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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손 Nov 19. 2022

속 보이는 나무

<오동나무> 

어디서 씨라도 날아들었는지 언제부턴가 공방 처마 아래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다. 

아직 내 키 정도의 어린 나무지만 쫙 편 손바닥보다도 널찍한 잎과 뱀 껍질 같은 수피가 영락없는 오동나무다. 어릴 적 시골 동네 곳곳에서 하늘에 닿을 것처럼 큰 나무만 봐서 그런지 그렇게 어린 오동나무가 있다는 게 낯설다. 


옛날에는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빨리 자라는 나무라서 딸을 시집보낼 때가 되면 문갑을 하나 짤 정도로 크기 때문이란다. 없는 살림의 혼수 장만을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빨리 자라는 나무는 무르다. 오동나무는 손톱으로 누르면 손톱자국이 그대로 날 정도로 무르고 스펀지를 든 것처럼 가볍다. 판재의 단면은 무늬와 색감이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지만 내습성이 좋고 변형이 적어서 서랍 내부를 만드는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물푸레나무> 

중학교 시절 체육선생님은 자기 키만한 몽둥이를 목 뒤로 하여 어깨에 얹어놓고 어깨동무를 하듯 늘 양팔을 몽둥이 양쪽 끝에 걸고 다녔다. 작은 체구를 크게 보이려고 하는 동물적 본능 같은 것이었을까. 

얼마나 오래 그러고 다녔는지 나중에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그 몽둥이가 날개를 활짝 편 갈매기 모양이 되었는데 그것은 그 선생님의 어깨 형상이었다. 


목공을 시작하고 야구배트를 물푸레나무로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사랑의 매가 어떻게 몇 년 동안 전교생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고도 멀쩡할 수 있었는지도 알았다.

물푸레나무(애쉬, Ash)가 질기고 탄성이 있는 나무라는 것을 그 선생님은 오랜 교직생활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물푸레나무는 시골뿐만 아니라 도시의 야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내가 산으로 둘러 쌓인 깡촌에서 자란 덕에 그 나무를 알기 때문이다. 모르면 지천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판재의 단면은 얼핏 보면 오크 같기도 해서 오크 값이 비싼 요즘 오크 대용으로 쓰기도 하는데, 오크 보다는 단단한 느낌이 적고 전체적으로 밝은 색을 띤다.


물푸레나무(애쉬)은 겉과 속



경험이 쌓이면 목수는 판재의 무늬, 색감, 질감, 심지어 냄새로 무슨 나무인지 안다. 그리고 나무의 특성에 따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머리가 시키기 전에 손이 먼저 안다. 

그런데 '안다'는 것은 목공이라는 경험의 폭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 같다.


목수의 작업대 테이블 위에 있는 나무는 대부분 인치 단위로 켜서 인공 건조된 판재이다. 이를 제재목이라고 하는데 건조과정에서 수피(나무껍질)는 제거된 상태라서 껍질을 볼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목수가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안다'라고 하는 것은 죽은 나무의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물리적 특성이 어떤지 안다는 의미이다. 


오동나무건 물푸레나무건 판재를 흘끗 곁눈질로 보고 아는데 베기 전 뿌리가 땅속 깊숙이 박혀 갑옷 같은 껍질로 덮여있고 잔가지에 무수하게 푸른 잎이 달려있는 상태의 '살아있는 오동나무, 물푸레나무'는 매일 보고도 무슨 나무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겉을 알기 전 속부터 알게 된 도시 목수의 비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러니한 점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항변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가구 만드는 것과 그 나무가 원래 어떻게 생겨먹은지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나무 껍데기로 가구만드냐?'


사실 별 상관 없다. 그냥 별 내세 울 것 없어서 나무 좀 아는 체하고 싶은 시골 출신 목수의 오지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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