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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 Sep 23. 2022

목장으로 가는 멀고도 험난한 길

2.QLD에서 NSW로 달린다

이렇게 정식으로 계약서를 받고 사인까지 끝냈다. 목장에서의 첫 일 시작 날은 9월 20일 즈음으로 했다. E는 원래 더 빨리 와 주었으면 하는 눈치인데 차가 고장 났다는 핑계를 대고(거짓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정말 차가 고장 나게 된다.) 억지로 늦췄다. 마침 8월 28일에 친했던 슈퍼바이저의 생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블루베리를 픽킹 할 수 없게 된 나와 친구들은 서로 살 길을 찾아야만 했다. 떠나기 며칠 전에 NSW주에 있는 목장에 가게 되었다고 그 슈퍼바이저와 친구들에게 전하니, 지금 거기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너 거기 가면 당분간 못 나올거라면서 염려해줬다. 작년 8월에는 시드니에서 코로나 대유행 때문에 들어가는 건 괜찮지만 타 주로 나가는 건 엄금했었다. 그래도 나야 어차피 돈 벌러 갈거고 호주에 와서 워낙 이동을 많이 해서 이번에는 진득하니 한 지역에 오래 있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갈 곳은 시드니랑도 몇 시간 이상 떨어진, 한국의 읍내보단 약간 큰 타운 수준의 동네가 있는 곳이었다. 한창 내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는 우스갯소리로 너 NSW주랑 QLD주랑 서로 지역감정 있는 거 알고 있냐고 그러더라. QLD주 사람은 NSW주 사람을 바퀴벌레라고 부르고, 그 반대는 두꺼비(Cane toad)라고 부른다고. 너 거기 가면 완전 바퀴벌레 되는거야~ 하면서 농담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나도 뭐라고? 두꺼비가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리는데? 하며 깔깔 웃었다. 이런 농담에 웃다니 나도 참 호주 유머코드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친한 친구인 R는 먼저 누사를 찍고 에어리 비치로 가서 완벽한 휴양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겸사겸사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얼마 안 되는 짐을 모두 싸 들고 송별회가 끝난 다음 날 차로 이동했다. 그러나 초보 운전자에게는 8시간의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 있는 도시인 Sarina라는 곳에 숙소를 예약해 놓고 달리는데 3시간쯤 지났을까? 락햄튼을 벗어난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검은색 덩어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들이받아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과속은 안 했지만 내 차의 속도는 그 장애물과 부딪혔을 때 범퍼를 날려먹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슬로 모션으로 범퍼가 날아가는 걸 보고서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부랴부랴 차부터 갓길에 세웠다. 그리고 저 멀리 날아간 범퍼를 주워다가 내 차 근처에 던져뒀다. 다행히 내 차만 상했고 나랑 다른 차들은 무사했다. 그러나 아, 완전히 반으로 갈라진 그걸 보며 더 이상은 다시 땜빵해서 써먹을 수 도 없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안에서 무슨 액체가 흘러나오는 걸 보고 난 우선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정 설명을 하려는데 왜 이리 영어가 안 나오는지. 답답했지만 여차저차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내 보험 번호를 불렀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서드 파티 보험만 들었다. 자차 보험이 아니라 타인의 차량 재산 손실에 대한 것만 보상해 주는 상품이었다. 이걸 깨닫고 그저 한숨만 나왔다. 다시 시동을 걸기에도 솔직히 무서웠다. 그렇게 하염없이 서 있으면서 이제 어떡하지… 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가 웬 차가 내 뒤에 멈췄다. 한 오지(Aussie) 아저씨가 곤란해하는 날 보고 도와주려고 했는지 나에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보았다. 사정 설명을 마쳤더니 그는 내 차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나 대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선 저 액체는 그냥 워셔액이라고, 엔진 오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여기서 차를 더 점검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여기 근처에, 적당한 공터가 있으니 거기로 운전해서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부서진 범퍼는 네 차 뒷자리에 안 들어가니 내가 가져다 버리겠다며 내 차의 번호판만 분리해서 돌려주었다. 나는 그 아저씨를 따라갔고, 거기에는 다른 캐러반을 끌고 다니는 차들도 많이 있었다. 그는 내 차를 마저 점검하더니, 일단 내부 문제는 없는 거 같고 만일 경찰 만나면 사정 설명하고 곧 범퍼 새로 달 거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부서진 그 범퍼를 들고는 떠나버렸다. 정신이 없어서 이름도 못 물어봤는데 정말 끝까지 친절한 아저씨였다.

