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일을 그만둔 다음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100일 동안 버텨냈다는 성취감 덕분에 기절하듯 편히 잤다. 더 이상 새벽 시간에 자는 사람 깨우며 출근하라는 전화도 오지 않는다. 퇴근하는 택시 안에서 출근을 위한 유턴도 없다. 더 이상 무대 바닥에 묻은 피를 닦을 일도 없다. 누군가 먹다 남긴 김밥을 입에 쑤셔 넣을 필요도 없다.
꿈속에서는 이미 나는 세상을 구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려댄다. 곤히 자고 있는데 누군가 봤더니 지난 100일 동안 나와 함께 일하고 도와줬던 8개월이다. 분명 시답잖게 형 그만둬서 서운하다는 등의 말을 할 것이 분명하다. 미안하지만 나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지금의 나는 노예 신분을 벗어나 너무나 상쾌할 지경이었는데 너의 전화는 그런 나의 상쾌함을 깨뜨렸다. 전화를 받으며 방금까지 곤히 자고 있었는데 네놈 때문에 잠에서 깼다는 뉘앙스를 "여보세요" 한마디에 함축하여 저기압으로 뱉어낸다. 나의 의도를 파악한 8개월은 자고 있는데 깨워서 미안하다며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형 자는데 미안한데 단톡방에서 나가주세요."
이 회사는 마지막까지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보나 마나 부장이 시킨 거다. 전화 끊자마자 원하는 대로 바로 단톡방에서 퇴장해 준다. 아무 미련 없다. 내친김에 밴드도 탈퇴하려 보니 밴드는 이미 강퇴되어 있다. 100일이라는 기간이 짧으면 짧은 기간이지만 그토록 헌신적으로 일했는데 조금은 서운하다. 아니, 많이 서운하다. 내게 남은 거라고는 엉망이 된 몸뚱이뿐이다.
진짜 숨 쉬는 거 빼고 다 아프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물리치료를 받을 겸 동네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이번에 신상으로 체외 충격 뭐 물리치료기가 신상으로 들어왔다며 한번 할 때마다 8만 원짜리 물리치료를 권유했다. 금액이 말도 안 되게 비싸지만 의사가 허리 엑스레이 사진까지 보여주며 디스크 소견이 보인다니 돈이 문제가 아니다. 당장 치료를 시작한다.
의사가 아니라 날강도다.
체외 충격 뭐시기 물리치료기는 굉장했다. 기계가 내 살갗에 닿을 때마다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짜 기계 이름 그대로 뼈 안쪽에서 충격파를 터뜨리는 느낌이다. 1초도 참을 수가 없다. 물리치료사의 손을 붙잡으며 살살해달라 애원했다. 너무 아프다. 물리치료사는 노가다는 원래 번 만큼 병원비로 쓴다고 한다. 근데 나는 많이 벌지도 못했다. 그렇게 일하고 월급 200이 전부였다.
일주일 후, 마지막 달 택시비 정산을 받으러 회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금액이 적으면 그냥 지나가겠지만 택시비가 2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라 지나칠 수가 없었다. 늦게 제출하면 늦었다는 핑계로 정산 안 해줄지도 모른다는 불신까지 있다. 회사 사무실에는 실장님이 계셨다. 방송국에서의 100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 소식을 들어서인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웠다. 회식 끝나고 술에 취한 채 숙소로 들어와 자고 있던 나의 볼을 꼬집으며 복덩이라 말하면서 잠을 깨우던 게 불과 2주 전이다.
참 씁쓸한 인연이다.
다음으로는 졸업장 받으러 학교로 찾아갔다. 졸업논문 제출하고 곧장 방송국 노가다를 시작했기에 졸업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교가 된 학교를 둘러봤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게 변해있다. 4개월 만에 만난 교수님도 전과는 다르다. 나는 이제 졸업생이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졸업장을 내려본다. 이 종이쪼가리 하나 얻겠다고 그 오랜 기간을 보냈다는 게 참으로 허무하다. 대학 안 나오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부모의 설득에 억지로 졸업을 하긴 했지만 내가 뭐를 했나 싶다. 왜 이리 이 나라는 포장에 열을 올리는 건지...
중요한 건 올곧은 마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