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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닭 Dec 18. 2022

크리스마스와 선물

이제는, 기대하게 되는

크리스마스


  대설주의보 경보 문자에 휴대폰이 진동한다. 일을 하느라 컴퓨터를 보던 눈을 돌려 창 밖을 본다. 흰 눈이 펑펑 내린다. 나에게는 매우 낯설고도 설레는 일이다. 남쪽에서 오래 지낸 탓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는 건 굉장히 희귀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퇴근길이 색다르게 변했다. 모든 게 흰색으로 덧칠되어 구분할 수 없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눈이 너무 신기하다. 눈을 더 느끼고 싶어 일부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로 돌아간다. 15분이면 끝날 길이 30분까지 길어진다. 음악 어플을 켜 노래를 으려다, 신곡도 아닌데 차트를 역주행한 노래들을 발견한다.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 You>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Santa Tell Me>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징조가 한가득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괜히 설레고 기대된다!



크리스마스의 선물



  사실 작년까지의 나는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모든 기념일은 쉬는 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기념일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선물' 때문이다. 어릴 적의 나는, 겨우 나의 생일파티 때문에 부모님께서 힘들게 버신 돈을 낭비하시길 원치 않았다. 그저 가족과 함께 생일 케이크 하나와 짧은 축하 노래면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커가면서도 선물을 따로 주고받는다는 게 익숙지 않았다. 나에게 와닿지 않는 선물을 받았을 때,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는 만큼 기뻐할 수 없어서 불편했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받은 금액 이상으로 선물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 편히 선물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 중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텀블러다.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나온 별다방 텀블러였는데, 나는 이 선물을 받고 당황했다. 나는 텀블러가 필요 없었고, 텀블러를 선물한 이유를 물어도 '그냥 예뻐서'란 답변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나는 무슨 선물로 돌려줘야 하나 고민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물을 받는 주제에 참으로 까탈스러웠다.



사랑의 언어 - 선물



  개리 채프먼 박사의 저서, 『5가지 사랑의 언어』 에서는 사랑을 주고받는 5가지의 언어를 소개한다. 사람들이 어떤 걸 주고받았을 때 사랑이라고 느끼는지를 다섯 가지로 구분한 것이다. 서로의 사랑의 언어가 다르면, 상대가 보낸 사랑의 표현을 '사랑'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오해가 생기게 된다.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으로 나뉘며, 독서모임에서 테스트지를 통해 나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검사해볼 수 있었다. 나는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높게 나왔고, '선물'이 최하위였다.

  당연한 결과구나 싶었지만,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특히 하나의 질문이 나를 흔들었다. "선물 점수가 낮은 이유는 혹시 선물에 크게 감동받은 경험이 없으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선물을 생각하면 실망과 부담이 먼저 떠올라서 맘 편히 받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생각이 더 나아갔다. 나는 왜 선물을 부담스러워할까? 단순히 부모님에 대한 걱정을 이유로 찾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어린 내가 집안 경제 사정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집안이 힘들진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의 마음속에 있었다.



선물은 죄가 없다



  문제는 자존감의 결여에서 시작됐다. 내 선물이 감동적이지 않을까 봐, 내가 제대로 기대에 호응하지 못할까 고민하는 것 모두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중심을 세우지 못하니 남의 반응에만 매달렸다. 긍정적인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물의 반응이 좋지 않았을 때, '앗 이 사람이 원하는 건 뭐였을까? 반응이 좋지 않아 아쉽네'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받은 물건이 크게 와닿지 않아도 '딱히 끌리는 선물은 아니지만 챙겨주는 마음이 고맙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선물의 의미를 너무 가볍게만 생각했단 걸 깨달았다. 결국 선물이란 것도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주는 것인데, 나는 상대의 마음을 읽기보다 부담감에 먼저 지배당했다. 나에게 별다방 텀블러를 준 사람도, 선물의 형태야 어떻게 되었든 나를 생각해서 챙겨줬을 텐데, 마음을 더 헤아리지 못하고 투정만 부린 셈이다. 단순히 물질의 가치를 떠나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매개체는 모두 선물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에게 줄 사람이 없고,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기 힘들다면, 내가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 없이 소비한 적은 있어도, '나를 위한 선물'이란 생각으로 나를 위로한 경험은 없었다.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선물이 뭔지 안 후, '나를 위한 선물'에 감동해보는 경험이 먼저 필요했다.



다시 돌아온 크리스마스



  불필요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나는 온전히 기념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라는 시간 자체를 '나를 위한 선물'로 설정했다. 어떠한 우연한 만남이든, 재미든 모두 담을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일정을 모두 비워두었다. 어린 왕자가 상자 속의 양을 상상하며 기뻐했듯이, 나는 비어 있는 크리스마스 일정만 봐도 즐거워졌다. 선물이 오기 전의 '기대감' 또한 선물이 될 수 있단 걸 처음 느꼈다. 특별한 약속이 잡히면 더욱 좋겠지만, 약속이 잡히지 않아도 걱정은 없다. 혼자서도 재밌게 노는 방법을 알고 있고, 그저 집에서 푹 쉬는 것만으로도 좋으리라. 아니면 고맙게도 항상 자리에 있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을 보러 가야겠다. 언제든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건 선물 같은 경험이다. 내가 찾아가는 것이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선물로 느껴졌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는 마음 따뜻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전까지는 달콤한 기대감을 한껏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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