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이었다. 치매 환자의 상담을 위해 이 널싱홈에 왔었다. 복도를 지날 때 줄지은 방들 안쪽에서 언어도 아니고 외침도 아닌 소리가 가끔 새어나왔다. 방과 휴게실을 둘러보아도 그녀는 없었다. 한참의 숨바꼭질 뒤에 그녀를 찾아냈다. 점심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그녀는 벌써 식당에 와 있었다. 의사와 나는 잠을 깨워보려 애를 썼지만,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깊은 잠 속에 빠져있었다. 은발의 의사는 상담 일자를 미루어야겠다고 미안해했다.
“오늘은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려나?”
궁금한 마음으로 긴 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휠체어가 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맞은편 벽에 눈을 고정하고 앉아있다. 아무것도 없는 흰 벽에서 그녀는 내가 볼 수 없는 무엇을 보는 걸까? 질문할 때마다 바로 옆에 앉은 내게 잠깐씩 눈길을 줄 뿐, 살아온 생애의 어느 지점엔가, 아니면 상상 속의 어느 순간엔가 그녀의 마음이 멎어 있다. 의사의 질문에 귀찮은 듯, 한 박자씩 답이 늦어진다. 생각의 긴 터널 속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사람들이 친절한가? 이곳에 있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지는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건강 상태에 대한 자세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자 점점 안색이 일그러진다. 갈수록 대답이 느려지더니. 불쑥 퉁명스런 목소리로, "유리병 안에 가뒀어"한다. 의외의 말에 깜짝 놀라, "누구를 가두었어요?"하고 되물었더니, "나를 유리병 안에다 가뒀다구!" 하고 힘주어 말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왜요?, 누가요? "하고 다그쳐 물었건만 질문에 합당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의사는 이런 표현을 하는 건 처음이라며 놀라는 표정으로 부지런히 펜을 움직인다.
아무도 못 꺼내. 못 꺼내 준다구! 의사는 어떻게 그녀의 생각을 끄집어내야 하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 손자가 꺼내줘. 그녀가 불쑥 해결책을 말한다. 어제도 왔다 갔어. 우리 손자가 '함므니!' 하고 부르면, 얼른 나와! 소년처럼 씩씩해진 목소리. 핏기없는 얼굴에 살짝 스쳐 지나는 생기.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단호하다. 혼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도 손자라는 존재는 비 갠 맑은 하늘처럼 선명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모든 기억을 잃어 가도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끝까지 남아, 나 아직 살아있다고 외치게 하는 것.
지난여름 마지막으로 둘째 이모를 뵈었다. 어느 날은 내 이름을 부르시다가 다음 날은 누구냐고 물으셨다. 이모가 끝까지 알아보는 분은 큰 이모였다. 언제나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품으시는 분. 이모가 ‘언니!’ 하고 큰이모를 부를 때면 그 음성 속에 외로운 어린 소녀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이 양로원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으나 가족들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 모시고 싶어 이곳을 선택한 듯하다. 직원 중에 한국인이 한 분 있지만, 그녀를 전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라 한다. 자신을 돕기 위해 많은 사람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곳에서 그녀는 혼자 갇혀 있는 사람처럼 숨이 막히는가 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없는 그녀는 유리병 속으로 아득히 멀리 있는 것이다.
의사는 한국인들이 있는 양로원으로 그녀의 거처를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 할머니의 아들과 상의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내 의견을 묻는다. 상황이 낯설다. 통역은 그림자 같은 존재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은 금지 사항이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픈 사람. 이보다 더 답답한 상황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은 어느새 제 자리를 벗어나 환자의 가족이 되어 있곤 했다. 그런 나 자신을 책망했건만 오늘은 의사가 도리어 나의 자리 이탈을 돕고 있다. 유리병 속의 그녀가 마음을 대신 말해주길 허락한 거라 여긴다.
휠체어가 바퀴를 돌리며 방을 빠져나가고 나는 반대쪽 긴 복도로 나선다. 도는 바퀴를 따라 그녀는 다시 생각의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리라. 우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는데 그녀의 휠체어가 자꾸만 나를 따라온다. 그녀에게도 검은 머리 휘날리며 뾰족구두를 신은 발을 또박또박 내딛던 젊은 날이 있었으리라. 누군들 낯선 곳에서 낯선 손의 도움으로 마지막 숨을 쉬고 싶은 사람이 있으랴. 다가올 일에 대하여 누가 감히 장담하랴.
어쩌면 유리병은 그녀를 둘러싼 이 양로원의 환경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육체, 혼동되는 정신. 잃어가는 인간이 지녀야 할 품위. 그녀를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잃어가는 자기 자신은 아니었을까? 남아있는 그녀의 시간은 어떻게 채워질까?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나오는 기도. 뚜벅뚜벅 흰 벽에 부딪히는 내 구두 소리가 북처럼 마음을 두드리고 저만치 복도 끝에 흐물흐물 시계 하나가 꼬리를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