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고서점에서 1913년 오오가키 다케오(大垣丈夫, 대원장부)가 발행한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경성일보사 인쇄부)를 한 권 구입하였는데 책 제목에 있는 ‘신사(紳士)’는 각 지역의 유력인사로서 여론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인명사전으로 이 책에는 전국 8도의 각 지방 유지들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여러 자료를 찾던 중 『삼다일보』의 글을 발견하게 되어 이 책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통치에 유용하게 쓰일 재목, 누가 있을까?”
“(전략) 지난주에 우연히 그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입수하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1913년에 발행된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日韓印刷株式會社)이다.
편찬자인 오오가키 다케오(大垣丈夫)는 1899년 도쿄에서 “사쿠라신문(さくら新聞)”을 창간했던 저널리스트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의 고문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합병된 조선의 왕족과 귀족 등 지도층 인사 1만여 명의 신상 자료를 모아 편찬한 게 바로 이 1364쪽짜리 책이다.
그의 서문에서 인용한 말 “많은 목재를 모아야 집 짓는 데 있어 각각의 쓰임새를 알게 된다(聚衆材然後知作室之用)”(程頤)에 편찬 목적이 잘 나타나 있다. 바로 합병된 조선의 인물 가운데 일본의 조선 통치에 유용하게 쓰일 재목들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수록된 인물은 왕족 5명과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 61명을 필두로 156개 성씨별로 전국에서 여론주도층에 해당하는 인사들을 포함하고, 마지막으로 효자, 열녀, 부인(夫人)부를 두어 함께 기록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친일인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항일인사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이 책 속 인물들의 성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판권 부분에 명시된 한 권에 3원씩, 사진을 수록하는 경우 2원을 추가하고 송료 18전을 별도로 받았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증명되는 바이다.
당시 설렁탕 한 그릇에 5전이라 하니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50~9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을 내면서까지 이 대동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친일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일제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진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다 보니 발간 후 한동안 시끄러웠고 지금도 시끄러운 일제의 식민지배에 협력했던 인사 4,389명의 친일 행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전3권, 민족문제연구소, 2009)이 떠오른다.
100여 년 전 자진해서 유료(有料)로 이 대동보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과 친절하게도 무료(無料)로 수록해 준 10년 전 인명사전 속의 인물들이 당연하게도 다수 겹친다. 발간 당시 이 책에 수록된 인사들에게는 가문의 영광이었을 테니 돈까지 냈겠지만 이젠 부끄러운 것임을 그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1만여 권은 발행되었을 이 책이 지금은 아주 보기 드문 책이 되었으니 말이다.” (출처: 『삼다일보』, 2019.01.18.)
필자는 이 책을 구입한 후 곧바로 동해시의 신사(紳士)를 찾아보니 대략 98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 98명의 신사 중에는 우리 지역에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친일인사가 아닌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으며 이들이 모두 일제에 순응하거나 협력적이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향후 이 자료를 인용하여 책이나 논문을 쓸 때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책에 언급된 동해시(옛 삼척군 견박면, 도하면, 도상면과 옛 강릉군 망상면)의 신사(紳士)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 동해시의 신사(紳士)
1. 신사(紳士)
이창규(李昌奎), 이순우(李淳宇), 이은흥(李殷興),
이원하(李元夏), 김원묵(金元黙), 김진봉(金振鳳),
김형식(金炯埴), 김병삼(金秉三), 김남극(金南極),
김연곡(金演斛), 김연재(金演載), 김국경(金國卿),
김진탁(金振鐸), 김경달(金卿達), 김익경(金翼卿),
김경환(金卿煥), 김의경(金義卿), 김연벽(金演璧),
김연범(金演範), 김원보(金元寶), 김태경(金兌卿),
김경석(金卿錫), 김연태(金演台), 김동찬(金東燦),
김원익(金源益), 김치영(金致榮), 김한영(金漢榮),
김택영(金澤榮), 김형오(金炯五), 김주수(金周壽),
김원도(金源道), 김원각(金源珏), 김태경(金台卿),
김연생(金演生), 김진구(金鎭九), 김진형(金鎭衡),
김진우(金鎭宇), 김기영(金麒榮), 김홍연(金弘淵),
김원달(金源達), 김원대(金源大), 김지영(金芝榮),
김한기(金漢起), 김남형(金南衡), 김락영(金洛榮),
김연복(金演福), 박문익(朴文益), 박병조(朴秉肇),
박영환(朴榮煥), 박명근(朴命根), 박봉래(朴鳳來),
박기동(朴炁東), 박명천(朴命天), 박계조(朴烓肇),
정일화(鄭日和), 정창화(鄭昌和), 정연택(鄭然澤),
정석영(鄭晳永), 정혁교(鄭赫敎), 정찬영(鄭粲永),
정건화(鄭建和), 최병문(崔炳文), 최동두(崔東斗),
최종희(崔鍾熙), 최병태(崔炳台), 최서집(崔瑞集),
최덕규(崔悳圭), 최상하(崔相夏), 최창중(崔昌重),
최동명(崔東明), 최진벽(崔鎭璧), 심진하(沈鎭河),
심형서(沈炯書), 윤탁성(尹鐸星), 홍갑섭(洪甲燮),
홍기섭(洪驥燮), 홍극선(洪極善), 홍순석(洪淳奭),
홍재문(洪在文), 홍백현(洪百鉉), 홍희섭(洪禧燮),
홍재준(洪在俊), 홍순기(洪淳璣), 홍재신(洪在信),
신동균(申東均), 안재호(安在鎬), 장영두(張永斗),
장병칠(張秉七), 장석홍(張錫鴻), 임형기(林熒琦),
백남식(白南湜), 채주호(蔡周鎬), 함종대(咸鍾大),
전형국(全烱國), 전동익(全東翊), 전동윤(全東潤).
(96명)
2. 효자
고봉익(高鳳翼), 함덕칠(咸德七). (2명)
註: 위의 동해시 신사 98명은 ‘경성일보사 인쇄부’ 판본에 실려 있는 인물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