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幾何)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학창시절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기하’란 단어는 그 어감만큼이나 기괴해 보였고 그 의미 또한 도통 종잡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이것이 도형에 관한 학문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도 이 단어는 마치 까마득한 우주 저편에 있지만 볼 수 없고 막연히 상상만 할 수 있는 블랙홀과 같은 느낌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기하'란 단어에 대한 호기심은 잊고 있었다. 근데 개구장이 두 아이들이 커가면서, 수학은 그래도 내가 개념만이라도 먼저 가르쳐 주는게 좋겠다 싶어서 조금씩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 ‘기하’라는 단어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금 떠올랐다.
대체 '기하'라는 단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학창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구글에서 ‘기하’란 단어만 입력하면 되었다.
Geomatry, 기하, 한자로 幾何.
몇 기, 기미 기, 기미 낌새 조짐, 몇 개..라는 뜻의 ‘기(幾)’자와 어찌, 무엇, 얼마를 나타내는 뜻의 어찌 '하(何)의 합성어,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몇 어찌.. 무슨 뜻일까? 더 알 수 없다.
사전적, 개념적 정의부터 알아보자.
국어사전 : 도형 및 공간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
위키피디아 : 선과 면과 도형의 모양과 넓이, 성질에 대한 수학
근데 도대체 기하라는 한자어에 이런 의미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어떻게 만들어진 단어인지, 무슨 숨은 뜻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정확히 그 본질을 알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알려주기도 곤란하다.
중국어 위키에 어원이 있을까 찾아보았다.
찾았다. 그리고 적잖이 놀랬다.
기하라는 용어는 1607년 명나라의 학자 서광계가 이태리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 함께 <유클리드의 원론(geometria)> 라틴어판을 번역하면서 "geo"의 소리를 “gi-ho”로 음차하여 ‘기하(幾何)’로 결정했다고 한다. (幾何란 단어가 과거 중국 수학책에서 ‘(길이·넓이 등이) 얼마인가?’ 또는 ‘크기를 측정하다’는 의미로 쓰기도 했다고는 하나 일차적으로는 외국어의 음차였다).
Geometria의 중국어판 제목도 기하원본(几何原本)이라고 붙여졌다.
즉. ‘기하‘란 단어는 음차라서 사실상 그 뜻이 없는 것이다. 지오메트리를 그냥 중국식으로 발음하여 표기한 것일 뿐이었다.
중국에서 의미보다 음차하여 번역한 한자를 우리가 그대로 가져왔으니 우리는 개념이 이해될 리가 없다. 없는 뜻을 알려고 애썼던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기하'란 단어를 뇌의 한쪽에 저장해 두고, 다른 한쪽에는 기하의 정의 - 모양과 위치, 크기와 거리에 대한 학문 - 이라는 개념을 따로 저장하여, 이를 다시 '기하'라는 기괴한 단어와 억지로 연결시켰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냥 ‘도형’에 관한 학문이다. 과거에 ‘도형학’으로 용어를 바꾸자는 의견도 제법 있었단다. 17세기 중국의 한 수학서적에는 기하학을 ‘양법(量法)’으로 번역하기도 했다는데, 우리에게는 오히려 이 양법이란 단어도 이해하기 쉽다.
'기하(幾何)' 란 단어 자체에는 특별한 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