저렇게까지 날 도와준 사람이 있는데 더 낙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에어리 비치에 있는 수리소에 연락을 해서 예약을 잡고, 보험사에 다시 전화해서 레커를 부르려 했는데 언제 올지 몰라서 그냥 안 부르는 걸로 했다. 한 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지만 훌훌 털고 가려는데 맞은 편에 있던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려서 나에게로 걸어왔다. 그는 지쳐서 무표정한 날 보더니 밝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 몇 가지의 간식을 건넸다. 사실 아까부터 너랑 그 오지 아저씨를 보고 있었는데 네가 곤경에 처한 거 같아서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거 먹고 힘내라고 했다. 아니 이 사람들… 너무 차에 대해서 진심 아닌가. 주변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호주 사람들은 차가 망가져서 곤란해 하는 사람을 보면 왠만하면 멈춰서 도와준다고 한다는 전설같은 소리를 했는데 내가 실제로 겪어보니 사실이었다. 그렇게 그 여성분도 나에게 세상은 참 따뜻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는 웃으면서 떠났다.


그때 먹었던 주전부리, 역시 당분의 힘은 위대하다. 고작 저거 먹었다고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리고는 숙소까지 가슴을 졸이며 운전하기를 반복했다. 중간에 코로나 때문에 타 주에서 들어오는 차량을 검문하는 경찰에게 잡혔지만 면허증을 보여주고 범퍼가 부서진 것에 대한 사정을 설명하니 큰 문제는 없었다. 대신 내 번호판은 차 앞 유리에 잘 보이게 고정시켜두라고 했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질 때 쯤에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입실한 사람이라서 숙소 주인이 나와서 날 맞이했는데 놀란 얼굴로 만신창이가 된 내 차와 나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봤다. 그도 충격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을 한 채 거두절미하고 너는 괜찮니? 라고 물어봐 주었다. 사실 차 상태를 보면 누구라도 그럴 거 같았다. 그날 밤은 왠지 억울한 마음에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었다. 친구도 내 소식을 듣고는 경악 그 자체, 두 번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 상처는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다음 날, 전혀 상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운전해서 오후 한 시에 에어리 비치 시내로 들어왔다. 급한 대로 정비소부터 들러서 견적을 내봤는데 내 차가 너무 구형 모델이라서(미쓰비시 1998 랜서, 와 내 동생뻘이다.) 범퍼를 새로 주문해야 하는데 이게 빨라야 2주 뒤에나 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이미 내가 목장에서 일 시작할 시점이라서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 즐기러 온 휴양지에서 나는 머리 아프게 새 차를 사니 마니 하는 고민이나 하고 있으니 이거 참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돈 벌려고 목장 가는 건데 오히려 돈을 더 쓰고 있으니 조금 우울해졌다. 그래도 나의 장점 중 하나인 ‘욕하면서 일단 전진’을 실천하기로 했다. 검트리(호주 거래 사이트)에 들어가서 머리 빠지게 물건을 골랐다. 내 취향은 SUV인데 버스 타고 갈 만한 거리에 있는 매물은 죄다 왜건뿐이었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상황이 아닌데, 이런 상황이 꽤 자주 오는 게 문제다. 케언즈와 타운즈빌에 있는 물건을 보고, 케언즈는 너무 멀어서 기각, 타운즈빌에 있는 차가 관리가 잘 되어 보여서 거기로 가는 버스 티켓을 예매했다. 투어를 두 번 즐긴 다음에 호텔 방 안에 들어와서 다음 날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 속으로 미리 생각해 보았다. 먼저 월요일인 내일,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타운즈빌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판매자가 화요일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그건 알겠다고 했다.


