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못 잡고 헛소리 하는 사람들은 기분 나쁘죠? 서비스도 같아요
어려운 이야기들에서 잠시 벗어나 한 가지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지금 소개팅에 나가 처음 만난 사람과 마주 앉아 커피 한잔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이예요. 주선자로부터 전해 들은 건 이름과 나이, 그리고 개략적인 직업 정도일 뿐입니다.
아직 상대방과 어떤 교감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는데 마침 상대방이 입을 열었습니다.
혹시 차는 뭡니까? 재산은 얼마나 있어요?
순간 여러분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겁니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얼굴에 떠오른 불쾌감을 숨기기엔 이미 늦어버린 뒤겠죠. 당연한 일입니다. 상대방은 처음 만나는 내게 너무나 치명적인 실례를 범했으니까요.
너 나 알아? 언제 봤다고 뭔 헛소리야!
우리는 으레 초면인 경우에는 조심스럽게 관계의 거리를 탐색하고 나섭니다. 그리고 아직 그 관계가 모호할 때에는 분위기에 맞는 부담 없는 이야기들로 관계를 쌓아나가기 시작하죠. 그러다 여러 번 다시 만나고 결혼 이야기가 오갈 정도가 사이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비로소 민감한 주제들을 건넬 자격이 주어집니다.
저는 사실 화면에 배치되는 컨텐츠나 인터페이스도 사용자에게 건네는 서비스 제공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용자는 무언가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인터페이스를 작동할 때마다 일정한 기대를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핸드폰에서 볼륨 UP 버튼을 누르면 음향이 커질 거란 기대를 안고 있는 것처럼요.
볼륨 UP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즉시 화면의 UI 요소는 화면 구석에서 사용자에게 조용히 속삭입니다.
혹시 네가 하던 일 방해할까 봐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음향 키워달라고 했지? 이만큼 맞아? 아직 더 높일 수 있으니 부족하면 알려줘
정말로 상냥하고 친절한 멘트 아닌가요?
만약 저기서 조그맣게 차오르는 바의 형태가 아니라 단순히 숫자를 화면 한가운데에 크게 띄워줬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시스템이 거는 목소리는 이렇게 바뀔 겁니다.
야야야 딴 거 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너 볼륨 조정한 거 지금 23이다? 아무튼 그렇게 알아둬
저는 이게 모든 화면을 구성할 때도 동일하게 작동되는 원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배나 부하 직원들에게는 화면을 설계할 땐 꼭 이렇게 해보라고 가르치곤 합니다.
화면에 배치한 컨텐츠 요소들 하나하나, 버튼 하나도 소리 내서 읽어보면 지금 사용자가 요구하는 시나리오에 맞는(분위기에 맞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을 때도 적당한 거리감이나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 대화만 일삼는 사람은 아무리 친하더라도 점점 거리를 두게 되잖아요? 아무리 좋은 기능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대화를 건네야 할 때 건네지 못하고 건네지 말아야 할 때 절제하지 못하는 서비스는 점점 유저의 이탈로 이어지게 될 뿐입니다.
그러니 화면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면서 내 화면을 계속 소리 내서 읽어보세요. 그럼 어느새 친절한 서비스가 되어 내 화면을 편안하게 이용하는 사용자들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음 글부터는 이제 최종장인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