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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Aug 07. 2024

#09. 아이가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구나

당신만 몰랐어, 이제야 그게 보여?

우리 가족은 매년 가족사진을 촬영한다. 처음엔 그저 와이프가 하자니까 한 거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미처 가족사진에 의미를 두고 여길 정도로 내게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격무에 시달리느라 사진 촬영일에 맞춰 연차나 반차를 내는 것 자체도 힘겨운 일이었기에 딱히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러다 올해 촬영은 이미 잡혀있던 일정이었지만 우연찮게도 휴직이 끼어들면서 조금은 이 행사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꺼내든 지난 사진들. 돌부터 시작한 촬영이기에 아이가 점차 자라온 모습이 선명하다. 같은 집에 같은 밥을 먹으며 지내왔음에도 어떻게 자라왔는지 어떤 표정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자세히 볼 자신이 없었던 딸아이의 얼굴이 또렷하다.


21년(좌) / 24년(우) 키가 부쩍 자랐다, 내 배도


"우리 아이가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구나"

"당신만 몰랐어, 이제야 그게 보여?"


와이프의 옅은 노기가 버무려진 투덜거림에 내가 뭐 일부러 그랬나 항변하고픈 어떻게 보면 살짝 억울한 기분도 느껴졌지만, 사실인걸 어찌하겠나. 그간 내 몸 하나도 간수 못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빴던 내 인생을 탓해야지.


강남의 늘 같은 사진관에서 찍기에 심지어 작년 사진 촬영 때는 간신히 반차만 내고 사진만 찍고 급하게 사무실로 돌아왔더랬는데, 오늘은 아침에 아이의 머리를 빗겨주고... 물론 와이프가 말이다. 내가 빗겨주면 머리가 엉망이 되기에 오늘 같은 날 만큼은 와이프가 빗겨줘야 한다.

아무튼 출근길 차량 행렬을 헤치며 직접 차를 운전해서 사진을 찍고, 날도 더우니 삼계탕으로 외식을 하고 그리고 식당에서 리뷰 이벤트로 아이스크림까지 배불리 얻어먹은 뒤 행복한 기분으로 하루를 장식했다.


사진관에 들어설 때, 음식점에서 나올 때 모든 순간에 아이의 손은 내 손을 붙잡고 있었고, 날은 더웠지만 내 손에는 따스함이 전해져 왔다. 내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면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을 따스한 순간들. 지난해만 해도 회사로 바삐 돌아가느라 느껴보지 못했던 소중한 추억들.


사는 데는 돈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돈은 회사에서의 승진과 같은 성공과 비례하여 상승한다. 이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은 없다. 기회가 된다면 성공을 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는 돈이 무척이나 필요하기 때문에, 하지만 승진을 잠시 미뤄둔 지금에야 알 수 있는 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도 존재한다는 것.


다소 인위적인 감성으로 그득한 드라마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사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도 있어!', 사실 굉장히 낯간지러워 개인적으로는 딱히 마음에 들어 하는 표현은 아니라 오히려 거북스러운 표현에 가까웠다. 그런데 느껴보니 알겠더라. 정말 바꾸지 못할 순간이 있다는 거.


우리 아이가 저렇게 자라난 키를 조금이라도 되돌려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해도 그게 가능할까? 조금 있으면 아이는 사춘기가 와 아빠랑은 팬티도 같이 빨지 말라는 때가 올 터다. 그때까지가 내가 손을 맘껏 잡아줄 수 있을 때일 텐데 이때를 지나면 다시 그런 순간이 돌아올까?


휴직을 했기에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날 때 감당할 수 있도록 자원이 되어줄 돈! 그 돈을 벌어올 수 있는 회사로의 복직이 안정된 대기업이라는 사실도 감사하다.

그렇기 마음대로 휴직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지금도 땀 흘리고 있는 모든 부모님들에게도 마음이나마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 싶다.


"우리 모두 잘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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