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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손 Oct 27. 2022

나무 목'木'은 중국어니까?!

동서양 목공구의 차이

아내가 일 때문에 아이들과 중국에 살기 시작할 때였다. 이사 초기라서 아직 살림이 많이 어설펐다.

옷가지며 부엌살림 등은 그런대로 정리가 끝났는데 책장이 부족해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쉬워하다가 까짓거 명색이 목수인데 하나 만들기로 했다. 공방 찾기는 힘들 것 같고  드릴은 하나 있으니 한국처럼 재단을 해서 보내주는 서비스를 하는 인터넷 업체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중국어 한마디 못하고 구글 번역은 중국에서는 작동하지도 않고 중국 사이트가 아니면 인터넷은 정말 느리거나 접속 불가라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깜깜했다. 일단 시체 빼고 없는 게 없다는 타오바오Taobao에서 나무 목 자(木)를 검색어로 넣었다. 나무 목'木'은 중국어니까.

사실 한국이라면 적당한 검색어는 '집성판 재단 서비스' 정도였을 텐데 그냥 '나무'라고만 검색을 했으니 검색 결과에 무엇이 나왔겠는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무한 '삽질'끝에 내가 무얼 산 걸까 의문을 품은 채 구매 확정을 했다. 집성판 원장을 재단한 것을 주문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것이 올까 몇 날을 조마조마했다. 마침내 큰 박스가 도착하고 최신형 아이폰을 '언박싱'하듯 조심스레 포장을 풀었다. 벌어진 박스 틈으로 설핏 목재가 들어있는 게 보이자 그게 당연한 것인데도 그게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동도 잠시, 줄자를 대보니 재단 오차가 많은 것은 10mm까지 났다. 이걸 반품하는 것은 사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아 고민 끝에 나무는 있으니까 이번엔 톱을 사서 내가 다시 정재단을 하기로 했다. 톱 사기는 훨씬 쉬워서 아는 미국 브랜드를 구입했다.


톱이 도착했는데 또 역경이 다시 시작됐다. 톱날이 내가 그동안 쓰던 것과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쓰는 톱은 당기는 것인데 내가 산 것은 미는 톱이었던 것이다.


다양한 톱의 종류가 있지만 톱은 종류와 관계없이 목재를 자르거나 켜는 용도이다. 자르는 톱과 켜는 톱이 톱날 모양이 다르지만 모르고 써도 그냥저냥 자르고 켤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산 톱처럼 밀어서 쓰는 톱이면 아예 힘쓰는 방식이 달라져서 매우 당황하게 된다.



대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대패는 당겨서 나무를 깍지만 서양 대패는 밀어서 나무를 깎는다. 대패의 경우 원래 우리 전통 대패는 서양 것처럼 미는 방식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당기는 방식의 일 본 것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같은 역할을 하는 도구의 사용 방식이 다른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발견되는데 우리는 사과를 깍을때 날이 몸 쪽으로 향하게 하는데 서양문화권에서는 사과를 깍을때 칼날이 몸의 바깥쪽으로 향하게 해서 깎는다.


이러한 차이점은 문화적, 심리적, 역학적 배경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기도 하는데 정답이 무엇인지는 명확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웅크리는 동작으로 공구에 힘을 주는 반면 서양은 몸을 펴는 방식으로 힘을 준다. 오랜 역사 속에서 효율적이지 않은 방식은 퇴화하기 마련인데 아직 두 가지 방식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둘 다 그럴만하니 아직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나무와 톱을 아파트 공터로 끌고 나와 작업했는데 작업할 테이블이나 고정할 클램프 하나 없어 고역이었다. 공구도 변변찮아 직각자는 아이들 레고로 만들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더니 레고로 직각자를 만들어 쓰게 될 줄이야.

그런데 레고는 정말 정밀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아파트 사람들의 '대국적' 관심이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정말 30층짜리 고층 아파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구경하고 말을 시킨 것 같다.

그 아파트는 입구 큰 전광판에 '몇 동 몇 호 누구 결혼 축하', '몇 동 몇 호 누구 아버지 시골에서 방문' 등을 공지하기도 하는데(심각한 개인정보 유출로 봤는데 한편 매우 정겹기도 했다!) 혹시 '몇 동 몇 호 한국인이 톱질 중'이라고 전광판에 떴나 의심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들이 뭐라 뭐라 말을 해도 알아들을 리 없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워 한꿔, 팅부통, 셰셰(저는 한국사람이에요, 이해 못 해요, 감사합니다)'였다.

내가 중국말 못 하는 바보 한국인인걸 아는 청소 아주머니도 몇 번을 와서 뭐라 뭐라 말하는데 짐작컨대 '이거 도대체 청소는 어떻게 할래?' 정도였을 테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워 한꿔, 팅부통, 셰셰'.


우여곡절 끝에 만든 책장은 그럭저럭 쓸만했고 '중국 대륙까지 뻗친 한국 목공의 힘'이라며 스스로 추켜세우며 집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때 필요 없는 짐은 주변 한국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책장이 많은 이들이 탐내는 물건이었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집성판 원장 ; 마룻바닥처럼 좁은 폭의 나무를 이어 붙인(집성) 넓은 판재를 말한다. 두께(12~30T)와 크기(2440x1220)가 규격화되어 있어 인테리어에 많이 사용되고 비교적 중저가의 원목가구제작에 사용된다. 자르지 않은 집성판을 원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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