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처음 보는 좋은 분들을 만나러 부산에 가는 버스 안에서 설레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읽은 책입니다. 광주에서 부산 노포동 버스터미널까진 참 멀더군요. 3시간 20분 걸렸습니다. 다시 전철 1호선 타고 부산역까지 가는데 전철만 50분. 오며 가며 읽으려 챙겨간 책을 편도만으로 읽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규진 님은 서울교대 윤리학과 교수십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번역했고, 철학과 윤리를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시는데 일조하시는 분입니다.
'개인주의자'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와는 다릅니다. 타인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철학이란 무엇이 옳은가(right)에 대해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가는 방법이고, 윤리란 그런 옳음을 우리 모두의 좋음(good)으로 이어 나가는 방법"이라 정의합니다. 타인과 공존하는 현명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다정한'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책이름을 이리 지으신 것으로 보입니다.(여담입니다만 원제는 이게 아니었는데, 그런 이름으론 책이 안 팔릴 거라 출판사가 강력히 주장해 결정된 書名 이랍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20개의 실제사례를 20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통해 하나하나 풀어 이야기하며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고속버스 좌석을 한껏 눕히는 바람에 뒤에 앉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껴 벌어진 분쟁, 캣맘의 입주민들에 대한 주차협조 공문이 일으킨 "사람이 먼저냐 고양이가 먼저냐"의 논란, "라떼는 말이야"로 대표되는 세대 간의 갈등, 놀이공원 패스트 트랙 티켓 논란, 인종차별, 장애인 혐오, 동물복지권 문제 등 이 등장합니다.
어떤 게 옳다는 판관 포청천식 결론을 내기보단, 서로 간에 충돌할 수 있는 입장을 철학적으로 풀어내는데, 기대이상으로 재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문제는 무척 복잡하고 다양하기에 사람들 모두를 절대적으로 납득시킬 하나의 기준을 찾기 어렵다"는 작가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책을 읽으며 접하게 되는 소소한 지식에도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동감(sympathy)이란 그야말로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라거나, 맹자가 강조한 인과 위에서 仁이란 '他人'을 대할 때의 덕이고, 義란 '스스로'를 돌아볼 때의 덕이란 구절이 좋습니다.
칼 포터의 자유의 역설, 민주주의의 역설, 관용의 역설 3가지 역설 중 "불관용을 불관용하라"는 관용의 역설에 담긴 정신도,
칸트의 정언명령이 어떠한 경우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라면, 월리엄 데이비드 로스의 예외적으로 지키지 않아도 될 의무를 이야기한 '조건부 의무'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분실한 핸드폰을 찾아준 사람에게 아무런 보답 없이 물건만 받아 돌아간 사연에 대한 이야기)
발터 벤야민이 정립적 폭력과 보존적 폭력(이 둘을 합쳐 '신화적 폭력'이라고도 합니다)에 맞서, '신적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신화적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으로, 기존 질서에서 소외되고 학대받아온 이들을 위해 새로운 정의의 질서를 요구하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폭력이라고 다 부정적인 것만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책은 올해 8월 중순에 나왔고, 평소 즐겨 듣던 <일당백>을 통해 저자 직접출연 방송을 접하고 바로 구입했었는데, 도서관 대출도서 반납기일에 밀려, 이제야 읽었습니다. 밀린 숙제를 마친듯한 느낌이 개운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말세가 되지 않도록 애써봅시다"란 저자의 마지막 당부처럼, 나만 옳다 우기는 사람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존하는 현명한 개인으로 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일독을 추천합니다.