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도전 중입니다_일기 쓰기]
14년째 일기를 쓰고 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남길 때가 많지만 딱히 쓸 말이 없으면 '오늘 무엇을 했고, 어디를 갔고, 뭘 먹었고' 등 간단한 게 작성할 때도 많다. 확실한 건, 휴대폰 카메라로 찍고 남겼을 때보다 순간의 내 감정, 내 모습에 대한 기억이 더 잘난다. '아 그때 이거 먹으면서 이랬는데' '먹다가 누구한테 연락 와서 급하게 먹느라 맛을 제대로 못 느꼈는데' 등 일정만 남긴 것뿐이지만 당시 상황이 꽤나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이게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다.
#수학 망했음ㅠ 이건 내 점수가 아니다. 그래도 사회, 미술 둘 다 100(점)!! 야호~! 아마 이번에는 수학 때문에 평균이 뚝 뚝 떨어질 것이다. 근데 애들 대부분 수학 망했다.
(다음 날) 영어 100, 가정 92, 체육 100!! 수학에 설움을 물리쳤다. 내일 나머지 암기과목 잘 보면 그래도 중간고사 때보다 (점수를) 올릴 것이라 생각이 든다.
- 2009년 7월 어느 날
#사실 오늘은 광진정보도서관에 가기로 했는데 엄마가 아파서 가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Westlife 노래'와 '태연의 친한 친구'(라디오) 들으며 일기를 쓰고 있다. Westlife 노래들은 전부 다 감미롭고 마음에 와닿는다. 동방신기 노래처럼 말이다.
- 2010년 4월 어느 날
#정말 제대로 취했다. 속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 2015년 5월 어느 날
#안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두컴컴하고 축축하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나에게는 너무 불편한 존재다. 하지만 오늘 디뮤지엄 전시에서 느낀 안개는 예전과 다른 느낌이었다. 어두컴컴했지만 분위기가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고 축축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개의 습기와 살이 맞닿을 때 시원했다. 도리어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숨 가쁘게 걸어가던 나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었다. 그토록 부정의 이미지가 강했던 안개가 오늘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 2018년 7월 어느 날
#성당 다녀와서 햄버거 먹고 자고 영화 보고 오래간만에 여유를 즐겼다. 오늘 '세상을 바꾼 변호사'라는 영화를 봤다. 나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19년 7월 어느 날
#오늘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 문구! 꼭 누군가의 칭찬과 인정을 바라는 게 아니더라도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집착과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만하면 잘했지, 그래 그 정도면 충분했어!'라고 웃어넘길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이 필요하다.
- 2023년 2월 어느 날
일기를 썼던 당시에는 힘든 일이 생기면 버틸 수 없겠다고 느꼈는데, 결국 시간은 흐른다. 그 시기를 보내고 난 지금도 숨 쉬고 세상을 바라보며 매일 도전에 '성공 도장'을 찍고 있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 우리는 '숨 쉬는 도전'을 하고 있다.
매일을 '숨 쉬면서 하루를 잘 보냈다는 도전'에 성공한다. 이에 이런 성공 과정이 글로 남겨지는 건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떠한 상황도 잘 보냈다고' '그때 복잡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물 흐르듯 괜찮아진다고' 미래의 나에게 '**아 너 너무 잘 살았다'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일기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건 작지만 강한 도전이다. 한 글자가 나의 살아온 과정을 먼 훗날에도 마치 어제 일처럼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그런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