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시끄럽다. 지구 대기의 온도가 올라가면,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올라가서 피지, 몰디브 같은 섬나라는 물속으로 사라지고 런던, 뉴욕이나 도쿄 등 해안지방의 도시들도 물에 잠길 거라는 예측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한편 우리가 등산을 하게 되면 볼 수 있는 표지판이나 정상석에는 그 지점 높이를 함께 쓴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처럼 도로 주변에 위치하여 대관령은 해발 832m라는 것을 알려 준다. 남한의 최고봉이자 우리나라 두 번째 최고봉인 지리산 천왕봉의 정상에는 1915m라는 정상석이 서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관련 과일이나 생태계의 변화는 자주 언론에 노출되고 있지만, 우리가 많이 가는 높은 산의 높이가 변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당장은 아니지만 오래지 않아 산의 높이가 달라져 다시 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해수면이 상승하니 해발로 표시하는 산의 높이는 낮아질 것이다. 이참에 우리나라 제일 높은 산인 한라산의 높이 변화사에 대해 알아보자.
대관령 길가의 해발고도 안내판, 출처: 네이버 지도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1915m라고 써있다), 출처: 국립공원관리공단
점점 낮아지는 한라산: 1950m -> 1947.26m -> 1947.06m
한라산의 높이 1947.2m(카카오맵에는 높이표시가 없다), 출처: 네이버 지도
한라산의 높이는 얼마인가? 모두들 1950m로 알고 있다. 심지어 '한번 구경 오십시오'라는 말로 높이를 손쉽게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높이는 실재 높이와 다르다. 현재 한라산 백록담은 관음사와 성판악 탐방로를 통해 동쪽 능선 정상만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실재 정상은 서벽 분화구 꼭대기라서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백록담 동쪽 능선의 정상석에는 높이 표시가 없다.
한라산 높이는 1901년 이재수의 난(신축제주항쟁)이 일어난 지 수주일 후 무정부상태 같던 제주에 처음으로 방문한 독일인 지리학자 지그프리드 겐테(Siegfried Genthe, 1870∼1904)가 무수은 기압계인 아네로이드 기압계(Aneroid barometer·기압의 변화에 따른 수축과 팽창을 이용하여 기압을 측정하는 기기)·고도계를 이용해 1950m로 측정됐고, 이후 일제의 1913~1918년 도시조사사업 당시 같은 높이로 측량됐다.
1966년 국토지리정보원 전신인 건설부 국립건설연구소가 평균 해수면을 기준으로 한라산 높이를 삼각 측량해 1950.11m로 재확인한 후 이 수치가 공식적인 한라산 고도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이들 측량의 오차와 백록담 풍화 등으로 한라산 높이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관계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국내 해발고도는 통상적으로 인천만의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삼는데, 제주의 경우는 제주항의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측량한다고 한다. 따라서 기준면의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각 측정이 어떤 면을 기준으로 했는지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은 2005년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측량을 통해 한라산 삼각측량점의 높이를 1947.269m로 측정하고 2008년 12월 고시했다. 삼각측량점은 대부분 산꼭대기에 설치되지만 정상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측량기술의 한계와 침식 등을 감안할 때 한라산 높이는 달라질 수 있다”며 “지도 등에 산의 삼각점 높이가 쓰이지만 정상과 꼭 일치하진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측량 높이는 줄어들고 있어 의구심이 들고 있다.
그런데 2016년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와 한국지질자원연구소의 공동연구결과, 한라산의 높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3m가 낮은 1947.06m로 밝혀졌다. 조사진은 항공기에서 레이저를 쏘는 라이다(LiDAR) 촬영 방식을 통해 표준오차는 ±3.8㎝ 범위에서 정확한 측정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1950m 보다 2.94m 낮은 높이다. 최저 높이는 653m로 측정됐다.
한라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1950에 대한 상징성이 크니, 굳이 이를 깨고 높이를 낮추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원인은 풍화와 삼각측량점의 위치
보도에 따르면 2006년 양영보 제주산업정보대 겸임교수가 GPS(위성항법장치) 측량으로 한라산 해발고도를 잰 결과에서도 1947m로 측정돼 공인 높이보다 3m 낮았다. 양 교수는 “한라산 정상점의 위치가 서쪽과 남쪽으로 각각 1.8m 이동한 탓에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영국 Wauk hill의 삼각측량점, source: wikimedia commons by Walter Baxter
따라서 가장 마지막의 조사인 한국지질자원연구소의 조사 결과인 한라산의 높이 1947.06m는 기존 공식 높이와 20㎝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당시 조사진은 "현재 한라산의 최고 표고점으로 알려져 있는 1950m의 경우 조사를 맡았던 국토지리정보원에서도 약간의 오차가 있는 것으로 인정해 정정한 상황"이라며 "라이다 촬영도 100% 정확한 측량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1947.06m'는 한라산 백록담 주변의 거의 모든 지점의 표고점을 측정한 값으로, 최대 오차는 20㎝ 내외일 것으로 본다"며 조사 결과의 정확성을 주장했다.
한라산 왕관릉
백록담은 언제 마지막으로 분화했나
한편 조사진은 2016년 9월 백록담에 최장 36m의 구멍 6개를 뚫어 시추작업을 벌였다. 지하 30m 지점의 시료에서 1만 9000년의 방사성 탄소 연대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시추가 이뤄진 36m 지점 아래 퇴적층이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백록담이 적어도 1만 9000년 전 이전, 즉 후기 구석기시대에 마지막으로 분출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 사이에 36m의 퇴적이 이루어졌다는 말인데 결국 그 원천이 주변 분화구 벽에서 왔을 테니 백록담의 높이는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라산 백록담의 시추 위치도, 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소
조사진을 이를 바탕으로 분석하여 1만 년 전 동아시아의 고(古) 기후도 추적, 육지에 있던 제주도가 해빙기 해수면 상승으로 7000년 전 무렵 지금의 섬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대륙성 기후에서 해양성 기후로 편입돼 현재의 기후시스템을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과거 빙하기에 육지와 연결된 땅이었다. 약 2만 년 전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때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20m 정도 내려가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당시에 현재와 같은 산채가 형성되어 있었다면 한라산의 최고 높이는 대략 2070m 정도 되었을 것이다.
시나리오별 2가지의 우리나라 주변의 해수면 상승 전망
당시와는 반대로 점점 해수면이 올라가는 지금은 오늘 올라가는 한라산이 가장 높은 한라산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국립해양조사원의 우리나라 주변의 해수면 상승 전망을 보면 2100년까지 최대 82cm 상승할 것(시나리오 SSP 5-8.5)으로 전망되었다. 그때가 되면 한라산의 높이는 1946m 초반대가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높은 곳을 올라가기 싫은 사람은 미루고 미루어서 다리가 허락하는 가장 최후의 시기에 한라산을 올라가는 것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한라산 정상을 갈 수 있는 시기가 될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한라산이 분화하고 또 폭발적인 분화가 아니어서 꼭대기가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면 높이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잘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자연의 힘은 위대하고 예측불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