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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Sep 07. 2022

일본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 : 고백

결혼 활동을 했다고요?


4번째 만남은 Y가 가고 싶다고 한 토도로키 녹지에 갔다. 작은 공원 같은 곳이었지만 예쁜 곳이었다. 신사가 있었는데 그가 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괜찮으니 옆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근처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내가 먹고 싶어 Y에게 먹겠냐고 물어보니 먹겠다고 했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계산하는데 Y가 옆에서 이걸로 오늘은 돈은 더 이상 안내도 된다고 얘기했다. 나는 얼마 안 하는 아이스크림 산 거뿐인데 돈을 안내도 된다는 말을 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산책을 하다가 Y가 예약해둔 디저트 집에 갔다. 파르페가 유명한 곳이는데 테이블이 꽉 차서 날이 좀 쌀쌀하지만 테라스에서 먹었다. 파르페가 정말 화려하고 맛있었다. 그렇게 화려하고 맛있는 파르페를 먹어본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파르페가 나오자마자 사진을 찍고 먹는데 Y는 파르페를 먹으며 혼자라면 이렇게 빌어먹게 비싼(くっそー高い) 파르페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くっそー라는 말은 쓰지 말라고 했다. Y는 민망해하며 조용하게 파르페를 먹었다.


그렇게 디저트를 다 먹고 나와서는 Y가 고백하려고 했다. 근데 내가 너무 민망한 나머지(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다) 다른 곳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Y는 알았다고 했다. 장소를 집에서 더 가까운 곳으로 이동해서 저녁을 먹었다. Y는 나한테 거절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 사귈 생각이 없었기에 계산할 때 내 몫의 밥 값을 건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Y는 더치페이를 한 것이 내가 더욱 거절하는 것처럼 느껴져 싫어했던 거 같다.


밥을 먹고 나와서 얘기를 다 못했으니 마지못해 공원으로 산책을 했다. Y는 벤치에 앉아서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하냐고 말했다. 나는 시간을 조금 더 주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으나 Y가 안된다고 했다. 아.. 지금까지의 만남에서는 예의 바르고 상냥한 이미지였는데 갑자기 돌변하며 사귈지 말지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래서 난 사귀기 어려울 거 같다고 얘기했다. 그 당시 나도 나 자신이 외로워서 그의 플러팅을 모른 척하고 만남을 권유했다. 자꾸 외로워서 그랬다는 변명이 계속 나오는데 당시 나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쉽게 가던 한국을 쉽게 가지 못하고(일본은 2020년 2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국경을 잠가버렸고 내국인이 아닌 이상 해외로 나가면 돌아올 수가 없었다) 친구가 놀러 오지 못하고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 많이 힘들어했다.


Y가 끝까지 상냥했다면 모를까 돌변한 모습도 부담스러웠다. 그랬더니 Y는 이 관계에 대한 얘기에서 벗어나 자신이 지금까지 연애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식사를 권유하기 몇 개월 전까지 결혼 활동이라는 걸 했다고.


여기서 결혼 활동이란 婚活(콘카츠)라고 하며 실제로는 연애 상대를 만나기 위한 활동을 말한다. 실제로 기업들이 장소를 마련하고 참가자를 모집하여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모아 소개팅을 시키는 이벤트를 말하는데 Y는 연애가 하고 싶어서 반년 정도 결혼 활동을 했었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데이트도 하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데이트도 매번 일회성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동안의 그의 이상한 행동들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일본의 결혼 활동 이벤트에서 만난 이성과 데이트를 하면 100% 남성이 데이트 비를 지불하는데 이벤트 참가비도 남성만이 참가비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결혼 활동 이벤트에는 여성이 적기 때문에 남성이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선택받지 못한 남성은 참가비만 내고 그대로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Y는 부드러운 인상에 아직 20대라는 점에서 꽤나 선택은 받은 거 같으나 만난 여성들이 취향이 아니었으며 상대방도 본인이 맘에 들지는 않았는지 만나고 나서 연락이 오지 않아 일회성 데이트만 많이 했다고 했다. 일회성 데이트라고 해도 점심값, 디저트 값 그리고 기타 오락 거리 비용 등을 해서 매번 적지 않은 돈을 썼고 식사와 디저트는 평범한 곳을 가면 여성분이 실망하니 꽤나 좋은 곳을 골라갔었다고 했다. 


반년 동안 결혼 활동에 열심히 참가했으나 남는 것이 없어 포기하고 지내던 찰나에 내가 식사를 권유하게 되었고 여러모로 잘 맞아 나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초조해했다고. 나는 그런 내막을 몰랐기에 저렴한 이자카야에 갈 때 걱정하던 그의 모습을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Y는 남자가 선택받기 위해서 좋은 가게를 고르고 모든 데이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명제가 머리에 박혀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지만 Y는 진지한 거 같아서 웃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기다려달라는 말을 했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도망치려고도 했다. Y는 자꾸 내가 도망가려고 해서 포기 상태로 알았다고는 했으나 조금만 건들면 화낼 거 같은 모습이었다. Y의 마지못한 모습이 미안했지만 너무 늦었기에 헤어지고 집으로 귀가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미친 듯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이라는 것을 떠나서 내가 일본에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고 사귀다가 한국에 가기 위해 헤어지게 되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어차피 어설프게 끝날 바에는 자세하게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만나지는 않고 전화와 라인으로 이러한 사정을 설명했다. Y는 일본에 있는 동안만 사귀어주어도 기쁘다는 말을 했고 다음에 만났을 때는 내 생일을 기억하고 생일 선물을 건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이어갔고 반팔을 꺼낼 즈음에 내가 정식적으로 사귀자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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