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밀착취재, 새 착유장의 루틴
*더러운 묘사 있음, 식사하실 때는 읽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일련의 소동 끝에, 나는 같은 집에 사는 C와 같이 일하게 되었다. 내 사정을 들은 그도 이제 같이 일한다면서 기뻐했다. C 역시 아일랜드 출신으로, 애인인 CL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팀이 달라서 C가 한 시간 일찍 출퇴근을 하고 일이 끝난 뒤에도 한 시간 자기 애인을 기다린다.(애인이 일하는 장소는 착유장과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일하던 장소가 달라 집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대가 되었다.
새로운 착유장은 기존에 일하던 착유장과는 여러 모로 달랐다. 새로 세워진 지 고작 3개월 정도 된 그 곳은 청결도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일하기에 편리했다. 그전에는 밀커들이 직접 걸어 다니며 소 젖꼭지 소독부터 일일이 했는데 여기는 큰 원판 같은 기계가 빙빙 돌며 소들을 밀커들 앞으로 대령해 준다. 이 시스템을 로터리(rotary)고 한다. 소독도 밀커 옆 소독기가 자동으로 해 주기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심지어 착유 후 소독도 다른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는, 밀커들이 마치 큰 기계의 한 부품(순수하게 젖꼭지에 컵 붙이기 역할을 수행하는)이 된 거 같았다. 소들은 한 마리씩 입구로 들어와 각 기계 안에 들어가서, 얌전히 착유당하고 출구로 나가 집으로 돌아간다.
단지 여기에는 소를 몰고 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밀커들이 순서대로 다음 타자 소 떼(Mob, 몹이라고 부른다)들을 몰고 와야 하는데 이것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몹 하나의 규모가 이전 착유장에 비해 절반 수준이었다. 로터리가 돌아가는 속도도 상당히 느려서 평균 1분에 소 네 마리가 로터리에 탈 수 있다. 오히려 내가 더 할 일이 없는지 두리번거릴 정도로 천천히 돌았다.
밀커들도 각각 다른 착유장에서 온 사람들인데, 나랑 주로 일하는 사람은 M과 P이다. 두 사람 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데, 둘 다 친절해서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실수를 참 많이도 했지만 화를 내기는커녕 ‘그럴 수도 있지, 더 나아질 거야’라는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해 줘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다. 이런 너그러운 태도를 나도 참 배우고 싶어서 지금도 노력 중이다.
각설하고, 이곳에서는 1) 아픈 소 2) 막 출산을 마친 소 3) heifer의 우유를 짜 낸다. 원래는 더 큰 로터리가 있는 곳에서 같이 착유했다고 하는데 목장이 내가 근무 시작하기 전에 증축 공사를 했나 보더라. 이제는 분리해서 일거리가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걸 방지한다.
소들의 젖을 짜주지 않으면 사람의 젖몸살처럼 유방이 붓고 매우 딱딱해지기 때문에 수의사와 헬스 팀의 진단을 받고 반드시 젖을 짜줘야 한다.
그게 설령 1) 아픈 소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대신, 아픈 소들은 별개의 pen에 머물고, 오전 조가 그 소들을 하루 2번 착유한다(건강한 소들은 하루 세 번 착유). 그 소들에게서 나온 우유는 항생제 성분이 들어 있어서 팔지 못한다. 대신 호스를 탱크에서 분리해 그대로 흘러 보낸다. 깨끗한 우유를 더럽히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헬스 팀도 몇 사람 들어와서 컵이 분리되는 자리에 서서 유선염에 걸린 소들을 체크하고 치료해 준다. 상태가 좋지 못한 소들은 착유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병원으로 옮겨간다.
닳아버린 발굽에 붙은 나무 굽이 익숙지 않아 다리를 저는 소들이 미끄러운 바닥 위를 힘겹게 걸어서 기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왠지 슬퍼진다. 넘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질 때도 있다. 밤에 일해서 감성적이 되는 탓일까, 아니면 유제품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의 죄책감 때문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소들이 고생하는 걸 보니 유제품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대체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막 출산을 마친 소들은 한데 모여서 매터너티 팀에서 하루에 두 번, 이곳으로 오는데 두 장소가 가깝기도 하고 통로도 연결되어 있다. 소들은 평균적으로 1달 정도 여기서 밀킹 되는 것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다른 착유장으로 이동한다. 굳이 여기서 1개월 동안 머무는 이유는 큰 장소로 이동하기에는 소들의 건강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3) Heifer… 참으로 애증이 아닐 수 없다. 이 친구들은 처음으로 출산을 경험한 소들이다. 그리고 아직 어리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는데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 중고등학생의 나이이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엄청나게 날뛰고 난폭하다. 젖꼭지를 닦으려고 손을 대면 피하려고 몸부림을 치거나 뒷발질을 한다. 다행히 사람 얼굴을 차는 참사를 막기 위해 로터리에 철로 만들어진 바가 빙 둘러져 있다. 그래도 소의 육중한 발차기는 무섭다. 발길질 한 번에 기다란 철제 바가 쩌렁쩌렁 큰 소리를 내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순간 놀라서 눈을 질끈 감을 것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수많은 먼지와 모래, 털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누구라도 재채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심한 사람은 알레르기가 생겨서, 일 하는 내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람이 바로 내 하우스 메이트 C다. 하도 걱정스러워서 병원은 다녀와 봤냐고 하니까, 이건 일 그만 두면 나을 거라고 우문현답을 했다. 그래, 모든 직업병은 일 그만 두면 낫는 거지. 나는 다행스럽게도 알레르기는 없었지만 예민해진 소들의 공격을 당해 참을 인 자를 마음속으로 억만 개는 그렸을 거다.
단점 중 하나는 소들이 대소변을 보면 막아주는 것 없이 그대로 워커들 머리 위로 떨어진다. 그래도 소들이 일 보기 전에(…) 꼬리를 들어 올리는데 그걸 먼저 본 사람이 한창 밀킹에 열중하는 다른 워커에게 조심하라고 소리쳐서 피하게 해 준다. 정말이지 눈치 싸움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두 사람 다 눈치 못 채다가 소의 분비물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불상사가 있다. 나도 몇 번 당했지만 육공장 짬밥이 어디 안 가는 모양이다. 좀 따뜻하고 냄새가 나는 진흙이 튄다고 생각하면 그저 별 거 아니게 느껴진다. 이런 일은 매 순간 일어날 수 있어서 아예 샤워실이 화장실에 붙어있다. 또한 배설물이 눈에 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보통은 보안경을 쓰고 일하지만, 안 쓰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치 나처럼. 그리고 조각이 튀었다 해도 로터리 가장자리에 눈만 씻어낼 수 있는 산업용 수돗가가 있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팀에 비해서는 확실히 여유 있는 팀이라고 느꼈던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업무 시간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큰 스피커를 틀고 같이 노래를 부른다던지 잠시 춤을 추며 즐겁게 근무했다는 점이다. 가끔 수다쟁이 소가 Katy Perry의 Roar에 맞춰 음메- 울 때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쟤 좀 보라면서 웃어 버린다던지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다른 팀과는 달리 쉬는 시간이 꽤 길어서 속된 말로 상당히 꿀을 빨았다. 원한다면 눈도 붙일 수 있어서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간도 얼마 가지 않아서 끝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