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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논리야 놀자 들어봤어?

뷔페식 데이터 열거법 보다 나은 대안이 있어

by Aiden

3. 기본적인 논리 구조 없이 그저 데이터를 늘어놓은 경우

순수한 국민학생이던 90년대, ‘논리야 놀자'라는 책을 항상 끼고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그렇게까지 열심히 정독한 건 아닌 듯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인생의 베스트셀러로 항상 꼽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쓸모 있게 생각하는 부분은 3단 논법이다.

이 3단 논법은 90년대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3세기 정도에 머물러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려야 한다. 이 개념을 모르는 친구들은 거의 없겠지만 잠시만 친절해져 보자면 A=B이며 C=A일 때, C=B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대전제 : (A) 모든 인간은 (B) 죽는다.

소전제 : (C) 소크라테스는 (A) 인간이다.

결론 : (C) 소크라테스는 (B) 죽는다.


이미 상식처럼 자리 잡은 이 논법은 아주 기초적인 논리적 사유 Logical Thinking 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나를 당황케 하는 것은 왜 상당수의 리서치에는 이런 간단한 논법도 활용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잘 짜여진 논술 답안지를 보면 한결같은 공통점은, 명쾌한 기승전결(혹은 논리적 개연성)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와 문장을 긁어모은들 각각을 연결하는 개연성이 없다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 없다. 그전에 근본적인 취약점은 이해가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포트폴리오를 열어보고 가장 빠르게 실망하는 게 이 부분이기도 하다. 데스크 리서치 장표에 담겨야 할 내용은 지원자가 선택한 주제에 대한 가설과, 이에 대한 검증으로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주제에 대해서 발견할 수 있는 데이터를 단순히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다. 원인은 여럿 있겠지만 예상컨대 가장 큰 이유는 열심히 발굴한 데이터들을 뭐 하나 버리기 아깝다는 이유로 모조리 담는 식의 과오를 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한다. 적어도 이만큼 열심히 조사했다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스스로의 성실함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데스크 리서치에도 최소한의 논리적 개연성은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이 이해가 되고 설득이 된다. 이를 가장 빠르게 점검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리서치를 소리 내서 읽어보면 된다. 자신의 생각을 임의로 더하지 말고, 적혀있는 내용 그대로를 소리 내서 읽어보면 얼마나 개연성이 탄탄한지 점검해 볼 수 있다. 반대로 뭔가 말이 안 되고 횡설수설하는 기분이 든다면? 글을 작성한 당사자도 읽지 못하는 글은 아무도 읽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논리적 전개방법은 다양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효율적인 모범답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3단 논법.

주제의 성격이나 깊이에 따라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주니어 레벨 수준. 즉, 취업 준비생이 다루는 주제의 깊이를 고려할 때 3단 논법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설령 그런 게 있다면 주니어 수준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라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게다가 보는 사람이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설득력의 차원에서도 매우 높은 가성비를 자랑한다는 점도 있으니 대안이 없다면 아래 예시를 참고해 보자.


대전제 : (A) 선택한 주제에 대한 (B) 최근의 양상/트렌드

소전제 : (B) 변화에 따라 파생되는 (C) 문제나 이슈 제기

결론 : (C) 문제의 구체적 현상 또는 실체 (A) 분석


이렇게 구조를 짠다면, 아래와 같이 한 줄 로도 요약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B) 최근의 트렌드에 따라 (C) 생기는 이슈/문제는 (A) 이러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보다 간결하고 명쾌한 문제 정의가 있을까?

이렇게 바로 조립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각가의 전제 또는 하나의 전제에 근거를 보완한 대증식과 같은 변형을 고려해 봄 직도 하지만 이 정도는 주제와 데이터의 볼륨에 따라 각자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남겨 두는 것이 옳을 듯하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뷔페식으로 열거하는 것에 비해 이런 논리 전개가 유리한 점은 설득력 외에도 하나 더 있다. 바로 시각적인 구조화가 유리하다는 점. 쉽게 말해 장표를 그리기가, 레이아웃을 배치하기가 굉장히 수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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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식으로 비주얼을 구성할 때의 숨겨진 장점이 하나 더 있는데, 평가자가 상당히 익숙하게 소화할 수 있는 문서 형식이라 수용력 또한 우수하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자, 여러분도 요즘 10대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이 종종 튀어나오는 걸 경험했을 터다. 하지만 여러분 또래끼리 하는 이야기는 줄임말 같은 유행어도 막힘없이 소통하는 걸 보면, 얼마나 익숙하게 접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인지에 따라 의사소통 효율이 좌우되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두 가지 장표 예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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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Kinsey Slide Deck / Boston Consulting Group Slide Deck

대기업에선 한번 정도 컨설팅 의뢰를 맡겨봤을 맥킨지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의 문서 형식 중 하나다. 각각 3단과 2단 레이아웃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3단 논법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3단 논법의 장표 구성이 저 Slide Deck을 참고한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상당수 기업의 일정 직급 이상, 그러니까 여러분의 포트폴리오를 평가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저런 식의 문서를 익숙하게 받아들일 확률이 매우 높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있는(돈이 제법 있는) 기업은 사업 전략을 고안할 때 이런 컨설팅 그룹을 종종 이용한다. 내부 인력만으로 분석을 하게 될 경우 편향된 시각이 담길 수도 있기에 제삼자의 시각에서 분석이 가능한 곳에 의뢰하는 이유도 있고, 컨설팅 그룹은 대체로 밥만 먹고 전략 분석을 전문적으로 하는 자들이다 보니 전문성 또한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들이 유통하는 형식의 문서를 소비하는 경험이 많으며, 내부에서도 이러한 형식을 준용/차용한 보고서를 생산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 또한 대기업 경력자 영입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일정 직급 이상에서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문서라고 봐도 될 지경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3단 논법으로 여러분의 리서치를 정리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논리적인 개연성이 뛰어나며, 시각적 정보 구성이 탄탄하고, 보는 사람이 익숙하게 소화할 수 있는 형식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혹시라도 뷔페식 데이터 열거법을 고집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이런 특장점을 외면하고라도 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한번 따져 보았으면 한다. 아마도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3단 논리와 같은 말끔한 구조로 정리할 수가 없기에 뷔페식 열거법을 피난처로 삼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이쯤에서 대학시절 즐겨봤던 만화책 베르세르크의 명대사,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를 소환해 보고자 한다. 아마도 예체능 계열 출신자들의 아킬레스건, 인문학적 지식의 결핍이 논리적 개연성을 구축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지는 않을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표지를 제외한다면 이 단계는 여러분 프로젝트의 가장 첫 장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평가자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가 바라보는 결과물에서 논리는 빠지게 되고 UX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논리적 개연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 테니까.




저자 aiden의 UXUI 포트폴리오 온라인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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