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의 공황장애/우울증을 앓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증상들 중에는 자살충동도 있긴 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며 지금까지만 해도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며 삶의 무대가 내려져도 그 역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으로 죽음은 내게 인사했다.
평소 장례는 떠나는 이를 위함이 아니라 남겨지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 말할 정도의 생사관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병들어 가는 마음은 그것조차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중, 아이가 내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은 일이 있었다.
바로 침실 방 문에 붙여놓은 쪽지 하나.
건담은 여기 왜 들어가는 거니?
최근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아가던 딸아이가 요즘 들어 죽음이란 개념에 대해 이해를 더해간 모양인지, 한 번은 침실에서 잠들기 전 펑펑 눈물을 쏟는 일이 있었다.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냐는 질문과 함께
"엉엉 아빠 죽으면 어떡해, 난 아빠가 엄청 좋은데"
"아니 언젠가 죽기는 하겠지만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일걸, 왜 그런 걱정을 해?"
"으아아아아앙!! 엄마, 아빠가 죽는대!!!"
뭔 위로를 그런 식으로 하냐는 와이프의 따가운 눈총에 나도 억울했다. 아니 죽는 건 사실이잖아?
아빠의 엉성한 위로를 받으며 울다 지쳐 품 안에서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굳이 말을 걸지 않으면 다소 조용하다 못해 말이 별로 없는 와이프, 아빠랑 같이 하는 게 재밌다며 매일 건담을 노래 부르며 프라모델을 갖고 뛰어다니는 딸아이. 우리 집의 웃음소리에는 항상 내가 중심이 되곤 했는데 만약 내가 없다면 어떨까?
따로 말을 붙여줄 이가 없기에 딸아이가 뭔가 이야기를 걸기 전에는 입을 떼지 않는 와이프와 아빠와 함께하는 놀거리가 없을 땐 얌전히 혼자 그림을 그리는 아이. 분명 우리 집은 많이 조용해 질거라 생각한다. 다소 편협한 내 중심적인 상상이겠지만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이상 상상은 온전히 내 몫이니 어쩌겠는가.
그러다 우리가 함께한 소소한 추억들을 떠올릴 때면 와이프는 이따금씩 눈물을 머금을지도 모른다.
함께 투덜거리며 당신이 하나 더 들라며 소란스럽게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일상이나, 서로 해달라며 커피를 누가 탈 것인가를 가지고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커피잔들. 그리고 수많은 자동차도 많은데 내 취향으로 고집부린 돼지코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그렇게 와이프의 얼굴에는 나란 존재가 잊히기까지 오랜 시간 많은 눈물과 슬픔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딸아이도 마찬가지
수염 가득한 얼굴로 뾰족뾰족 볼뽀뽀를 해주면 간지럽다고 웃는 웃음이나, 마트에 갈 때마다 함께 엄마 눈치를 보며 프라모델을 사야 한다며 장난감 코너에서 시위하다 혼나는 소란스러운 사건들, 캠핑장에서 화로대에 불 피우며 서로 밤에 오줌 싸겠다고 놀리는 웃음소리. 모두 다시는 찾아보기 힘든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삶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병들어 이따금씩 떠올리던 죽음이란 존재가 너무나 원망스럽고 가족의 웃음을 앗아가는 원수처럼 생각이 든다. 나의 숨이지만 나 혼자만의 숨이 아닌 것처럼 색다른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조금 마음의 감기를 헤쳐 나오고 있다.
오늘은 왠지 마음이 울적해져 술 한잔 해야 할 날인 것만 같다.
"으아아아앙! 아빠가 안 좋은 것만 먹고 먼저 죽으면 어떡해!!!!"
피쉭! 캔 따는 소리가 들리자마다 터져 나오는 아이의 울음. 아니 캔맥주 정도는 용서해 주자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