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태명은 '가을꼬북'이다. 아내가 임신할 무렵 꿨던 태몽에서 많은 거북이가 모여있는 곳에서 예쁜 거북이 한 마리를 쥐고 집에 들어오는 꿈을 꾼 데서 유래하였고, 봄에 태어난 아내, 여름에 태어난 나, 겨울에 태어나는 아이에게 가을까지 합쳐서 사계절 내내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을을 붙였다.(너무 길어서 조리원에선 '꼬북'으로 활용하였다.)
"3cm가 열렸네, 당장 분만실 입원하셔야 하고 보호자분도 PCR 검사하고 들어오셔야 해요"
어쩐지 항상 T맵의 예상도착시간 보다 몇 분 늦던 내가 5분이나 빠르게 병원에 도착하더라니.
주말 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무언가 분비물인지 양수인지 모르겠다던 아내와 차를 몰고 병원 응급 분만실로 향했다.
엉겁결에 입원하게 된 아내와 나는 코부터 찌르고 음성 판정을 받은 뒤, 진통은 느끼지 못한 채로 갖가지 바늘을 꽂고(옆에서 보고),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에 분만실 복도를 배회하고(옆에서 따라다니고) 짐볼에 앉아 허리를 돌리고(옆에서 보고) 누워서 태동체크 및 링거를 맞고(옆에 누워서 보고) 어느샌가 나는 내 패딩을 베개로, 아내의 패딩을 이불로 삼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9시 30분경, 임신 중에 계속 뵙던 주치의 선생님께서 보시고 오후 4시 전에는 출산할 것 같다며 말씀해 주셨다. 사실 비몽사몽중에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해서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그리고 정오 무렵, 아내에게 거센 진통이 찾아왔고, 보호자는 잠깐 나가 있으라는 말을 다시 들었다.
'음, 오후 4시쯤 말씀하셨으니 좀 앉아서 대기해야 할 텐데 어디 의자가 없나? 저기 있다.' 의자에 앉고 1~2분쯤 지나자 오가던 간호사님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보호자분, 의자 어디서 났어요? 서서 대기하세요" 왜인지 죄책감이 들어 조용히 의자를 반납하고(간호사분들 카운터에 남는 의자였다) 복도에 잠자코 서있었다.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손을 소독하고, 투명한 크린랩장갑을 받아 착용하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새하얀 탯줄을 자르라며 가위를 건네어 주셨다. 평소 왼손잡이이자 몸 쓰는 일에 대해 젬병취급을 받던 나는 탯줄에 통증을 느끼는 신경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 번에 자르려고 가위를 잘 쥐고 잘랐다.
정신없이 땀에 흠뻑 젖은 아내와 의료진들, 얼굴에 피와 말라붙은 양수(?)등이 붙은 우리 가을꼬북이가 울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나도 눈물이 살짝 나왔다. 어떤 감정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기쁨, 벅참, 걱정, 안도감, 귀여움, 불안, 고마움 등의 감정이 복합된 것 같기도 하다(그중에 슬픔이나 화남은 없었다) 생각보다 조그만 아이가 생각보다 큰 소리로 울고 있어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지만, 평상시에 아내가 '예전에 아이를 낳으면 산모는 뒷전이고 다들 아이만 본다고 산모가 그렇게 서러웠대' 같은 이야기를 했어서 아내에게도 "너무 고생했어, 잘했어" 한 마디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그리고 아이도 쳐다보다 의료진의 후속처치를 위해 다시 복도로 나왔다.
임신과 출산에는 생각 이상으로 남편이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각종 잡무처리 및 정신건강케어의 역할이 아닐까..? 앞으로 육아 동반자로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생각을 나도 하고 아내도 느낄 수 있게 더 노력해야겠다.
임신 전 과정에서 술,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 중금속이 들어갈 수 있는 생선, 배탈이 날 수 있는 날 것을 끊고 임산부 영양제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챙겨 먹은 아내에게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