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ㅇㅅㅇ Sep 09. 2022

일본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 : 중반의 연애

우리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 계기



Y가 연애를 서둘렀기에 잘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연애를 시작했고 초반에는 서로를 알아가는데 에너지를 썼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좋아하기는 하는데 아직 친해지지는 못한 상태였다. 같이 만나서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놀이공원도 갔다 오면서 점점 친해지기는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데이트할 만한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외출을 줄이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난생처음 재택근무라는 것을 정기적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Y는 현장직이었지만 다른 사람과 가능한 같은 날 일하지 않도록 출근 일수가 줄었다. 자연스럽게 집으로 놀러 와 재택하는 날 기다리다가 같이 저녁을 먹는 등 집 데이트를 하는 날이 늘었다. 지금은 전보단 많이 풀어져서 집 데이트를 거의 안 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마스크도 구하기 어려웠을 때라 외출이 어려웠다.


(당시 일본은 한국보다 마스크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부모님과 친구들이 마스크를 보내준 적이 있었다. 얼마나 어려웠냐면 하도 마스크 사재기가 심한데 제재도 없어서 당장 일주일분의 마스크밖에 없었을 때는 회사 선배가 자신의 부모님이 손수 만들어준 수제 마스크를 몇 개 나눠줄 정도였다. 그때는 정말 비싼 돈을 주고 마스크를 주문해도 주문이 밀려서 한참 걸려서 배송되어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는 횟수도 늘었는데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근처 가게들이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게 되면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줄었고, 결정적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다니기 시작해서 돈을 적게 쓰게 되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점심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점심 도시락을 나만 만들어가기는 어색해서, 놀러 와서 다음날 출근하는 Y에게도 간단한 도시락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남은 채소와 고기를 간을 해서 볶거나 얼려놓고 안 쓰던 새우로 볶음밥을 만들거나 미리 만들어놓은 반찬을 나눠 넣어 만들었다. Y는 내가 만든 도시락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가 장을 볼 때 돈을 보태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 집에서 안 쓰던 도시락 통을 꺼내서 내가 도시락을 만드는 날에 가지고 왔다. 나도 교생 실습 때 점심시간을 위해 샀던, 한동안 쓰지 않았던 도시락 통을 다시 꺼냈다.


도시락을 막 만들기 시작했던 시기에는 더 자고 싶은 몸을 이끌어 아침에 도시락을 완성시키는 과정이 힘들었는데 반년 정도 도시락 생활을 시작하니 이제는 몸이 익숙해져 요령 있게 회사 갈 준비를 하며 도시락을 쌀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참 좋았는데 Y도 점심시간에 충분히 쉴 수 있게 되어 좋다는 의견을 남겼다.


그렇게 Y와 만나는 날은 같이 도시락 메뉴를 고민하고 도시락으로는 무슨 반찬이 좋은지 시험해보면서 이 세상에서 우리 둘만 아는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시작은 단순히 소비 절약을 위해서였는데 이것이 나와 Y를 끈끈하게 만들어줄 요소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Y가 내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고 변했다.


하루는 Y가 말하길 일본에는 옛날부터 '남자는 잡으려면 위장을 잡아라(남자를 잡으려면 맛있는 음식을 먹여라)'라는 말이 있는데, Y는 이 말이 요즘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바로 무슨 말인지 상상하실 분들을 위해 잠깐 이야기를 바꿔보면 내 요리가 아주 맛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다. 집밥인 만큼 평범한 재료에 간은 약한 편이다. 오히려 간단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냥 간단하게 알기 쉬운 맛. 자취생이 본인의 건강을 고려한 맛. 딱 그 정도다.


메뉴는 한식과 간단한 일식이다. 파스타는 소스가 도시락통 사이로 샐까 봐 도시락으로는 만들지 않는다. 도시락은 그 소스가 새지 않는 먹기 쉬운 음식이어야 가지고 다닐만하다. 그러니까 Y는 내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좋다는 의미로 저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Y가 말하고자 한 것은 도시락이라는 존재가 식욕을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랑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Y는 내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며 말과 행동이 부드러워졌는데 Y의 부모님도 그 변화를 느낄 정도였다. Y가 오랜만에 친척들과 밥을 먹는데 말투가 상냥해지고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물과 식기를 챙겨주는 등(들으며 젊은 사람이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 친척과 가족들이 놀랬다고 한다. 물론 나는 남의 것까지 만드느라 체력을 소비한다. 그래도 데이트 비용은 Y가 더 많이 내니 노동력으로 데이트 비용을 대신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Y는 도시락을 만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요리를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맛없는 요리는 못 먹기 때문에 한 번 시켜보고 시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김밥으로 도시락을 만들지는 않지만



도시락을 만들면서 가끔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만들어주던 김밥이 생각나는데 김밥을 만드는 부모님보다는 내가 그 김밥을 먹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소풍 가서 도시락을 꺼내는 날은 나와 주변 친구들 모두가 도시락 뚜껑을 열고 각자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거라며 침을 튀기며 자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Y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도시락을 마지막으로 받은 건 교생 실습 때였는데 같이 교생 실습에서 만난 다른 실습생이 급식 말고 같이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자고 권하여 실습 한 달 동안 엄마가 내 도시락을 만들어주었다. 당시에는 밥보다는 냉장고에 냉동떡이 쌓여있어 떡과 과일을 싸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싸주신 게 김밥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밥으로 도시락을 만들지는 않지만 도시락을 만들며 추억 여행을 하고는 한다.

이전 04화 일본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 : 초반의 연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