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코 Sep 14. 2022

사실과 증언

언어의 부재


개인 언어의 부재는 문제를 만든다. 고유성을 지닌 문장 하나가 사실과 증언이 되지 못하기에 더듬어 찾아지는 자기 자신으로 회귀와 존재의 인지는 지연되고 부정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효용성과 판단을 기준으로 삼는 보편적 인간에 자리하려는 욕망은 그 누구도 지칭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다. 불특정 다수로 타자를 인식하는 순간, 스스로는 사라지지만 사라진 자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주체로서의 사람이 아닌, 텅 빈(vid) 무지향성 공간뿐이다. 그렇기에 타자를 인지하는 순간에, 자기 자신을 빼앗기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순수함을 잃은 코끼리"


인도에서 코끼리는 신을 상징한다. 지형적 특성상 코끼리를 자주 마주할 수 있었던 고대의 인도인들은 영겁의 회귀를 생각하며 그들의 신전에 순수성(지혜)을 지닌 코끼리(가네샤)를 상징하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금으로 조각된 조각상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언어의 기원이 되는 상형 문자 내에서도 코끼리의 존재는 언제나 영원성, 불변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자아상을 그려낸다. 순결은 결백을 표방하고, 결백은 증언과 사실을 지칭한다. 표면적 행위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내면의 세계를 배제한다.


-

무엇인가를 잃는다는 것은, 언어가 부재함을 지칭한다. 공허를 대체할 텍스트를 찾지 못하기에 인간은 고독하다. 절망은 자신의 목소리 안에 지닌 무언의 힘이, 더는 지향성을 잃고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스며드는 상태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말의 힘이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빠져나와 들숨으로 공기를 가슴에 움켰을 때 토해내는 울음과 같은 언어, 고유성을 인식하고 존재의 자각으로 발걸음을 떼는 그 모든 발들이 어둠 사이로 사라졌을 때 절망은 찾아온다.


언어의 부재는 상대에게 감각의 부재를 뜻한다. 무감각한 다수의 사람들이 지나치고, 또 새로운 무감각한 이들이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언어에 대한 저항은 근대의 예술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미적으로 예술의 표현 기술 중 일부를 차지하던 그림의 활자화를 멈추고 동적 사물이 정지 상태로 전시되거나(레디메이드), 사물 그 자체가 지닌 시간성에 고유성을 부여하는 식으로 그림의 텍스트화를 부추기면서 모든 해석과 해설, 비평과 평론을 비웃었다. 


사실은 증언이 아니다. 증언은 사실이 아니다. 실재한다는 것은 존재를 지칭하지만 사실이 지칭하는 것은 행위의 당위성뿐이다. 인과관계는 언어에 있어서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로 존재를 지칭할 수 없다. 증언은 자기 욕구를 절제하고 침묵의 눈길을 던지는 일이다. 대변의 가치를 지닌 일에 참여하는 행동의 주체성이 포함되지만 여러 사람의 증언이 모여 사실이 되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고유한 삶이 그려내는 동작들이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속과 개인의 삶을 무조건적인 합치를 시키는 일은 전체주의와 이상주의의 가장 큰 허점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둘은 너무나 닮아있다.



-

기록 문학이 시여야 하는 이유는 언어의 부재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 반드시 그 개인이 사실과 증언에 합당한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한다는 이유 만으로 모두의 목소리에 힘이 있으므로, 수면 위를 부상할 때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수영하는 바다의 존재와 같이 저마다의 심연에 깊이 자리 잡은 목소리를 잃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탄다. 아이야, 당신은 

계속해서 울리는 소리를 듣는가요?

부드러운 소음은 마차를 탄 듯 

도시 위를 거닐고, 가로등에 비추인

길의 그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작은 목소리를 옮겨 적는 일입니다.'

-Serge Gaspers


활자의 놀이는 재미있는 것입니다. 순결함을 잃지 않기 위해 탐구하는 고귀한 정신,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는 낱말의 늪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을 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낱말을 찾기 위해 우리는 꿈의 놀이를 합니다. 속삭이는 목소리와 속삭이지 않는 목소리, 그리고 나의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당신은 우리의 틈 사이에 자리한 문지방에 걸터앉아 옛날이야기를 기다리겠지요. 그것은 오늘의 이야기 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