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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Sep 22. 2022

일본인의 애정표현

사랑한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남자 친구인 Y뿐만 아니라 회사를 다니면서도 동기들에게도 몇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존재한테 어떤 식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지.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예상 밖에 대답이라 놀랐었다. 5~6명 정도한테 물어보았던 것 같은데 다들 하나 같이 같은 대답을 했다. 사랑한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고. 대신


可愛い(かわいい): 귀엽다, 어여쁘다


를 쓴다고 했다. 그러니까 연인에게도 가족 간에도 可愛い(귀엽다)라는 말을 쓰면, 쓰는 사람도 그 말을 듣는 사람도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역시 외국어라는 것은 =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는 같더라도 실질적인 의미는 다른 것이다. 참고로 일본에서 말하는 可愛い는 실제로 귀엽다는 표현과 더해 예쁘다(Pretty)는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可愛い는 귀엽다, 예쁘다 뿐만 아니라 사랑스럽다, 보고 싶다, 소중하다, 어여쁘다, 가엽다 등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동기였던 세나라는 친구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표현할 때 可愛い라고 한다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존재를 귀엽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외에도 다른 말로 많이 표현한다.


물론 단순히 처음 본 인형을 보고도 可愛い라고는 한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겉모습이 귀여워서 귀엽다고 하는 말이기도 하며, 자기 눈에는 귀엽게 보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의 감정을 더 격하게 표현할 때는 可愛い에 한 마디 덧붙인다. 참고로 남자 친구인 Y는 나에게 애정 표현을 할 때 世界一可愛い(せかいちかわいい) 라고 한다. 뜻은 부끄러워서 번역하지 않겠다.(어차피 한자를 아시는 분이라면 아실 것이다) 


綺麗(きれい) : 예쁘다, 깨끗하다


라는 말도 있기는 하나, 이는 깨끗하다는 의미가 생각보다 강해서 잘 쓰이지 않는다. 청소를 하고 나서 깨끗한 상태를 말할 때나, 풍경이 예쁘다고 칭찬할 때 많이 쓰이는 말이다. 쓰는 분들도 있겠지만은 내 주변에서는 별로 보지 못했다. 피부가 좋다고 표현할 때도 쓰이기는 하나 이목구비보다는 전체적인 색감과 청결도를 표현한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일본에서의 거주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可愛い로 표현하게 되었다. 동시에 귀엽다는 표현 속에 '내 눈에는 아주 사랑스럽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어찌 되든 내 눈에는 귀엽고 보고 싶고 사랑스럽다는 의미로 쓴다. 한국에서 '예쁘다'라는 의미로 可愛い를 쓰고 있다. 하긴 그렇다. 한국에서도 사랑한다는 의미로 예쁘다를 쓰기도 하지.


참고로 Y도 좋아한다는 말보다 귀엽다는 말에 더 반응이 좋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미소를 짓지만 귀엽다고 말하면 눈이 빛나면서 '내가 귀여우니 어쩔 수 없지 私、可愛いから仕方ないね'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Y는 한국 나이로 30넘은 남자아저시다. 


그래서 혹시라도 일본인 연인이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하고 귀엽다는 말로만 애정표현을 한다고 해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시라. 우리의 생각보다는 무거운 애정표현이다. 작고 귀여운 생명체에게는 자주 쓰이지만 이성에게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심이 없는 이성에게는 절대로 쓰이지 않는다. 나름의 절제선이 있다.









반대로 사랑한다라는 말은 언제 쓰이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나도 들어본 적이 딱 한 번 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고 딱 잡아 설명하긴 어렵다. 그 딱 한 번이 예전에 Y와 가장 크게 싸운 날이었는데 내가 속상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정작 왜 싸웠는지는 기억을 못 한다. 바보같이.


아무튼 슬퍼하고 있는 날 보며 Y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愛してるっていうか(사랑한다고 해야 하나...)라는 말을 덧붙였다. 웃기게도 일본어 전공자였던 나는 슬퍼하면서 동시에 '아, 일본인도 사랑한다는 말을 쓰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Y는 그날 사랑한다고 말하며 믿고 따라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본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책임이 따르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내 안에서 '귀엽다'는 본인의 애정표현이지만, '사랑한다'는 본인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애정을 요구하는 말이라고 정리되었다. '사랑하니까 책임지겠다, 사랑하니까 책임을 지라'와 같이 책임이 같이 동봉되는 말인 것이다. 참으로 무거운 말이다.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으나 실제로 쓰는 걸 본 적이 한 번 밖에 없으니 잘 모르겠다.


나한테 쓰는 말이 아니어도 또 다른 누군가가 쓰는 장면을 목격하고 싶다. 


또 한 번 듣게 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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