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보 습득 원리를 알면 향상되는 서비스 구조
많은 사람이 운전대를 잡으면 왜 성격이 난폭해지는지 알고 있나요?
운전을 하는 동안에는 도로 위에서 쏟아지는 다량의 정보를 소비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판단해야 할뿐더러, 도로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고도의 인지능력을 사용하며 전두엽 기능(뇌 용량)을 상당 부분 소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화를 참는 것도 전두엽 기능이 필요한 인지 능력의 소모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이미 상당수의 전두엽 기능이 운전하는데 가 있으니 쉽게 화가 나고 피곤해지는 거죠. 저 역시 운전할 때 아주 심할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은 급해지는 느낌이 종종 들긴 했었는데, 최근 차를 바꾸고 반 자율주행 기능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상당히 평온해졌습니다. 제가 판단하고 처리해야 할 인지 영역이 상당 부분 감소했거든요.
만약 본인 또는 가족 중에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급격히 바뀌는 사람이 있다면 어서 돈 많이 벌어 자율주행이 되는 좋은 차를 사주세요... 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서 핵심은 인간의 뇌는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소비하는데 그렇게 유연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단 사실입니다.
저도 매번 서비스를 설계하고 구축할 때마다 같은 고민이 있었어요. 사용자에게 전달할 정보는 많은데 스크롤을 줄줄이 내려가며 늘어놔 봐야 사용자는 제대로 정보를 습득하지 못할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정보를 적당히 나눠 화면을 분할해서 배치한다는 일반론에는 공감하고 있었지만, 사용자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다음 화면으로 끌고 가는지가 늘 숙제였어요.
대부분은 화면을 쪼개놓으면 그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이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거든요.
그 와중에 여러 실무 경험을 통해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을 나름의 노하우로 정리해 본 게 바로 요 깔때기형 정보구조입니다. 이름이 구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대충 지었어요.
아마 어딘가에 찾아보면 정식으로 정의된 학술서도 있을거 같은데 거기까진 찾아보진 못했어요.
아무튼 깔때기형 정보는 앞에서 약간의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를 본격적으로 탐색하고 싶어서 다음 화면으로 진입하면 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많이 제공하고, 거기서도 정보의 양이 많다면 또 약간의 정보들을 미끼 삼아 제공하고 또 탐색 의지가 생기면 다음 화면으로 끌고 가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미끼가 되는 약간의 정보와 그 뒤에 숨겨진 본격적인 정보의 연속이죠.
이건 직접 예시를 들어드리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를 거 같아요.
가장 왼쪽 화면을 봅시다. 여러 컨텐츠가 제공되는 리스트 화면이에요. 각 컨텐츠가 갖는 정보는 대단히 방대한데 리스트에서는 굉장히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죠. 크게는 썸네일, 타이틀, 제작자, 재생시간, 조회수, 등록일자입니다.
여러 컨텐츠가 있을 때 사용자가 컨텐츠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동기는 리스트 화면에서 제공된 정보들이 모두 미끼로써 기능하게 됩니다. 가장 강력한 시각장치인 썸네일, 그리고 함께 세트로 묶이는 타이틀 이건 너무나 당연하죠.
그리고 제작자, 이건 유사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공신력 있거나 권위 있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기대 신뢰도나 퀄리티가 다르기 때문에 정보를 분별하는 주요 미끼가 됩니다.
그리고 재생시간은 최근엔 긴 영상이 부담스러워 숏폼 영상을 소비하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내가 이 컨텐츠에 투자를 해야 할 기대 소요시간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미끼가 될 수 있겠죠. 똑같은 영화 리뷰라고 해도 난 좀 더 굵직하게 보고 싶은 의지가 있는 사람은 더 짧은 영상을 고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다음은 조회수, 이건 영상의 선호도를 말해주는 지표입니다. 내 시간은 소중한데 아무도 찾지 않는 음식점보다 누구나 줄 서서 먹고 싶어하는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싶은 것과 같은 이치죠.
마지막은 등록일자, 컨텐츠는 신선도가 생명인데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정보이기도 하죠, 역으로 신선도가 떨어지는데도 지금까지 핫하다면 얼마나 순도 높은 컨텐츠라는 걸 역설적으로 알게 해주는 정보일까요?
이렇게 리스트 하나에도 수많은 미끼들로 뭉쳐진 정보의 샘플들을 던져놓고 서비스는 사용자를 유혹하고 다음 화면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쓸모없는 정보들을 단순히 나열해 둔 게 아니라 컨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기대 심리에 부합하는 미끼들만 잔뜩 늘어놨는데 안 누르고 배기겠어요?
자 이제 가운데 화면인 플레이어로 넘어왔습니다. 여기서 저는 댓글창이 보이더군요. 댓글 수 96, 그리고 가장 반응이 좋은 베스트 댓글. 이 두 미끼가 이 컨텐츠를 소비하는 다른 사용자들과 소통하고픈, 또는 난장을 피우고픈 키보드 워리어로서의 제 욕구를 충동질하게 만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고, 어떤 의견이 가장 지배적인 지지를 받았느냐.
이 미끼에 입질을 해 가장 오른쪽 화면으로 넘어가면 이제 앞에서 제시한 미끼보다 방대한 댓글들을 본격적으로 늘어놓는 형태로 정보는 확대되고 발전되어 나가죠.
만약 이 모든 정보를 가장 왼쪽의 리스트 화면에 모두 뿌려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라면 전두엽이 아파 앱을 꺼버리고 말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사용자를 잃어버리고 말았어요(Fall out).
그러니 여러분은 정보가 비대해 화면을 나눠야 할 때 이것만 기억해 주었으면 해요.
'지금 사용자가 가장 원하는 니즈가 뭐고 그걸 충족시킬 미끼가 무엇일까?'
이것만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은 화면을 구분하고 구조를 짜는데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럼 다음 글은 본격 화면 설계인 StoryBoard로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