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밤에 개최되는 초청 특강에 다녀왔습니다. 월요일 아닌 야구경기가 있는 날엔 야구중계 보느라 다른 일정을 잘 잡지 않는데(술자리는 예외), 더위를 식히는 빗줄기도 내리는 밤, 좋은 강의 재미있게 듣고 왔습니다.
요즘 ‘문해력’이란 단어를 자주 듣지요? 수요일자(8/27) 아침에 날아오는 <고도원의 아침편지>에도 문해력에 대한 이야기더군요.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에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느냐?”, “중식은 지하에 마련되어 있습니다”에 우리 아이는 중식보다는 양식을 좋아합니다”, ‘나흘’이라는 단어에 4일로 인식하는 게 문해력이 부족해서 인데요. 영어로는 Literacy라고 하는데, 읽고(Reading), 쓰는(Wrighting)데 반드시 필요한 역량을 말합니다. 새롭고 정교한 배움의 도구이며, 대화, 협력, 소통, 연대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하고, 지금 여기에서 현상의 변화를 이끄는 지렛대이자, 텍스트를 매개로 한 나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능력이라 정의합니다.
조병영 교수님은 TV 유명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신 분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전 처음 뵈었습니다. 본인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이력은,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 후, 대학원을 다니며 지도교수님과 ‘제7차 교육과정’(2000년 즈음으로 당시 국정교과서였던 국어, 국사 과목이 처음으로 검인정 교사서로 변화된 시기)을 맞아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고, 이후 모교에 잠시 교사로 몸담았다가 “내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하는 생각에 200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아이오와와 피츠버그大에서 9년간 교수로 생활하다, 2020년 한양대로 15년의 미국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오신 분입니다. 교수님이 생각보다 젊어 보여 놀랐습니다(사실 저보다 나이는 한참 어리긴 합니다).
‘기. 못. 미.’라고 들어 보셨나요? 기계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인데요. 교수님이 직접 만든 造語랍니다. 요즘 Chat GPT가 뜨거운 이슈잖아요. 질문에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는 바람에, 답변의 正誤 유무를 전문가나 당사자가 아니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젠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고요.
이런 부질없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기계와 인간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비교해 주시네요. 기계는 1) 데이터에 기반, 2) 정보를 다룬다, 3) 정해진 규칙(룰이나 알고리즘)으로 움직인다, 4) 확률과 예측으로 작동함에 반해, 인간은 1) 경험에 기반, 2) 의미를 다룬다, 3) 상황과 목적에 어울리게 규칙을 조정하고 적용한다, 4) 의식과 성찰로 행동한다고 정리해 주십니다.
인간의 사고는 ‘자동적 사고’와 ‘의식적 사고’ 사이에서 원활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동적 사고’란 쉽고, 빠르게, 노력 없이,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고로 예를 들면 익숙한 출퇴근길에서 운전하는 것 같이,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사고를 말합니다. 이에 반해 ‘의식적 사고”는 고생스럽고, 느리고, 노력을 들여서, 의도적으로 하는 사고로, 폭풍우 몰아치는 밤길 운전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경우라면 속도를 줄이고, 주의를 기울여 운전해야 하는 것처럼 사고하는 방식이지요.
문해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책 읽기(讀書)를 꼽습니다. 문학과 같은 책은 스토리 중심이니 빨리 읽어도 되지만, 非문학 같은 책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천천히, 제대로 읽는 게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동적 사고를 주로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다들 아시죠?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화면에 나온 고릴라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확증편향’과 이게 더 심해지면 ‘기울어진 사고’를 하게 되는데, 이 부분 내용은 생략합니다.
강의 후반부에는 <속도를 지키는 좋은 독서의 7가지 습관>이라는 주제로, ‘읽는 속도’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요. 이 부분은 핵심만 요약해서 정리해 보는 걸로 대신합니다.
첫째, 왜 읽는 지를 생각하자 : 독서의 目的을 구체화하기.
둘째, BEFORE와 AFTER의 변화를 경험하자 : 배움을 위한 읽기.
셋째, 줄 긋고, 적고, 쓰고, 그려보자 : 텍스트의 쓸모 궁리하기.
넷째, 아는 말로 새로운 어휘를 배우자 : 언어의 材料 쌓기.
다섯째, 어렵고 귀찮아도 피하지 말자 : 하나라도 제대로 읽자.
여섯째, ‘좋아요’와 ‘공유’는 심사숙고하자 : 공유자로서의 책임 갖기.
일곱째, 가려진 이름,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살피자 : 다양성 사회의 批判的 읽기.
(자세한 사항은 사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무리 즈음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원서로 읽어보길 권하십니다. 번역본으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면서요.
강의를 정리하는 결론으로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계가 하면 된다.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자” 하시네요.
다른 과도 아닌 국어교육과를 나오신 분이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했다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는데요(한국어 교수도 아니고). 강의를 듣고 나중에 검색해 보니, 대학원에서 러닝사이언스학과 교수이시더군요. 그제야 납득이 갔습니다.
광주남구도서관에서 올해 총 8차례(月 1回)에 걸쳐 구민들을 위해 마련한 특강입니다. 낮 시간에 개최되는 강의를 쉽게 참석하기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저녁에 진행하는 자리였는데요. 늦은 시간임에도 강의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니, 이번 기획은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해력’이란 제목에, 학생 자녀를 두신 어머님들도 많이 참석하셨는데, 배움에는 남녀노소가 없는지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강의를 들으러 오셨네요.
좋은 강의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과 열강을 해주신 교수님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