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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by 권석민


얼마 전 대학원 과제를 마감 직전에 생성형 AI로 빠르게 완성했다. 시간에 쫓긴 상황에서 AI에게 자료를 던져주고 몇 번 질문을 주고받으니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다. 짧은 시간에 높은 수준의 과제를 완성했다는 뿌듯함에 마치 내가 직접 작성한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발표 당일,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내가 소화하지 못한 정보로 가득한 자료를 들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당황스러웠다. 발표는 엉망이 되었고, 자료 곳곳에서 오류가 발견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AI와 협업한 게 아니라 단순히 AI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AI를 마치 인간처럼 대한다.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생각하지 않는다」의 저자 김송규 작가는 “인공지능이 천하제일검이 아니다”라고 경고한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처럼 인류 문명을 진화시키는 강력한 도구일 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범용 기술이라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실제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패턴을 학습해 다음에 올 단어를 예측할 뿐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하지도 못한다. 그럴듯한 문장을 만드는 데는 탁월하지만, 그 내용이 사실인지는 보장하지 못한다. 사실과 다른 정보가 섞여 있거나, 맥락에 맞지 않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오류들이 그럴듯한 문체 속에 교묘하게 숨어있다는 점이다. 무턱대고 생성형 AI가 제시한 결과물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낭패를 보게 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성형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듀얼 브레인」의 저자 이선 몰릭은 “모든 작업에 AI를 초대하라.”라고 말한다. 아이디어 도출, 기획, 문서작성까지 모든 순간에 AI와 함께 일하라고 말한다.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사고하고 협업하라는 뜻이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성능 좋은 AI를 사용한 사람이 오히려 더 낮은 성과를 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비판 없이 수용하면 사고력과 비판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이선 몰릭은 “AI와 함께하되, 반드시 인간이 개입하라.”라고 강조한다. 생성형 AI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그럴듯한 말’을 예측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력’이다. 「질문의 격」의 저자 유선경 작가는 “인공지능이 내놓는 대답이 올바른지 판단할 수 있느냐가 인류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말한다. 생성형 AI는 프롬프트를 작성 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작가는 “옳은 방식으로 질문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성형 AI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맥락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역할을 명확히 하면 AI가 생각하는 관점, 어투, 표현 방식이 달라진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상황인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줘야 AI가 맥락에 맞는 답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20년 경력의 교육훈련담당관입니다. 1년 차 신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조직 적응 교육을 구성해 주세요. 목적은 조직 이해, 역할 인식, 공직가치 내면화입니다.”처럼 말이다. AI에게 구체적인 상황과 목적을 알려줘야 맥락에 맞는 답을 구성한다.


"만약 내게 세상을 구할 1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을 문제 정의에 쓰고 5분을 해결책 찾기에 쓰겠다"는 말이 있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 없이는, 아무리 빠르고 그럴듯한 답을 얻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용주 기획관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만 번 연습한다고 해서 점프가 쉬운 게 아니에요. 그저 뛰는 순간, 나를 믿는 것뿐이죠. '이 점프를 위해 노력했던 내 수많은 시간이 나를 받쳐줄 거야'하고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 그 내용을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건 내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다.


AI 시대의 진짜 역량은 AI를 잘 활용하는 기술이 아니다. AI가 만든 그럴듯한 결과물에 속지 않고 그 안의 오류와 빈틈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AI와 함께 일하되, 최종 판단은 언제나 내가 하는 것이다.


AI를 사용하며 경험한 교훈은 명확하다. 중요한 건 기술이 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술을 통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느냐이다. AI에 의지해 사고력을 저하시키지 말고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사고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데 시간을 투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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