푸른 바다에 하얀 모래,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해변이었다.


판매자는 스페인과 칠레에서 온 커플인데, 역시 워홀러였다. 내가 하룻밤 묵은 호텔로 차를 끌고 와 주었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타운즈빌의 마그네틱 아일랜드에서 지내고 있는데 차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거라고 했다. 차를 잠시 운전해보고 바깥과 안 쪽을 확인하는데 타이어 한 쪽에 못이 박혀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짐짓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진짜 이 차 블루투스 오디오도 차에 연결되있고 차 관리 잘 한거 알겠다. 그리고 이걸 살 의향도 있다. 근데 차 값이 싼 건 좋지만 타이어 갈아야 하는 건 결국 내 부담이니 가격을 좀 네고해달라고 했다. 애들이 당황했는지 앗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 그래도 위험하니까 가격을 깎아줄게~ 라며 흔쾌히 200불을 할인해줬다. 그렇게 거래가 성사되었고 그 커플은 정 든 차를 그냥 보내기 싫었는지 내게 차와 함께 쓰리샷을 찍어달라고 했다. 짜식들, 귀엽기는. 하면서 당연히 찍어줬다.

자, 이제 새 차를 샀으니 만신창이가 된 내 올드 카는 보내줘야 할 시간이 왔다. 아침에 폐차장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갔다. 그 와중에 내 차 보고 클락션 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시간으로 찢어지는 내 마음에 한층 더 주먹질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주인이 말하길, 이 차는 팔아도 고철값만 나온다고 했다. 그거야 짐작하고 있어서 그냥 알겠다고만 했다. 너덜너덜해진 차를 계속 보느니 빨리 내 눈 앞에서 치우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이롭고 말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폐차장 주인이 나를 에어리 비치 시내까지 데려다 주었다. 차가 없으니 걸어가야 하나 싶어서 다리에 힘 주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에어리 비치에서는 일주일 가량 머물렀다. 현실의 압박감에 저 아름다운 자연을 완전히 다 즐기지 못한 아쉬움에 내가 호주에 있는 한 한 번은 더 갈지 싶다. 그리고 구도나 색감 그런거 신경 안 쓰고 찍어도 저런 환상적인 사진이 나온다. 과연 호주 사람들의 대표적 신혼 여행지 답다.




자, 이제 차도 구했겠다. 약속된 날짜에 일을 시작하려면 다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에어리 비치에서 목적지까지는 순수 운전시간만 대략 20시간. 호주가 정말 큰 나라라는 거를 여기서 실감했다. 지금 과거를 되돌아보자면 정말 그 때의 나는 미쳤었다. 저 거리를 교대 운전자도 없이 혼자서 꾸역꾸역 운전해서 가는 나란 사람. 운전에 미친 사람… 그런데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부디 독자들은 나처럼 근성으로 너무 뚫고 가려고 안 했으면 좋겠다. 나도 밤에는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호주 도로 사정이 장난이 아닌게, 해가 딱 떨어지고 나면 캥거루나 토끼, 여우같은 야생동물들이 도로로 올라온다. 마치 치안 안 좋은 나라처럼, 낮에는 경찰이 관리하고 밤에는 카르텔이 관리하는 것처럼. 그들도 꽤 당당하게 도로를 공유한다. 웃긴 건 캥거루들은 길 가에 서 있다가 차가 지나갈 타이밍에 도로로 뛰어든다. 살아있는 것들 말고도 죽은 캥거루도 문제다. 큰 캥거루 시체가 길 한 복판에 떨어져 있으면(친 사람이 치우고 가지도 않는다!) 이걸 그냥 밟고 갈지 핸들을 꺾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하필 해가 떨어질 때 운전을 할 때에는 최대한 큰 트럭 뒤에 안전거리 유지하며 붙어서 갔다. 그렇게 하면 트럭이 대신 캥거루를 방어해주니까. 이래저래 호주 = 야생 공식이 성립한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풍경은 아웃백 지날 때 “이 앞으로 100킬로미터 안에 주유소 없음” 이라는 표지판과 길가에 버려진 차, 그리고 산불이다. 그리고 괜찮은 국립공원이 많았는데 거기를 들리지 못한 게 또 아쉬워진다.


