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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6. 2022

4.1 타고 남은 재가 되어가는 기분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 모두 그렇겠지만, 교사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 직업이다. 스트레스가 잘 해소되지 않으면 상처가 되고, 그 상처는 곪고 덧나기도 하며 흉터로 자리 잡아서 교직 인생 전체를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듯 학생들 모두에게 좋은 교사일 수 없는 걸 잘 알면서도 여전히 학생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는다. 교직에 있으면서 마음이 힘들었던 경험을 모두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것 같아 용기 내어 적어보았다.



  힘겹게 꺼내보는 마음 한 구석의 이야기다. 내가 맡았던 학급이 붕괴되었던 적이 있다. 정말 말 그대로 엉망 그 자체였다. 나는 죽어라고 애를 쓰고 있지만, 아이들은 내 마음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도 컨트롤되지 않는 그런 반이었다. 수업시간에 내 말은 모래알같이 산산이 부서져 아이들에게 닿지 않았고 나의 지도는 무력해서 아이들의 파도를 잠재울 수 없었다. 교과 선생님들은 매 시간 나에게 우리 반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면서 문제 아동을 수업 시간에 나한테 돌려보내시곤 했다. 정말 고래고래 악에 받쳐 울고 싶었다.

  “선생님은 고작 일주일에 3시간 보시잖아요. 저는 담임이라 20시간이나 보고 있다고요!”


  그 당시 아이들을 이끌고 있는 내가 너무 작게 느껴져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달 자격이 있는가 싶었다. 그 당시 혹자는 그냥 학교도 직장일 뿐이라고 조언했다. 그냥 교사라는 이름에 네가 부여하는 사명감이 너무 큰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그런데 마음을 내려놓아도 매일 아이들과 수업시간만 20시간, 거기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까지 함께 해야만 한다. 설령 내가 아예 아이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아도, 무력한 담임을 향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고, 초라해진 나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아무리 학년 부장님께 조언을 들어도, 교감,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을 훈계해도 그때뿐이지 교실 문 닫고 들어가면 나 말고는 내 편이 없었다. 내가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었다.

 

  학생 개개인의 감정도, 학생들이 모여서 내는 시너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물들어가는 학급 분위기에 대해서도 그 감정의 파동을 견뎌내는 것은 정말이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그게 담임인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그게 일이라고 한다면, 일이니까 해내야 했다.

 

  발령 동기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옆 반 선생님이 아이들과 하하호호하는 소리를 듣노라면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인 것 같았다. 3월 초 기대감에 차서 학급 아이들과 소규모 테마형 교육여행을 가자고 진행해왔는데,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갈 자신이 없어졌다. 통솔이 안 되는 상태로 나간다면 안전사고가 안 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내가 너희를 데리고 갈 자신이 없어.”

  아이들 앞에서 약속한 활동을 못 하겠다고 하는 건, 내 말의 신뢰와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이었다. 내가 스스로 아이들을 이끌 자신이 없는 약한 교사라는 꼴을 인정해버리는 셈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학급 아이들 앞에서 초라해진 나 자신을 인정하고 학년 부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내 밑바닥을 드러내는 기분이었다.

  그 해, 번아웃이 왔다. 번아웃 증후군 체크리스트에 있는 모든 항목에 표시할 수 있었다. 너무 지쳐버리면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는 걸 그때 알았다. 취미, 운동, 친구와의 만남, 음식, 그 모든 것에 무기력해졌다. 어떠한 욕구도 소진되어 정말이지 타고 남은 재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바닥을 쳐서 오랫동안 회복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우습게도 그렇게 오랫동안 끙끙거렸던 게 이상할 만큼 번아웃 증후군은 담임을 그만두자 자연히 사라졌다. 이듬해 나는 다른 아이들을 만났고, 수업 자체에만 매진하게 되었고,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나는 빠르게 원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했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난 후, ‘제가 그때는 철이 없었어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는 문자 한 통에 다시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직도 이 기억은 나에게 아프다. 나에게 쓰라린 기억이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던 모양인지, 제일 나를 힘들게 했던 아이들이 아직도 꾸준히 연락을 해온다. 그렇게까지 내가 최악의 교사는 아니었구나 싶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교직 인생에 있어서 다시 그때처럼 될까 봐 겁이 난다. 그때처럼 내가 다칠까 두려워서 해가 갈수록 아이들에게 마음을 덜 주게 되고, 소극적으로 변해버린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교사의 번아웃은 관계에서 온다고 본다. 사람에게서 온 상처가 누적이 되고, 내 마음을 혹사하게 되는 굴레 속에 빠져버리면 본래의 나는 다 타버리고 없게 된다. 아마도 많은 교사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감정에 무뎌지기도 하고, 학생과의 거리감을 조절하고, 생활지도에 더 많은 애를 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 교직을 그만두지 못했던 건 학생에게서 온 상처가 학생으로부터 치유되었기 때문이다.





                               

                                      번아웃 증후군 체크리스트


☑ 잠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잠을 자주 설친다.


☑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 짜증이 늘었고 때로는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피곤해진다.


☑ 주말이면 집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 이전에는 즐거웠던 일들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3개 이상 항목이 해당되는 경우 번아웃 의심


출처: 한국교직원공제회 블로그 ‘정신없이 일한 후 무기력함, 선생님의 번아웃 증후군 극복하기’(2022.06.02.) https://blog.naver.com/ktcu_attic/22275642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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