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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Dec 11. 2023

새로 만들어지는 전보의 추억

생활 속 과학 이야기 - 전보 1부

2023년 12월 15일 전보 서비스가 종료된다.


2023년 11월 13일, KT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115 전보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안내를 공지사항에 올렸다.  KT는 담담한 문체로 '138년'을 이어온 전보 서비스를 종료하는 이유 없이 그만한다고 공지했다.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니 구구절절한 내용 없이 그냥 중단한다는 의사만 표시했다.


1885년(고종 22년) 9월 한성정보총국에서 서울-인천 간 첫 전신업무를 시작한 지 138년 만이다.


전보 신청, 출처: KT 홈페이지

이에 언론은 전보가 사라진다는 기사가 쏟아냈다. 기사는  오랜 기간 동안 우리에게 빠르게 소식을  전하던 전보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표시했고, 이걸 기자가 이용해 봤다는 기사 그리고 일부 기사는 전보가 뭔지 아느냐고 신새대를 향한 질문을 제목으로 뽑기도 했다.


전보 종료 기사 목록, 출처: 네이버 검색


애환의 전보


1965년 기준, 시외 전보는 기본 10글자에 50원이었다고 한다. 당시 라면 한 봉지가 10원이었으므로 꽤나 비싼 가격인데다, 정해진 글자 수를 초과하면 글자 수만큼 요금이 추가돼 '축승진', ‘기쾌유’처럼 최대한 짧게 써야 했다.


그러다 보니 1969년 ‘모친상경’을 ‘모친상’으로 잘못 타전해 장례 준비까지 했던 서울 아들은 잘못이 밝혀지자 당시 돈으로 45만 원(약 2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편지는 언제 배달할지 알 수 없으니, 당시에는 전보가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편지는 걸어서 배달해도, 전보는 자전거를 타고 언제나 전달했다.


6.25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학도의용대원이던 김영삼에게 긴급전보가 도착했다. '조부위독' .

황급히 집에 가보니 할아버지는 정정하셨다. 결혼을 안 하려 드는 아들을 빨리 장가보내려고 부친인 김홍조 씨가 가짜 전보를 친 것이다. 그렇게 와서 만난 처녀가 나중에 퍼스트레이디가 된 손명순 씨라고 한다.


원산 부잣집 아들이던 화가 이중섭(1916~1956)은 1944년 12월 일본 유학 시절 만난 후배이자 애인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전보를 보냈다. 전쟁이 격화되고 있으니 '결혼이 급하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마사코는 1945년 마지막으로 운항된 관부연락선을 타고 한국으로 온다. 그 후 둘은 원산에서 결혼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제주 서귀포로 피난 가게 되고 행복해지만 가난한 생활이 이어졌다. 이중섭은 결국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생활하다가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서울에서 사망하게 된다. 이때 마사코는 아래의 전보를 받게 된다.


이중섭의 사망, 화장 소식을 마사코에게 알린 김광균의 전보, 출처: 조선일보


영화 속 전보(모스부호)


전보가 현실 세계에서는 사라져 가지만, 영화 세계에서는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정확히는 전보라기보다는 그 수단인 모스부호 중 SOS 신호에 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소재로 이용되는데, 가까운 예로는 우리 영화로는 <기생충>(2019), <엑시트>(2019), 외국영화로는 <인터스텔라>(2014)를 들 수 있다.


영화 <기생충> 중 전등을 이용한 모스 부호 전송, 제공:CJ ENM

<기생충>에서는 지하실에 갇혀 살던 근세(박명훈 분)가 전등 스위치를 이용하여 모스부호로 구조 메시지를 보낸 장면이 나온다.


<엑시트> 구조 요청 장면, 제공: CJ ENM

도시 재난 영화인 <엑시트>에서는 화재로 갇힌 사람들이 의주(윤아 분)의 제안으로 핸드폰 조명을 이용하여  모스 부호로 SOS 신호를 보낸다.


<인터스텔라>, 제공: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인터스텔라>에서는 쿠퍼의 딸 머피(제시카 차스테인 분)의 방 책장에서 무작위로 떨어지는 책과 모래먼지가 결국은 쿠퍼가 미래에서 과거로 보내는 모스부호였던 것으로 그려진다.




전보서비스는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종료되지만, 미국에서는 웨스턴 유니온이 2006년에, 독일 우체국에서는 2023년 1월 1일부터 서비스를 중단했다. 전보라는 서비스는 없어져도 모스부호는 남을 것이다.  모스부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로 이어진다.


현재 전보를 이용하는 방법은 일단 일반 배송(놀랍게 4~5일 소요)의 비용은 팩스 이용 시 50자까지 2750원, 인터넷 이용 시 150자에 2420원이다. 익일 특배의 경우 비용은 배 정도로 오른다. 당일에 받을 수도 있는데, 꽃바구니를 주문(최소 57,000원)하면 별도의 배송 업체에서 바로 보내 준다. 배달은 집배원이 직접 찾아와 전달하는데, 부재 시 한번 더 방문하고 그래도 없으면 우편함에 투입된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160자에 12.57유로(약 1만 6900원), 480자에 17.89유로(약 2만 4000원)였다. 독일은 공중전화도 모두 없앴다.




KT 담당자의 인터뷰를 보면, 없어진다니 최근 사용자가 늘었다고 한다. 처음 보내는 사람이 많아 전보가 처음 소개됐을 때처럼  시간과 공을 들여 안내하고 있다고 한다.


 빠른 통신 수단이 많이 존재하는 세상에 아직도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고 집배원이 종이로 전해주는 전보를 받은 기억이 있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짧은 전보의 글자 속에 숨겨진 내용을 상상하느라 수많은 밤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전보가 사라지면 다음에 사라지는 것은 뭘까? 이미 이메일은 뒤켠으로 물러나 있고, SMS, 카톡을 쓰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전보를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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