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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Nov 10. 2022

휴머니멀, 사람은 살아있을 때 가장 무섭다


어느 날 저녁 퇴근을 하고 느슨한 마음으로 TV를 켰다.

쉬려고 켠 TV 프로그램에서 '보츠와나, 태국, 남아공...'에서 벌어지는 코끼리 밀렵의 잔혹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지옥의 코끼리 사냥 말이다.



덩치가 산만한 야생 코끼리떼가 초원을 한가롭게 걷더니 이윽고 진흙뻘이 있는 물가에 다달아 장난을 치는 평화로운 모습이 보인다. 하늘에서 앵클을 잡던 카메라가 높이를 낮추어 몸집이 큰 코끼리의 기다란 코 옆으로 보이는 아이보리색 상아도 비추어 준다.

화면이 바뀌고 두 명의 사람이 초원 관목 길을 따라 걷다가 거멓고 큰 가죽의 코끼리 사체가 보이자

코를 움켜쥐고 인상을 쓰면서 걸음을 멈춘다.

수천 마리의  파리떼가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고 두 사람은 가죽 덩어리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이 지옥의 광경을 설명한다. 카메라도 이 말문이 막히는 장면을 따라잡으며 시청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카메라가 좀 더 자세히 큰 덩치의 코끼리 사체에 가까이 가니 코끼리의 얼굴이 통째로 잘려나가 있었다.

남자는 계속 이 참담한 상황을 설명을 하고 있었고 화면 아래 자막은 계속해서 바뀌어지고 있었다.

코끼리의 나이는 추정하건대 45세에서 50세 정도로 죽은 지 오래지 않았다고 했다.

코끼리 밀렵꾼들은 거대한 몸집의 코끼리를 총으로 쏘아 쓰러뜨리고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도록 그 포유동물의 척추까지 잘라버렸다. 힘이 장사라는 코끼리는 안간힘을 다해서 이 상황을 도망치고 싶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밀렵꾼들은 코끼리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전기톱을 들고 그 코끼리의 얼굴을 자른다 했다.

그 이유는, 다음 코끼리 사냥을 위한 총알을 아끼기 위함이었고 머리를 통째로 잘라서 상아의 깊은 뿌리까지 채취하기 위함이었다.

 

제발 나를 놓아달라는 애처로운 눈빛도 절규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빛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101%의 처절한 절망이었다. 단테의 지옥의 문 앞에 쓰여있는 문구가 뇌를 스치고 갔다. 말 못 하는 코끼리는 지옥 즉, 사람을 보면서 분명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이곳에 있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코끼리는 '살려주세요! 제발! 가족이 있고 아기도 있어요!'라고 소리 질렀지만 지옥은 살아있는 코끼리의 얼굴을 고통스럽고도 잔인하게 몸통과 분리시켰다.

코끼리에게서 상아는 인정사정없이 뽑혀졌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현장에서 지옥은 환희의 미소를 크게 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코끼리의 가족에게도 일어났고 코끼리의 동료에게도 일어난 살아있는 지옥이었다.


화면 속의 '국경 없는 코끼리회' 박사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사람들에게 코끼리 사냥의 잔인성을 호소하였다.

그 지옥 같은 밀엽꾼들과 같은 유전자를 지닌 '영장류'라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줄이야...

동족으로 살아있음이 이렇게 비참한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다니!

비탄의 수도꼭지여! 계속 잠가지지 마라. 존재의 부끄러움이 마르지 못하도록!


다시 화면이 바뀌어 태국 치앙마이를 화면에 보여준다. 태국은 관광과 불교의 나라로 수많은 코끼리가 트래킹이나 관광, 축제, 쇼 등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이용되고 있었다.

나이 든 코끼리 보호 운동가가 나와서 '코끼리를 돌보고 있으면 사람과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면서 작은 생물들을 가여움으로 돌보고 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같다고 생각을 했다. 동물도 지능이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사람과 진정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카메라는 쇠사슬에 묶여서 훈련을 받는 코끼리를 비추더니 이윽고 화려한 축제의상을 벗은 뼈와 가죽만 앙상히 남은 코끼리를 보여 준다. 얼마나 살아있는 것이 고달팠으면 코끼리의 모습이 저렇게 가냘프게 된단 말인가...

이런 코끼리들은 아기일 때 엄마 코끼리와 분리되어서 모진 훈련과 학대를 받게 된다고 한다.

날카로운 칼처럼 생긴 뾰족하고 긴 송곳과 몽둥이들로 살갗을 내리 찍히며 코끼리는 굴복을 강요받는다.

결국, 지옥의 타락한 욕심에 갈가리 찢긴 코끼리는 결국 무릎을 꿇게 된다. 이 과정에서 코끼리는 야생의 본능과 기억, 자아가 파괴되고 결국 정신병까지 생기게 된다. 게다가, 코끼리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눈물을 흘리고 울었던지 모두 하얗게 눈이 멀어져 있다.

지옥은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아기코끼리를 개조시켰다. 덕분에 여흥의 즐거움이 가득한 사람들은 코끼리의 등에 올라탈 수 있었고 채찍과 송곳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서도 웃게 되었다.

비단 이런 지옥의 삶은 코끼리뿐만 아닌 거 아니까 인간 된 부끄러움에 티브이를 끄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다.



그 언젠가 지인이 운영하는 병원의 영안실 앞을 지날 때의 대화가 생각이 났다.

'아휴! 원장님, 이 영안실 앞을 지나갈 때 안 무서우세요?'

원장님은 나를 한번 허탈하게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장선생,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어휴! 무서워! 저기도 살아 있고 저기도 살아 있네! 아휴! 무서워라! 세상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야. 죽은 사람은 절대로 무섭지 않아"


맞다. 그 말이 맞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가장 잔혹하고 무서울 수 있다.

휴머니멀! 살아있는 지옥들이 중첩되면서 사람이 가장 잔인하고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있는 사람이 가장 따뜻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무기력과 부끄러움.


'국경 없는 코끼리회' 박사가 울 때, 나도 따라 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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