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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te greentea Sep 21. 2023

세면대 바닥의 깨진 타일 조각.

Composition no. IV,  피에트 몬드리안, 1914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화가로 어린 초등학생에게도 익숙하다. 그의 그림은 검은색 선이 네모 반듯 구획을 긋고 그 안에 빨강, 파랑, 노랑의 색깔이 얌전히 자리 잡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엔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 왜 이런 그림이 교과서와 미술관에?'라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많은 추상화 작품들이 그렇듯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 작가의 상념과 망설임이 있고 이윽고 작가의 집념이 응축되어 탄생하니 내가 발로 그린 그림과는 차원이 다르다.

 'Composition no. IV' 작품은 몬드리안의 1914년 작품으로 일명 '쨍한' 색상의  대표작이 탄생하기 직전 시기의 작품이다. 흐릿한 회색이 검은 경계의 곳곳을 뭉개고 있다. 제각각 모양의 사각형은 규칙이 없는 듯 배열되어 있는 것 같지만 경계를 맞댄 이웃을 존중하듯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희미한 분홍, 파랑, 갈색, 회색 등이 어우러진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그 집'이 생각난다. 욕실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웠던 던 '그 집'의 세면 시설. 어린 시절 엄마가 머리를 감겨주면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세면 바닥을 바라보았는데, 그때 얼기설기 시멘트로 이어 붙어 있던 타일 조각의 모습이 이 작품 같았다.

 그때는 아마도 부모님들에게도 힘들었던 신혼 초반이었던 것 같다. 맞벌이를 하며 딸을 도저히 케어할 수 없는 상황에 엄마는 지방 할머니댁에 나를 맡겼다. 교직에 있던 엄마는 방학이 되면 나를 서울로 데리고 와서 함께 지냈다. 여러 번 이사했던 부모님의 집들이 생각이 나지만, '그 집'에 대해 강렬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성장한 후 돌아보았을 때의 가슴 쓰림과 당혹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집'에 잠시 부모님과 지냈던 시기는 초등 입학 전이었던 것 같다. 부천 어디 매쯤 있던 공동 주택이었는데 한 층 복도에 5~6 가구가 있었던 것 같다. 가운데에는 오르내리는 계단과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유리가 위아래로 끼어진 새시 재질의 현관문을 열면 왼쪽에는 씻을 수 있는 간단한 세면 시설이 있고 오른쪽에 부엌 싱크대가 있었던 것 같다. 바닥은 시멘트로 짙은 회색빛이었다. 두 공간의 구분 짓는 벽 따윈 없다. 뻥 뚫린 공간에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그저 들어가 앉아 있었을 뿐. 이 공간을 지나 두 개의 작은 계단을 올라서면 커다란 방이 하나 나왔다. 방은 달랑 하나. 그 방에는 퀸사이즈 침대와 책상, 옷장 등이 있던 것 같다. 밤에 잘 때면 창문 밖으로 네온사인 불빛과 밤거리의 소음이 올라왔고, 예민했던 엄마는 늘 안대를 끼고 잤던 것 같다.

방에서 엄마는 나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고 커다란 전축에서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내 이름이 쓰여 있는 테이프를 하나 틀어주었는데 내가 아기일 때 옹알이를 하는 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엄마는 내가 곁에 없는 시간에 이 테이프를 듣고 있는 건가 싶어 괜히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 집' 옆집에는 엄마와 그나마 안면을 트고 지내던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주머니는 나보다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엄마는 나를 그 집에 종종 맡기곤 했다. 아주머니는 키가 크고 상냥한 미인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난생처음 '프랜치토스트'라는 것을 먹어 보았다. 보드라운 계란물 입힌 식빵 위에 새하얀 설탕!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은빛 포일에 쌓인 촉촉했던 빵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먹을 때마다 옆집 아주머니가 생각이 난다. 아주머니는 우리보다  일찍 이사를 나갔고 엄마에게 아파트 청약 정보를 건네주어 엄마도 곧 이사를 나갔다고 들었다. 엄마는 직장 동료 이외에는 사람을 잘 사귀는 편이 아닌데, '프랜치토스트' 아주머니는 종종 회상하며 다시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엄마 어려웠던 시절 너무 고마웠던 사람이라고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은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엄마를 보면 한편으로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가슴 짠할 때가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던가. 엄마 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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