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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Sep 12. 2022

일본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 : 사랑을 배우다

사랑의 계기




그래서 결국 왜 좋아졌냐면



앞서 쓴 내용을 보면 나 스스로가 외로워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정말 거짓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Y가 처음에 마음에 든 것도 사실이며, 외로워서 Y와 연애를 지속한 것은 아니다. 내가 Y를 진심으로 신뢰하게 되면서 정말 Y를 사랑하게 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Y는 날 사랑하게 된 계기가 앞서 말한 도시락인 거 같은데 나는 다른 계기로 Y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우선 첫 번째 사건은 내가 코로나 시기 첫여름에 마스크를 쓰다가 볼에 피부염이 생긴 일이었다. 마스크를 쓰면 아프고 열이 오르는 데 여름이라 날도 더워서 도저히 피부염이 나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휴가를 하루, 재택근무를 하루 써서 다 낫고 싶었지만 맘처럼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스크가 문제인 거 같았지만 얼굴이 아파 마스크를 쓰고 외출할 수가 없었다.(당시엔 마스크 대란이어서 질 좋은 마스크를 골라 산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일단 천 마스크를 주문하긴 했으나 도착할 때까지 한 달이 걸린다는 배송 연락이 왔다. 나는 초조했고 그때 당시 막 사귀기 시작했던 Y에게 불안한 마음에 피부염에 관하려 얘기했다. Y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겠냐고 했고, 나는 Y의 직장 근처에 혹시 천마스크를 파는 곳이 있으면 사두고 우리가 만날 때 건네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Y는 찾아보겠다는 답장을 했다.


사실 Y도 바쁘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집에서 수분 크림을 자주 발라주며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고 있었다. 일단 최대한 집에서 쉬면서 외출을 줄여야지, 주말에도 집에만 있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Y가 찾아왔다. 천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며 3개를 건네주고 갔다. 나는 마스크를 건네주는 Y를 보고 살짝 울뻔했다. Y는 마스크만 전달해주고 집으로 갔다. Y의 집은 우리 집에서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너무 미안했지만 고마움이 더 컸다.


Y가 주고 간 마스크를 껴보니 마스크가 최대한 얼굴에 닿지 않는 형태에 수건같이 자극이 가지 않는 소재였다. 고마웠다. 그리고 Y가 준 마스크를 잘 빨아 출근하는 날 하고 갔다. 일회용 덴탈 마스크보다 훨씬 피부에 덜 자극적이었다. Y덕분에 나는 길게 갈 거 같았던 피부염이 일주일 만에 나았다. 그때 나는 이 타지에서 나를 생각해주고 나를 위해 움직여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게 나는 Y에게 마음 한편을 내주었다.


이 일은 1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Y에게 직접 말했다. 마스크를 사다 준 날 너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Y는 아직도 그런 걸 기억하고 있냐며 놀랬지만 그걸로 좋아하게 되었다니 값싼 대가였다며 기뻐했다. Y는 아무래도 마스크를 사다 준 것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이상 말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렇다고만 했다. 어쩌면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Y는 그 이후로 내가 힘들어하거나 아픈 날 항상 뭐가 갖고 싶냐고 물어온다.









왜 우리 아빠같이 행동해?



두 번째 사건은 내가 아주 기분이 나쁜 날이었다. 나보다 반년 늦게 일본으로 취직한 대학 친구가 있었다. 친구에게는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20대 후반에 남자 친구가 처음 생겨서 나에게 아주 고민 상담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난 연애 경험이 아주 적다) 나는 그 친구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나 친구는 취직하고 나서 나를 라이벌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친구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 친구와 있는 시간이 슬펐다.


그렇다고 타지에서 안 볼 수가 없었는데 친구는 자신을 동정하게끔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남자 친구와 잘 되고 싶어서 주변인들에게 항상 남자 친구에 대해 얘기했다. 당시 나도 Y와 잘 만나는 중이었기에 친구는 Y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도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하루는 친구가 Y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여 알겠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 각자 회사가 끝나고 만나기로 하고 Y도 같이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친구는 만나기로 한 시간에 나오지 않았다.


