 돌려보낸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일으켰고 지구의 온도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빙하가 녹는 것은 생태계가 변한다는 것이고 생물권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이다. 저 추모비는 순히 한 빙하의 사라짐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류의 묘비명(epitaph)이 될지도 모른다.




조사나 답사를 다니다 보면 마애 글씨를 자주 보게 된다. 종이나 목재에 써 놓은 글씨는 300년을 못 간다. 영원성을 가지는 글을 쓰기에 가장 좋은 것은 바위이다. 그래서 절벽이나 바위에 써 놓은 글이나 마땅치 않으면 비석을 만들어 글을 세긴 것을 자주 만나게 된다.  동판이 암석에 쓴 글보다 오래가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후세에게 교훈을 전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비석이나 동판 자체가 아니라 쓰여 있는 내용이지만 말이다.




사실 지질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지구온난화는 둘째치고 부러움이 앞선다. 물리학은 지금까지는 우주 어디서나 동일하고, 화학은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원소로 어디서나 평등하게 연구할 수 있고 또 생물학은 지역특성이 중요하기에 나름 연구소재가 안정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지질과학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그 흔한 화산이 있기를 하나 지진이 일어나기를 하나... 생활인의 측면에서 보면 복 받은 지역이라고 하기는 그렇다. 우리 조상님들이 삶의 터전은 기막힌 곳에 잡으셨다. 그래서 전 국민이 부동산 전문가인지도 모르겠다. 빙하도 그렇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는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 빙하기의 흔적도 없다. 달랑 있는 것은 북한 지역의 일부 지형과 돌시렁들이 전부다. 우리 땅은 과거나 현재나 살기 좋은 곳은 분명하다.


하지만 선진국에 들어선 우리가 우리나라의 지질뿐만 아니라 지역성에 극복하는 연구를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남극에 2개의 기지, 북극권에도 다산기지가 있다. 물론 남극에 중국은 4개의 기지, 일본은 1956년부터 월동대를 파견했고 2024년 12월 월동대장에 최초여성대장인 고해양학을 전공한 도쿄대학교 하라다 나오미 교수가 임명됐다. 최근 정부가 남극에 내륙탐사기지 건설 계획을 밝혔다. 격화되는 극지 탐사 경쟁에서 후손을 위해 우리도 뒤져서는 안 되겠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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