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대한 반발심리
정신없는 일과 속, 어느새 수신된 메일을 빠르게 훑는다. 몇 문장만 읽고, 관련된 메일과 그렇지 않은 것을 휙휙 분류한다. 답변이 필요한 메일을 찾아 회신한다. 타닥타닥.
안녕하세요.
(중략)
아무쪼록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로 보내려다 멈칫한다. 갑자기 문장에서 어색함을 느낀다. 건강을 조심하라는 게 맞는 표현이던가?
보통 '~조심'이라는 말이 붙는 말들은, 앞의 대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경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 조심'은 개가 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차 조심'은 차가 갑자기 튀어나오니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건강 조심'은 '건강'이 나에게 오지 않도록 멀리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건강 조심'이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일까 싶어 국립국어원의 답변을 찾아보니,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조심'의 사용과 다르게, 우리는 보통 상대가 건강하길 바랄 때 '건강 조심'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쩌다가 '건강'과 '조심'이 붙어서 사용되게 된 걸까? 나름의 상상을 펼쳐본다.
먼저 '건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말에서 상대의 건강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는 걸 느끼곤 한다. 특히 인사말이 흔한 예다. '안녕하세요?'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안녕하다'의 활용형으로, 상대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또한 '밥은 먹었어?'도 상대가 허기를 느끼지는 않는지,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실제로 인사말을 사용할 때 위와 같은 의미를 꼭 담아서 표현하지는 않는다. 다만 건강을 확인하는 질문이 자연스러운 인사말이 되었다는 점이, 상대가 건강하길 바라는 염원이 느껴져 감동적이다.
다음으로 '조심'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조심'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다가올 화를 '예방'하는 것이고, 둘째는 '조심해!'처럼 급하게 주의를 줄 때다. 첫 번째 의견에 견주어 생각해 보면, '건강 조심'보다는 '건강을 해치는 것들을 조심'이라는 표현이 의미상으로 더 맞아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의견도 고려해 보자. 좋아하는 상대가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기 때문에, 어서 건강을 챙기라고 주의를 주고 싶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두 가지 '조심'의 활용을 고려할 때, '건강을 해치는 것들을 조심'을 빠르게 말해서 '건강 조심'이라고 말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더욱 간절하고 다급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에 더 잘 와닿는다.
'건강 조심'의 의미는 그럭저럭 이해가 되었으나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왜 이렇게까지 상대의 건강에 집착하게 된 걸까?
속절없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
난 그렇게 뒷모습 바라봤네
고요하게 내리던 소복눈에도
눈물 흘린 날들이었기에
많은 약속들이 그리도 무거웠나요
그대와도 작별을 건넬 줄이야
- 신지훈, 「시가 될 이야기」, 2021
아이들은 보호자에게 많은 것들을 기대한다. 비를 막아주는 지붕이 되어주길,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어주길, 투정을 들어주는 보금자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등, 바라는 형태는 다양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커가면서, 더 이상 보호자들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보호자들은 서툴거나 미숙한 면이 많으며, 때론 자신보다 아이 같은 면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보호자들의 늘어나는 주름과 흰머리, 떨리는 손, 돋보기안경, 낯선 약봉지, 잦은 병원 방문 등을 보면서 아이였던 자식들은 속절없이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있던 가족의 모습과, 눈앞에 보이는 늙고 병들어가는 가족의 모습은 자식들에게 큰 괴리감을 준다. 이러한 괴리감으로 인한 고통은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인간관계에서도 접하게 된다. 영원하길 바랐던 것이, 사실은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아프도록 시리다.
특히 나에겐 정든 사람과의 이별이 눈물 버튼이다. 가까운 사람이 내 곁을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떠난 빈자리가 주는 상실감, 남아 있는 내가 짊어져야 할 부담감 등이 한 번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 심리로 상대의 건강을 기원하게 된다.
상대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건강 조심하세요'가 사용되기보다는, 인터넷에서 끝인사말을 찾아 복사 붙여 넣기를 하듯 형식적으로 '건강 조심하세요'가 더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적당한 인사말로 '건강 조심하세요'를 쓰다가 아차 한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상대가 잘되길 바라는 진심을 담아 적는다. 건강 조심하기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길, 아프지 않고 행복하기를.
상대가 느끼지 못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