늦어진다는 연락이 왔다. 뭐 금요일이니까 야근이라도 하게 되었나 보다 하고 Y와 가볍게 저녁을 먹었다. 친구는 우리가 막 저녁을 다 먹은 시간에 도착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너무 배가 고프니 식당에 들어가서 먹고 있겠다고 했다. 우리는 내 대학 친구가 말한 식당으로 갔다. 친구는 과일 팬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나와 Y는 저녁을 먹었기에 딸기 파르페를 시켰다. 좀 가격대가 있는 곳이었다.


내 친구는 Y를 보더니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질문은 평범했는데 을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 친구는 자신과 Y가 둘 다 연애에서 상대방을 더 좋아하기에 을의 입장에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계산이었다. 내 친구는 여자는 데이트에서 돈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친구였는데 그걸 Y에게도 적용시켰다. 나는 더치페이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당연히 Y가 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나와 Y가 먹은 파르페 값을 계산할 생각이었는데 Y가 한 번에 다 결제를 했다. 나는 Y에게 슬쩍 나중에 친구가 먹은 값을 내겠다고 귓속말했다. 그때 Y는 그냥 웃기만 했다. 친구는 잘 먹었다고 하며 빨리 남자 친구를 보러 가야 한다고 가버렸다. 겨우 한 시간 만나기 위해 우릴 불렀나 싶긴 했지만 친구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빨리 헤어졌다. 짐작이긴 하지만 나를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던 친구는 남자 친구인 Y가 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나는 괜히 Y를 만나게 했나 하고 또 슬퍼졌다.


친구가 먹은 팬케이크는 조금 비쌌다. 내가 Y에게 왜 다 계산해버렸냐고 물어보았다. Y는 내 친구니까 자기가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내 주변인들에게 점수를 따지 않겠냐며. 나는 여기서 살짝 울컥했다. 아무 말 없이 한 번에 다 결제하는 모습, 내 친구니까 당연히 자신이 계산해야 한다는 모습, 내 친구를 역까지 배웅해주는 모습이 마치 우리 아빠 같았다. 이 날 Y는 자꾸 우리 아빠와 겹쳐 보였다.


Y는 체형은 다르지만 머릿결도 외모도 피부색도 키도 우리 아빠와 닮았다. 그래도 아빠와 겹쳐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이후도 없었다. 내 친구의 밥까지 계산해준 그날만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친구 일로 아주 슬펐는데 동시에 내 슬픔을 감싸주려고 하는 Y의 모습에 집에 와서 울었다. 한국에 있는 아빠가 보고 싶기도 하고 Y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날 이후 Y가 가족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무언가로 연결된 것 같았다.










정말 돈이 많아진다면



Y가 우리 집으로 놀러 온 날이었다. 잘 준비를 하고 1인용 침대보다 약간 큰 내 침대에 누워서 불을 끄고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마침 로또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Y에게 돈이 아주 많이 생기거나 연봉이 아주 좋은 회사로 이직하게 된다면 그래서 돈 걱정이 없어진다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별생각 없이 물어보았다. 다들 한 번쯤 돈 걱정이 없어진다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나. 딱 그 정도의 질문이었다. 로또 1등 당첨까지는 아니더라도 노후 걱정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번다면 하고.


Y는 잠깐 고민하더니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Y 자신이 아니라 내가. 나와 결혼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분명 졸렸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당황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Y는 그래도 그런 일이 생기기는 힘들 거 같다며 웃었다.


만약 Y가 한 말이 거짓일지라도 나는 Y의 그 대답에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Y는 내 마음의 전부를 열었다. Y는 내 마음을 전부 내주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인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서 말한 두 계기에서는 눈물이 나왔는데 이 날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음에 들고, 좋아하고, 보고 싶고, 아껴주고 싶고, 없을 때 생각하고 그리고 같이 놀고 싶다고 생각했던 Y를 향한 내 감정이 그의 말에 모여 사랑이 되었다. 사랑이란 이런 거 구나. 파트너란 이런 거 구나. 동반자란 이런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무르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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