첫 날에는 12시간 정도 운전하고, 주 경계의 작은 마을 캐러밴파크에서 차박을 했다. 난생 처음 하는 차박이란 정말 추웠다. 이불도 압축팩에 넣어서 못 꺼냈고 그저 두꺼운 옷을 껴 입고 수면양말도 단단히 신었다. 그래도 어디론가 들어오는 그 냉기. 차박은 두 번 할 게 못된다. 초봄이라 그런가 밤에는 장난 아니었다. 그렇다고 히터를 틀고 자면 질식할 수 있으니 이를 닥닥 부딪히며 밤을 보냈다. 아침에서야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곰처럼 느긋하게 일어나 어기적거리며 차를 끓여 마셨다. 오늘도 달려야 하니 적절한 카페인과 당분은 필수이다. 단, 너무 무겁게 먹으면 오히려 잠이 오니 내 식사는 오로지 젤리 뿐이었다. 눈 뜨면 운전하는 이런 삶도 현대적 유목민 같아서 허리가 아파도 즐거웠다. 목장에서 한 시간 걸리는 거리의 마을에서부터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지역이 유채꽃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유채꽃 필 무렵에 목장 생활을 시작한 내가 다시 꽃 피는 계절을 맞이하게 되다니.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차에 탄 순간부터 목장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인사담당자가 코로나 음성 결과를 들고 오지 않으면 일을 못 시켜준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미 백신도 2차까지 다 맞았고 사람 많은 곳은 발도 안 들였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나중에 알고 봤더니 목장 워커가 코로나 걸려온 상태에서 일을 했다고 비상 상태였다고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내려가는 동안 그 루트에 있는 코로나 검사 가능한 보건소를 찾아봤는데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아서 결국 목장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타운에서 잠시 지내기로 했다. 그러면서 검사 날짜까지 그냥 버티는 거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낮에는 다른 타운도 운전해서 다녀오고, 흥미로운 지역이 있으면 날 좋을 때 잠시 들리기도 했다. 특히 저 위에 보이는 폐광에 물이 고인 사진은 지금 봐도 참 좋다.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 시간들이 지나가고서 예약해 둔 보건소에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드라이브 스루만 가능한 곳에 나는 그냥 걸어서 갔다. 다들 차를 타고 오는데 나만 뚜벅이라니 좀 웃겼다. 한국에서 검사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콧구멍을 엄청 세게 찌른다는 썰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호주는 세상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에 그런건 걱정 안해도 된다. 단지 내 침을 내 콧구멍안에 바른다는 게 찝찝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당연하게도 문자로 날아온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걸 캡쳐해서 담당자에게 보내고, 어플을 다운받고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언제 목장에 방문하는지 내 개인정보와 날짜까지 작성해서 제출해야지 허가가 떨어진다. 일하기 뭐 이렇게 힘드냐. 호주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깐깐하고 (상대적으로)복잡한 절차를 가진 회사는 처음 봤다. 이게 다 대기업이라 그런 거겠지만.


회사는 장거리 운전에 지친 나에게 자비란 없었다. 바로 도착한 당일에 인덕션을 봤는데 간단한 회사 소개, 소들을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영상을 틀어주고 매니저가 나에게 추가 설명을 했다. PPT에 “동물과 함께 일할 때는 참을성을 가지고 임할 것”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순진하게도 당연히 참을성을 가지고 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인내심을 잃는 순간은 꽤 자주 찾아온다. 그것을 염려한 말이 아니었을까. 계약서는 이미 여기로 오기 전에 썼으니 상관 없었고, 형광 연두색 하이비즈 유니폼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팜 하우스로 가서 쉴 수 있게 되었다.



*늦게라도 업로드 해도 상관없으니 그림을 그려서 올려볼까 고민이다. 원래 웹툰으로 그려보고 싶던 내용인데 일러스트로 딱 한장씩만 그려서 올려도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내 재능을 썩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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