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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린 Jan 16. 2023

불완전한 우리들의 이야기 | 최은영,『몫』

자기 몫을 다 해내려는 인물이 등장한다, 네 일기를 보니 이 책이 떠오른다, 고 블로그 주간일기에 친구가 댓글을 남겨준 적이 있었다. 이야기가 담긴, 혹은 좋아하는 책을 주고받는 일이 점점 뜸해지는 요즈음에도 여전히 그것이 낯설지 않은 친구다. 감정이란 쓸모없는 편에 가까운 군대, 그곳으로 보내준 『바깥은 여름』에 훌쩍이던 어린날을 지나 지난달. 가장 좋아한다는 『디디의 우산』과 함께 이 책을 선물받았다.



대학교 교지편집부로 인연을 맺은 세 인물 희영과 나(해진), 정윤의 이야기. 젊은 시절의 오묘한 감정들로 짜여진 이 책은 작가 스스로 생략된 이후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말하듯, 세 가지 인생으로 흩어진 이후 각자의 내밀한 생각들이 짐작과 상상의 영역에 맡겨진다. 미메시스 출판사의 단편 소설 시리즈 <테이크아웃> 의 한 편으로, 일상의 틈에 충분히 녹아들 가벼운 두께(66쪽) 덕에 쉬며 기대고 싶을 때 부담 없이 꺼내 읽을 수 있었다.




현실감과 개연성, 있을 법한 이야기들


하나의 세계를 완전히 살아내기.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은 결국 사람과 주위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학문, 개중 역사가 실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고 철학이 세상의 한 겹 표면을 걷고 물음표를 찍어내는 반짝임이라면 문학은 하나의 삶에 남김없이 빠져보는 기묘함에 가깝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국 사람이라, 익숙한 경험의 범위가 결국 요 우리 사회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탓인지 문학 특히 소설도 외국보단 한국의 것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소설은 고유한 장소와 분위기를 통해 똑같이 서로 다른 하나씩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문화의 낯섦이 커질수록 상상의 역할도 덩달아 커지니 자연스럽다. 개츠비가 건너편 초록 불빛을 바라보던 장소가 뉴욕의 롱 아일랜드가 아니라 여의도 건너편의 자전거길 어디쯤이었다면 ..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소설, 특히 이번처럼 최근작일수록 요상하게 손이 잘 안 간다. 『몫』에서 한 세계의 그럴듯함, 개연성을 유난히 많이 느낀 데에는 때문에 오랜만인 탓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1990년대 대학교의 교지편집부, '일주일에 두 번은 편집회의와 정세토론을 하고, 한 번은 사회 과학 서적 세미나를 하고, 수습 위원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 수습 세미나를 했다(p. 15)'는 풍경이나 기지촌 문제를 두고 구조적인 모순을 봐야 한다 말하는 정윤(p. 45) 모두 멀지 않은 과거 그 시대 실제 있었을 법한 모습이며 대화라 더 몰입하게 됐다. 특히 말로만 전해 듣던 엄마의 학보사 생활이 그대로 상영되는 듯해 한 사람의 인생을 조금 더 그려보는 뜻밖의 반가움도 있었다.


정윤 언니, 내가 언니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요.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편지들에 답하지 않았던 거 미안해. 아주 오래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요.


그러나 작가의 경험이 반영된 글로 착각할 만큼 현실감을 주었던 결정적인 요소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불완전함. 크고 대단하게만 보였던 2학년 선배 정윤은 점차 감정적인 언행에 내면을 내비치며 용욱은 정윤을 존경한다는 말 이면에 그녀가 자신보다 돋보이길 경계하는 마음을 품는다. 열등감에 희영에게 칭찬 한 마디 건네지 못하는 해진이 있다면 그 옆에는 뛰어난 글빨로 주목받으면서도 '넌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네(p. 37)' 되뇌는, 남모를 외로움과 쓸쓸함을 간직한 희영이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의 연대, 손을 건네잡고 품을 내어주는 온기. 작가가 쓰고 싶다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 사랑에 어울리는 밝고 행복한 분위기는 아니나 솔직하고 현실적인 결핍의 만남들이 오히려 잔잔하며 단단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보였다. 그래서일까,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딘가 위로받는 듯했다.



글쓰기란


공감대가 있으면 애착이 조금 더 쉽게 생기기 마련이다. 당연한 말이 소설에도 적용이 된다. 이 작품은 교지 편집부, 글이 수단이자 목적이 되는 조직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글'이라는 주제가 내심 그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결고리가 됐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난 글쓰기가 재밌다. 주구장창 일기만 쓰다 블로그를 시작할 땐 왜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쓰려고 하지, 의문을 품었고 요즘은 글을 쓰려는 이유 자체에 스스로 답을 못 내리고 있지만 결국 단순하게 보면 즐거움이다. 좀더 잘 쓰고 싶은 욕망도 있고, 글을 통해 좀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그러나 글도 참 가늠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특정한 평가 기준 없이 기본적으로 취향을 타는 데다 늘고 있는지 당최 모르겠고 가끔 받는 피드백은 정말 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든 즐거우니까, 재미있고 놓을 수도 없으니 그냥 계속 해 나가는 수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이렇게 글을 쓴다며 고민을 사서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더 잘 쓰고 싶다는 의욕과 애정, 그러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뇌, 혼란과 열등감이 꾸밈없이 드러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름의 위안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면 이런 식.


'모두가 느끼고 있었던 희영의 재능에 대해서 희영 자신은 한번도 확신한 적이 없었다. 분명한 논리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 갔던 희영의 강한 얼굴 뒤로 자신은 글을 쓸 자격도, 재주도 없다는 괴로움이 자리하고 있는 줄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p. 32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 -p. 51


요즘 누군가가 쓴 글을 시간 들여 읽는 것이 참 크고 소중한 행위임을 곳곳에서 느낀다. '난 네 글 좋아하니까. 계속 읽고 싶어(p.38)', 라는 희영의 말이 그래서 그저 지나가는 말같지 않았다. 나름의 위로이자 응원이며 연대인 한 마디 말과 행동, 누군가의 든든함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갖는다.




'만두 가게를 나와 희영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걸으면 걸을수록 공간이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다(p. 56).' 유난히 글이 중구난방인 느낌이지만 궁금했던 표현을 남기며 마무리한다. 이런 표현은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 보고 듣는 만큼 세상이 다채로워진다는 것이 이런 문학적 표현에도 상당히 잘 어울린다.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볼 수 있는 특권이랄까.


친숙하면서도 말랑하지 않은 소설의 힘, 이 짧은 글을 힘있고 섬세하게 끌고 나가는 최은영 작가의 매력. 소설이 독후감 쓰기에 가장 재밌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결국 사람의 이야기, 어느 모로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느꼈다. 단편이라도 매달 소설 한 권씩은 챙겨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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