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연락이 뜸하죠?
연애 초반의 Y는 생각보다 만남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라인에서의 대화도 이야기할 소재가 고갈되면 이야기를 끊어버렸다. 굳이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나라고 한국에서 대단한 연애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연락하고 싶었다. 나는 외로웠기에 매일 연락할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연락하는 것이 연애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너무 연락이 이어지지 않아 만났을 때 연락을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본인은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으면 그때까지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순간에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한 번에 다가와서 말문이 막혔는데 신기하게도 나 자신이 납득을 했다.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일과 자기 생활로 바빠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납득하고 나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오히려 초조했던 감정이 진정되고 매번 만날 때마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초반 두 달 정도는 연락 문제로 맘고생을 조금 했다. 연락이 너무 뜸해 연애 스타일이 안 맞다고 느껴지고 Y를 자꾸 내가 원하는 연애 스타일에 맞추게 하려고 강요했다. Y는 그러한 내 행동에 질려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나에게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최대한 설명하는 방향으로 나를 설득했다.
나는 두 달에 걸쳐서 그 설득에 납득을 하기는 했으나 불타오르는 듯한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 불만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Y와 헤어질 수는 없으니 고민을 하다가 결국, 연애는 연애대로 하고 불태울 수 있는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을 Y에서 다른 것으로 바꿨다. 바로 취미 생활이었다.
게임, 노래, 여행, 쇼핑 등등 나를 자극할 만한 것들을 찾으면서 나름 새로운 것을 해보았다. 키와제작소(액세서리를 만드는 재료와 도구를 파는 곳)에서 액세서리 재료를 사서 직접 귀걸이와 마스크 줄을 만들어보거나 중고샵을 다니며 그릇, 책, 옷, 가구 중고로 파는 것은 모조리 구경하러 다녔다. 한국에서 하던 게임을 다시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길드에 가입해서 게임 지인들과 거의 매일 게임을 했다. 가까운 곳은 최소 한 달에 한 번, 거리가 있는 곳은 최소 세 달에 한 번은 가도록 여행 계획도 짜고 시간이 남으면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거기다 코로나 시기에 외식도 어려워지면서 가능한 집밥을 먹으려고 고심하는 날이 늘었고 접해보지 못한 식재료를 구경하러 다니는 것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확실히 취미 생활의 범위를 늘리니 남자 친구인 Y의 연락에 대한 집착이 많이 줄어들었다. Y는 내가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데이트 장소도 대부분 내가 고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니 Y의 연락만큼 내 연락도 뜸해지게 됐다. 나는 Y에게 의존하지 않고 Y의 성향을 존중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약간의 정신적 성숙을 이루었다고 감히 말해본다. 정말 모순적이게도 연락이 뜸해질수록 나를 향한 Y의 애정은 반대로 깊어졌다. Y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던 전의 모습과 달리 나와 더 자주 만나려고 노력했고 사흘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던 연락을 매일 보내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Y가 집착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비해 연락에 충실해졌다. 하루는 Y에게 연락 빈도가 바뀐 것 같다고 말하자 본인도 인식하고 있었다며 내가 평소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졌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관계가 나와 Y의 연애 스타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불타는 사랑은 못하지만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사랑은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연애를 급하게 시작했기에 연애를 시작하고도 어색한 부분도 많았고 거리감도 많이 느꼈었는데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귀는 중에 다툼도 있었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다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쭉 쓰자면 너무 길어질 거 같으니 다음 에피소드에 자세하게 써봐야겠다.
앞서 말했듯이 Y와 사귀기 전에는 매일 연락하는 것이 연애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한국에 있을 때는 나도 주변 사람들도 그러했으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사고방식이 한국인의 특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연락과 애정은 그렇게 비례하지는 않는다.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매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그동안의 일상을 얘기하는 것으로도 부족하지 않다.(주 1회가 충분하다고는 선뜻 말하기는 어렵다) 매일의 연락이 없어도, 커플링이 없어도, 커플룩이 없어도, 애정표현이 없어도, 친구에게 소개하지 않아도 관계에 신뢰가 있으면 사실 없어도 크게 상관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연인 관계에서 앞서 말한 것들을 과시해야만 연애라고 여기는 풍조가 어렴풋이 깔려있다. 그리고 나 자신도 해외에 나가서까지 이 풍조가 당연하다고 느꼈다. Y를 만나고 나서 과시와 연애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러한 과시 없이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안 계시겠지만..) 뜨문뜨문한 연락일지라도 나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데이트를 할 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과 우리가 만나지 않은 날에 나를 생각했던 흔적들이 보일 때 애정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Y와 나의 애정을 확신하는 경험을 통해 나는 해외 살이에서 떨쳐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외로움으로부터 졸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