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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l 05. 2023

막 걸음마 뗀 기분이란

그리움으로 마무리되는 것



첫 방문하는 나라, 처음 발 닿는 도시.


이번 여행은 처음이라는 수식어로 넉넉했다. 지루한 일상의 관성에서 벗어나 혼돈한 사유의 질서를 찾아갔다.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아 내 것이 아닌 줄 알았던 마음을 꺼내오는 과정이기도 했다. 매 순간 와락 벅차고 가쁜 장면 안에 있었다. 가둬둔 마음과 감각을 내놓고 바쁘게 일했다.



감정을 고양시키는 음악 공연이 그랬고,

삶이 곧 예술인 사람들을 따라 감응할 때 그랬고,

105분 동안 한국에 와있었던 영화 관람이 그랬고,

떼 지은 구름의 표정 변화를 살피는 일이 그랬고,

머뭇거린 오토바이 탑승이 그랬고,

고소한 오트라테에 복받치는 공기가 그랬고,

레트로 무드가 잔뜩 묻어있는 장소 방문이 그랬고,

줄지은 인파 속 나의 취향을 되찾는 일이 그랬고,

미쉐린의 여러 입맛을 천착해 보는 시간이 그랬다.



시작 전 괜히 했나? 한 달이라니 미쳤어. 왜 그런 거야? 지금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의 감옥은 티켓팅 후에도 이어졌다. 여행이 끝난 지금은 역시 하길 잘했어. 또 해야지. 계속해야지, 하는 확신만 따라붙는다.



겪어온 여정 대부분이 비슷한 모양이었다. 확신은커녕 저지른 이 일을 나중에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한 의구를 양어깨에 지고 간신히 발을 뗐다. 물음표 앞에서 시작한 여행은 알을 깨고 갓 세상에 나온 아기새 판박이다. 겁나지만 새롭고 신비로운 것 투성인 프레임 속에 있다. 손가락 끝으로 감각해 보고 무해하다는 사실을 체화하고 나서야 두려움 영역에 기대감이 들어선다. 기대감은 마음의 울림을 주고 재미, 환희, 행복으로 진화한다. 불안정속 안정을 품는 밀도 높은 여유는 덤이다.



유난히 처음 해보는 경험이 많은 여행.

용감하게 나를 던져본 여행.

본래 내 것이었던 것을 다시 되찾아온 여행.

너에서 나로 돌아오게 해 준 여행.

다른 시각으로, 다른 지식으로, 다른 말로도 충분하다는 걸 감각하게 해 준 여행.

아직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는 걸 자각한 여행.

세상의 넓음과 나의 좁음을 알게 해 준 여행.

나를 알고 너를 공명하게 된 여행.

이 많은 까닭으로 오래 각인될 여행.



세상 어떤 여행에도 후회는 없다. 기분 좋은 그리움만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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